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천 원으로 뭘 할 수 있을까. 김밥 한 줄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한 끼를 천 원으로 해결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하다. 갑자기 천 원 가지고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천 원이 누군가에겐 한 달 식대로 지급된다는 소식을 접해서다. 2019년에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얘기의 대상은 바로 부산교통공사 청소용역 노동자들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천 원일까. 부산 지하철 노조 관계자가 언론에 전한 내용에 따르면, 교통공사에서조차 챙겨주지 않는 식대를 용역업체가 적게나마 챙겨준다고 생색내는 비용이 바로 천 원이라고 한다. 이 사례는 우리 사회가 비정규직을 인격적으로 존중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문재인 대통령이“공공부문부터 임기 내에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 뒤 2년이 지났다. 지금 사회 곳곳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과 본사 직접 고용을 외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들을 향해 대중들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농성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집단 모두를 자격 없이 이득을 보려는 집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농성 현장 중에서도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들의 투쟁 현장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수납원들이 한국도로공사(이하 도공) 본사에서 점거 농성 도중 경찰이 해산 시도에 나서자 “몸에 손대지 말라”며 상의를 탈의한 것이다. 이들이 이런 상황에까지 내몰린 이유는 무엇일까. 관련 이슈 기사 댓글 창을 보면 약속이라도 한 듯 대부분 네티즌이 요금 수납원들을 향해 “애초에 비정규직인 거 모르고 들어갔느냐, 정규직이 되고 싶으면 정당하게 시험을 쳐서 입사하라”며 비난한다.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톨게이트 수납원들은 애초 도공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시절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수납원들을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소속기관만 달라졌을 뿐 수납원들은 전과 똑같은 업무를 했고 심지어 용역업체 소속이라도, 도로 공사 직원들로부터 친절 교육, 근무태도 관리 등을 받았다.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것은 ‘불법파견’에 속하는 명백한 위법이다. 이에 수납원들은 도공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1심, 2심 상고심에서 모두 수납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도공 측은 수납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자회사를 설립했다. 현재까지 약 6500여 명의 수납원 중 5000여 명이 자회사로 옮겼고, 이를 거부하고 끝까지 본사의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수납원 1500여 명은 해고됐다. 해고된 1500여 명이 지금 농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자그마치 6년이다. 항소와 상고를 거듭하며 법원의 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도공을 상대로 수납원들은 6년을 버텨왔다. 대법원 판결까지 난 이 시점에서 도공이 제시한 ‘자회사 입사’ 카드를 수납원들이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자회사는 본사 산하기관이라 하더라도 고용의 안정성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정규직화 정책 시행 후 지금까지 결과를 담은 ‘공공기관 자회사 전환실태 분석’자료를 보면, 본사는 자회사와의 계약 자체에 본사 예산 감소, 정부 정책 변화, 자회사 동맹파업 등의 이유로 계약 해지가 가능하다는 조항을 두고 있었다. 특히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중소기업은행 등은 자회사에서 동맹파업이라도 일어난다면 이를 빌미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노동 3권(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에 어긋나는 행위다. 일반 사기업도 아니고 노동 존중 사회를 표방하는 현 정권의 공기업에서 모범을 보이기는커녕 이런 일이 벌어져서야 되겠는가.
신문방송학과 전공 수업 시간, 교수님께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말씀하셨던 순간을 기억한다. 교수님은 언론은 기계적 중립을 취해선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 대학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의 나는 언론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그게 공평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님의 가르침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교수님은 사회적 지위에 따라 발언의 기회와 무게가 달라서 언론은 기본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가르침을 새기고 톨게이트 수납원에 관한 기사를 다루는 언론의 행태를 보면 안타까운 점이 많다. 몇 명이 시위에 참가했고, 어디를 점거했다는 식의 단발성 보도는 많지만 왜 이들이 이토록 투쟁하는가에 대한 설명은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은 기사가 훨씬 많다. 그러니 상황을 직접 알아보고자 하지 않는 적극적인 뉴스 독자가 아닌 이상 대다수는 ‘개나 소나 정규직 타령, 이러니 노조는 없애야 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시사평론가 진중권 교수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인격으로 존재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식이 노조랬다. 노동자와 사용자는 이론적으로는 평등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실질적 대등을 이루기 위해선 노동자가 집단이 되어야 한다. 내가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은 노동자와 노동자가 서로의 적이 된 지금의 상황이다.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뭉친 노동자들은 거대한 권력과 싸우기도 벅찬 마당에 자신들을 이기주의 집단으로 매도하는 대중들의 시선까지 견뎌야 한다.
“우리는 당장의 불편함을 약자의 몫으로 떠넘기는 게 아니라 무시로 일관해도 문제없는 권력에 맞서 노동자들의 곁에 서겠다.”지난 2월 서울대 시설관리직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 학교 도서관을 비롯한 일부 건물에 난방 가동이 중단돼 학생이 직접적 불편을 느낄 수 있는 상황 속 파업지지 학생 모임에서 낸 성명문 중 일부다. 바로 이러한 태도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배울 필요성이 있다. 그래야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편집자주: 위 글은 독자투고입니다. 글의 내용 일부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