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 모임이 있었다. 보육원을 운영하는 분들과의 작은 모임이었다. 모인 분들의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자연스레 보육원 운영의 애로사항들이 주된 화제였다. 보육원 운영과 관련해서도 각종 법규가 중요하게 작동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처럼 아동복지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런데 대화 도중 아동복지시설의 시설기준을 접하고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현행 아동복지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보육원의 거실 면적이 아동 일인당 6.6제곱미터(2평) 이상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2014년 이전까지는 아동 1인당 3.3제곱미터(1평) 이상이었던 시설기준이 크게 강화된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침실 1개의 정원도 6인 이하에서 3인 이하로 강화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보육원들이 거실 면적을 법규에 따라 늘리게 되면서 아동 1인당 침실 면적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보육원을 운영하시는 분들은 그처럼 넓은 거실 공간이 필요한지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오히려 아동들에게는 침실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침실이 공부방과 잠자리 기능을 함께 담당하는 중요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아동복지시설들의 시설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복지시설 내 아동들에게 공간의 복지를 제공한다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법규라면 문제가 있다.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산으로 가는’ 정책은 안 된다. 더욱이 현실개선이 아니라 현실개악으로 이어지는 정책은 정말 큰 문제다.
일명 시간강사법(고등교육법 개정)도 딱 그런 모양새다. 본디 이 법 개정은 2010년 한 대학의 시간강사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목숨을 끊은 것에서 비롯되었다. 대학 시간강사는 법적으로 교원의 신분이 아니다. 소위 ‘보따리 장사’라고 불리는 6개월 단위 계약직이다. 유급휴일이나 유급휴가가 없다. 퇴직금도 없다. 직장건강보험의 적용 대상도 아니다. 이에 2011년 교육부가 시간강사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며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는 강사의 교원지위 부여, 주당 9시간 이상 강의 전담, 1년 이상 임용 의무화, 4대 보험 적용 등의 내용이 담겼다.
박봉에 시달리는 대학 시간강사들을 보호하자는 것이었으니 근본적인 취지는 좋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법 개정으로 인해 대학들은 갑작스런 부담을 호소했다. 대학들은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할 준비를 했다. 실제로 대량 해고를 실시한 대학도 적지 않다. 결국은 이런 부작용으로 인해 법 개정은 2018년으로 미뤄졌다. 애초에는 2013년에 시행하려던 것이 2014년으로 연기된 바 있고, 다시 2016년으로 연기된 데 이어, 세 번째 유예 결정이 내려진 셈이다.
시간강사법은 취지도 그대로 살리지 못하고 현실도 직시하지 못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섣부른 정책으로 뭔가를 처리해보겠다는 무모함이 빛났던 정책이다. 지금과 같은 내용의 법 개정이 불러올 부작용은 불 보듯 뻔하다. 대학에게 전적인 부담을 강요하는 순간 대학은 계약직 ‘보따리 장사’들에게 칼을 휘두를 수밖에 없다. 처우개선은커녕 시간강사의 연명 줄이 끊길 것이다. 이쯤 되면 시간강사 살리기가 아니라 시간강사 죽이기다.
최근 화두인 ‘노동개혁’ 법안도 별반 다르지 않다. ‘개혁’이라는 표현이 주는 뉘앙스만으로는 그럴 듯하다. 뭔가 긍정적인 개선의 바람이 불 것 같은 설렘마저 풍긴다. 연예인들과 일반인들이 동원된 정부 정책 홍보는 이런 바람을 더욱 부추긴다. 정부는 노동시장을 개혁해야 미래세대의 청년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갖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세대 간, 고용형태 간 양극화가 완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까지 나서 ‘노동개혁’ 법안의 국회통과를 거세게 주문한다. ‘노동개혁’이 좌초되면 역사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야당을 압박한다. 하지만 정부의 ‘개혁’이 진정한 ‘개혁’이 될 수 있을지는 고민이 필요하다.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인지, 비정규직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노동개혁’은 35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의 근무 기간 2년에 2년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관점에 따라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동기간을 연장해주기 위한 선의가 담겨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중은 OECD 평균의 2배에 이른다. 반면에 비정규직 근무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OECD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낮은 임금의 비정규직 대신에 정규직을 고용하는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말이다. 낮은 임금수준의 비정규직 근로자를 4년마다 한 번씩 선발하는 기업문화가 고착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이번 ‘노동개혁’에는 근로자 파견이 금지되어 있던 제조업 등에도 파견을 허용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쉽게 말해 근로자 파견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다. 물론 정부의 논리는 일자리 창출이다. 하지만 기존의 정규직 일자리마저 점차 파견직으로 대체될 가능성은 없는지 따져보아야 한다. 파견은 ‘중간착취’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노동개혁’ 법안 말고도 이미 정부는 여러 가지 노동 관련 이슈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현재는 취업규칙(근로자의 임금이나 근로기준 등에 대해 회사가 정한 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변경하려면 고용주가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하지만 이것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기준을 확대하는 방안도 뜨거운 감자다. 이런 방안들이 고용주에게 ‘쉬운 임금삭감’ 그리고 ‘쉬운 해고’라는 칼을 쥐어주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임금피크제는 더더욱 고민을 요하는 대목이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에 도달해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근로자들의 임금을 깎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임금피크제의 당위성을 청년 고용과 결부시키고 있다.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통해 줄인 임금을 청년 고용에 쓸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임금피크제와 청년 고용을 병행하는 기업들에 특혜를 준다고도 한다. 하지만 임금피크제가 과연 신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인지는 미지수다. 기업의 고용은 기본적으로 기업활동의 일환이다. 정부가 뭔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모하다. 정부의 논리대로 한다면, 임금피크제는 부모의 임금을 깎아 자녀를 고용시키는 모양새다. 찜찜하다. 그런데 찜찜함을 넘어 두려운 것은, 부모의 임금만 깎이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다.
시간강사 문제도 그렇고 노동시장 문제도 그렇고 현실과 유리된 정책들이 난무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취지와는 달리 ‘산으로 가는’ 정책들이 안타깝다. 현실개선이 아니라 현실개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썩은 새끼로 범 잡기’라는 속담이 있다. 무모하고 어림없는 짓을 일컫는 말이다. 과연 정부가 내놓은 각종 정책들이 범을 잡을 수 있는 새끼줄인지 따져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