누군가 ‘부산’ 하면 떠오르는 관광지를 말해달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 한 해 1000만 명 이상이 찾는 해운대, 대한민국 대표 불꽃축제가 열리는 광안리, 부산 전경이 한 눈에 보이는 용두산 공원,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이 되었던 남포동 등 얼핏 생각해봐도 여러 개가 생각난다. 각자 자신들만의 특색이 있는 관광지지만 이곳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바다’다.
부산과 바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1의 항구도시이며, 어디를 가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바다가 있다. 부산을 연고지로 하여, 대한민국에서 야구열기가 가장 뜨거운 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응원가가 <부산 갈매기>일 만큼 바다는 부산시민의 삶 속에 녹아 있다. 그 영향 탓일까. 흔히 미술제라고 하면 미술관에서 조용히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부산에서는 홀수 해마다 ‘바다미술제’가 바다에서 열린다.
88서울올림픽의 프레올림픽 문화행사로, 1987년 처음 개최된 바다미술제는 2000년 이후 부산비엔날레에 통합되어 개최됐다. 하지만 바다미술제를 독자적인 문화브랜드로 성장시키기 위해 2011년부터는 바다미술제를 부산비엔날레로부터 분리했고, 홀수 해마다 부산 곳곳의 해수욕장에서 독립적으로 바다미술제가 개최되고 있다.
홀수 연도인 올해 2015년 바다미술제는 지난 달 9월 20일부터 이번 달 18일 사이에다대포해수욕장에서 열렸으며, 전시 주제는 'See? Sea & Seed'다. 풀이하면 '바다와 씨앗을 보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2015 바다미술제 전시감독을 맡은 김성호 씨는 이번 바다미술제의 주제에 대해 “다대포해수욕장은 부산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고 해변은 모래로 구성돼 있는 등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 곳에 씨앗을 뿌려 발아시키겠다는 것”이라며, “올해는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성격에서 벗어나, 작품 제작 과정을 공개해서 과정까지 작품에 포함하는 개념을 세우고, 시민이 참여해서 만드는 프로그램을 늘릴 것”이라 밝혔다.
이번 미술제 본 전시는 16개국 34명(팀) 34점(국내 19점, 해외 15점)이 전시됐으며, 특별전은 네덜란드 기업 피터 린 카이트 Ltd의 특별 출연작으로 이루어졌고 일주일 간 특별 설치됐다. 본 전시는 ‘산포하는 씨앗,’ ‘발아하는 씨앗,’ ‘자라는 씨앗,’ ‘자라는 바다’ 등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바다미술제 간판이 걸린 입구를 지나 꼬불꼬불한 길에 들어서면 거울 같은 반사판이 붙어있었다. 고은 시인과 오태원 작가의 협업 작품 ‘천 개의 빛, 천 개의 물방울’이었다. 고은 시인의 시구가 오태원 작가에 의해 적혀있다. 바다미술제를 본격적으로 관람하기 위해서는 이 길을 꼭 지나야 하는데, 그 길은 마치 도심에서 자연으로 이어지는 통로 같았다.
길을 지나고 나면 먼저 보이는 것은 저 멀리 눈앞에 탁 트인 바다와 하얀 하늘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면 작품들이 모래 위에 전시되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도 함께 보였다. 얼핏 보면 바다 위에 수놓아져 있는 작품과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처음부터 해변의 일부였던 것 마냥 전혀 이물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 더 시선을 가까이 두니 눈앞에 커다란 작품의 모습이 보였다. 김원근 작가의 작품 <손님>이었다.
커다란 두 개의 동상. 작가가 생각한 작품 속 주인공은 어느 여름날 우리 집으로 찾아온 ‘낯선 손님’이었다. 그리고 손님이 다녀간 후 부모님은 다투셨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다툼의 이유보다 ‘나’는 손님이 가져온 선물 꾸러미가 더욱 궁금했다. 작가는 누구나 경험했던 유년 시절의 어떤 날을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관람객들에게 제시했다. 대학생 김태현(24) 씨는 “나도 모르게 작품에 나를 대입해서 생각해보게 됐다”며 “작품을 통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바로 앞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해변 한 가운데 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쓸쓸해 보여 서였을까, 사람들이 하나 둘 나무 앞으로 모였다. 가까이서 보니 나뭇가지에는 쪽지들이 달려있었다. 오노 요코의 <소망 나무>였다. 비틀즈 멤버인 존 레논의 아내이자 설치미술가인 오노 요코는 무언가를 소망하고 그 소망을 쪽지에 접어 나뭇가지에 매달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뭇가지가 온통 소망으로 뒤덮일 때까지 소망하기를 멈추지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사람들의 소망이 담긴 쪽지가 달린 나무는 더 이상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부산 동래에서 남편과 함께 바다미술제를 보러 온 곽명옥(63) 씨는 “내 소망은 자식들이 잘 되는 것밖에 없다”며 “내 소망이 작품이 된다고 생각하니 정말 이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해가 서서히 저물더니 어느덧 어둑어둑해졌다.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고, 땅거미가 진 해변의 풍경도 낮과는 사뭇 달랐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빛을 발하는 작품도 있었다.
고래 뱃속을 연상시키는 긴 터널에 불이 켜졌다. 신원재 작가의 <환상>이었다. 신원재 작가의 <환상>은 일정한 형태를 반복 혹은 왜곡함으로써 바다의 물결을 표현한 작품이었다. 터널 구조의 작품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의 내, 외부를 느끼며 작가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했다.
다른 불빛을 따라 가봤다. 불빛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대나무로 엮은 물고기가 있었다. 그 안에는 쓰레기들이 가득했다. 이종균 작가의 <물고기 - 쓰레기 탐색자>는 치유의 의미를 갖는다. 사회로부터 버려진 부산물과 그로 인해 망가지는 자연을 때로는 날이 선 비판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따뜻한 연민의 시선바라보기 때문이었다. 사회로부터 버려진 부산물, 즉 쓰레기들을 품고 있는 물고기를 보고 있으니 조건 없이 아들을 품어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연상됐다. 이종균 작가의 <물고기 - 쓰레기 탐색자>는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망태기를 메고 쓰레기를 주우며 작품을 완성하도록 하는 예술 체험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바다미술제를 보기 위해 전라도에서 왔다는 유상근(25) 씨는 “낮에 본 작품의 모습과 밤에 본 작품의 모습이 다른 것도 관람의 묘미”라며, “불빛과 작품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했다.
그 외에도, 전시 기간 중 한국 문학의 거장 고은 시인과 반이정 미술평론가의 특별 강연도 진행됐다. 이 강연은 고은 시인이 바다미술제에 콜라보레이션으로 참여하는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고은 시인은 우리에게 자신의 문학론과 바다미술제, 바다, 자연을 대면하는 문학적 세계관을 강연을 통해 보여줬다. 반이정 미술평론가는 ‘현대미술의 맨얼굴 보기’라는 강연으로, 대중이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쟁점과 이론들을 소개하여 미술과 대중 사이의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른 바다 한쪽에서는 문화예술기획자인 김정주 씨가 기획한 프로그램이 열렸다. 프로그램은 <Art Walking>, <Art Talking>, <Art Making>으로 크게 3가지로 나눠져 있었다.
해변을 거닐다 만나는 예술 ‘Art Walking’은 바다미술제 작품을 감상하다 잠깐 쉴 수 있는 프로래그램이었다. 폐패트병, 폐비닐, 폐현수막 등으로 만들어진 리사이클링 아트와, 축제 무대에서 진행되는 주제별 음악공연인 아트 콘서트로 구성되었다. 축제 무대에서 진행되는 주제별 음악공연인 아트 콘서트는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 총 18개 팀과 개인으로 각 회차별 ‘바다,’ ‘보다,’ ‘그리고,’ ‘씨앗’이라는 주제로 9회 공연이 진행됐다.
바다에서 예술을 이야기하는 ‘Art Talking’는 축제행사 안내소의 역할을 하며 도슨트의 작품설명도 들을 수 있는 컨테이너 ‘아트큐브’가 마련됐고, 아트 콘서트와 함께 진행되는 아트 토크는 2015 바다미술제 참여 작가와의 만남, 전시감독과의 만남, 부산과 포구 이야기, 바다와 인문학, 일상의 문화예술 등에 대한 이야기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Art Making’은 핸드메이드 아트 상품으로 구성된 아트마켓이 열렸는데 행사기간 총 40여 개 팀이 번갈아가며 참여했다. 그리고 바다와 강에서 얻어지는 재료로 만드는 미술 체험활동인 사랑海 아트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미술제 기획자 김정주 씨는 “많은 분들이 오신 만큼 기획자 입장에서는 미술제에 만족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