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10-28 17:07 (월)
[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한일분쟁을 생각함: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상태바
[김민남의 생각이 멈추는 곳] 한일분쟁을 생각함: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될까?
  • 김민남
  • 승인 2019.08.06 1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이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주지만 감당할 어깨도 주셨다"
역사 되풀이 되지 않도록 위정자들은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라

몸의 무게는 저울에 올라가면 숫자가 떠서 금방 알 수가 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을 포함한 인생의 무게는 얼마나 되는지 알 도리가 없다. 스스로 가늠해볼 수밖에 없다. 

미국 국민들에게는 전설적 대통령 중 한 사람인 제35대 케네디 대통령(J. F. Kennedy, 1917-1963)은 1961년 1월 40대의 젊은 나이로 대통령에 취임해서 불행하게도 임기 3년차가 안된 1963년 11월에 남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암살된다. 장례식을 앞둔 부인 재키(Jackie,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Jacqueline Kennedy Onasis)는 신부(神父) 앞에서 의외의 고해성사(告解聖事, sacrament of penance)를 한다. 

생전의 J. F. 케네디 대통령 부부(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생전의 J. F. 케네디 대통령 부부(사진: pixabay 무료 이미지).

"편지로 남편 케네디에게 죽고 싶다고 썼어요. 신께는 저를 남편에게 보내달라고 기도도 했습니다." (아무튼 이런 고해를 한 재키는 남편을 잃은 지 얼마 안되어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한다. 다시 한 번 세기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 이 고해를 들은 신부는 "어둠은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늘 이렇게 무겁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말했다. 

신부의 위로를 받고 정신을 가다듬은 재키는 남편의 업적과 유산을 정리, 인터뷰로 남긴다. 케네디 대통령의 짧지만 굵게 산 생애의 한 자락이 이렇게 세상에 알려지면서 그의 치적과 생전의 모습이 새로이 평가된다.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썼고 시련의 극복과 그 치유에 관한 저서 <헤아려 본 슬픔>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철학자 C. S. 루이스도 앞서 신부와 비슷한 말을 한다. 그는 이 저서에서 "신은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주셨지만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어깨도 주셨다(God gave burdens, also shoulders)."

그렇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마음이 현실보다 앞서서 잘못 판단을 내리는 경우도 자주 있다. 루이스의 말을 다시 빌리면,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그 무거운 짐이 아니라 그걸 견디고 이겨내려는 의지가 부족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외부의 적보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섭다."

우리에게는 결코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 1900년대 초 나라가 무너질 때를 돌아본다. 당시 고종황제와 대신들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우리 한반도를 노리는 열강들을 어떻게 하면 우리들에게 유리하게 움직일 수 있을까 하고 고뇌한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를 지탱하고 지킬 수 있는 힘과 의지를 잃어버렸거나 포기한 건 아닌지 적어도 백성들에겐 그렇게 비치는 어리석은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어깨는 그때의 무게를 감당하기에는 이미 너무 처져 있었고, 단단한 어깨를 만들기 위해 평소 운동도 별로 하지 않았다. 나라 밖에 대한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아 시야가 협소했다. 

거기에 비해 대륙진출을 하고자 했던 일본은 치밀한 침략 준비와 함께 국력을 엄청 신장시켰다. 1910년 일본은 무력을 앞세워 한국을 합병한다. 이른바 경술국치, '한일합방'이다. 수천년 역사를 이어온 나라를 하루 아침에 잃어버린 '비극'은 이렇게 다가왔다. 3.1독립만세운동, 중국과 만주, 그리고 미주 등지에서 수많은 선열들이 피와 목숨을 바치며 일본군국제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다. 하지만 광복은 결국 2차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연합국들에 패함으로써 찾아왔다. 

피식민지 백성으로 그때 우리가 겪은 고통과 치욕과 희생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나라 잃은 백성은 백성 대우조차 받지 못했다. 당시 한일합방은 자기 나라를 스스로 지키지 못한 당연한 비극적 응보라는 걸 한시도 잊어선 안 된다.

형태와 내용은 다를지 모르나 이러한 역사는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고(故) 함석헌 선생의 말씀대로 깨어 있는 백성만이 '씨알'이 될 수 있고 씨알 백성만이 떳떳한 나라를 가진다. 백성과 특히 지도자들이 깨어 있지 않으면 '어깨'는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역사는 거짓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런 역사는 존재할 수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곧 드러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불과 100여 년 전 역사만 천착해도 엄청난 교훈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인생뿐만 아니다. 나라의 무게를 짊어질 수 있는 어깨는 백성이나 지도자 모두에게 언제나 갖춰져 있어야 한다. 특히 지도자에게는 필수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이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은 요즘이다. 우리는 지금 21세기에도 이웃 나라를 '소국'(小國)이나 속국 정도로 대하는 대국 근성의 무례한 나라와, 필요하면 경제적 보복과 같은 이웃의 아픈 상처도 쉽게 건드리는 과거 식민 근성의 나라를 양 옆에 두고 있다.

앞서 신부의 말처럼 "어둠은 우리에게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어느 시대, 어떤 나라의 지도자나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자신을 성찰(省察)해야 할 대목이다. 

2019년 8월 6일, 묵혜 김민남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