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초복을 맞아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 동물보호단체의 개 식용반대 집회가 진행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들은 추모의 의미가 담긴 검은 옷을 입고 전기에 그을려 죽은 개 모형 10여 개를 들고 “개 학살을 방관하는 정부와 국회는 각성하라”고 외쳤다고 한다.
같은 시각, 불과 약 10m 거리에서 정반대 성격의 집회도 진행됐다. 대한육견협회 회원들이 “합법적으로 승인을 받은 농장에서 돼지나 소를 죽이는 도살방식으로 개를 도살하고 있다. 동물단체들은 우리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개식용 금지 법안을 반대하는 집회를 연 것이다.
나는 개를 먹지는 않지만 우리나라에 개식용 문화가 있다는 것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소, 돼지, 닭 등 식용으로 익숙한 동물뿐만 아니라 전갈, 곰, 원숭이와 같이 다소 식용으로 희귀한 동물들도 식재료로 사용한다. 심지어 거위 간과 철갑상어 알은 세계 3대 진미로 꼽히는 아주 값비싼 식재료다. 하지만 많은 개식용 반대자들은 ‘개’는 인간과 친밀한 반려동물이기 때문에 식용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매우 이상한 논리지 않은가? 반려동물의 기준은 무엇인가? 사전에 따르면, 반려동물이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소와 돼지도 개와 같은 가축이니 사람과 더불어 산다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미니돼지를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즉, 그들의 논리라면 소, 돼지와 같은 동물들도 식용으로 사용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문화는 우열 평가가 아닌 그 사회의 입장에서 이해해야할 대상이다. 나는 편식이 아주 심하다. 처음 접하게 되는 음식은 일단 거부해 먹는 음식보다 못 먹는 음식이 더 많다. 물론 개고기도 먹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20여 년간 살면서 이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고 타인도 나의 식습관을 지적하거나 불편해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어느 날 누군가가 편식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가지고 편식 반대 집회를 연다면 어떨까? 나는 그 반대세력이 되어 누군가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뭔데 20여 년간 아무렇지 않게 여겨온 나의 개인적인 음식문화를 지적하고 평가하는가?”라고 말이다. 개고기 또한 그러하다.
조선부터 지켜온 우리 개고기 식용문화는 열등하다고 평가할 것이 아니고 단지 옛 선조들의 생존 정신이 담긴 한 문화로써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조선시대에는 공식적으로 소 도살이 금지됐다고 한다. 다만 초상이나 잔치 같은 행사가 있을 때에만 관의 허락을 받아야 백성들이 소를 도살해서 소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농업국가에서 주된 노동력인 소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개고기는 소고기 대신 백성들이 섭취할 수 있는 단백질 음식이었고 그것이 현재의 개고기 식용문화의 뿌리가 됐을 것이다.
그렇다고 현대의 모든 개고기 식용문화를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유기견 식용논란’, ‘개 학대 논란’, ‘개 농장 위생 논란’ 등 개고기 식용문화와 연결되어 발생하는 문제들은 반대한다. 우리나라의 개식용 관련 법이 미흡해 불법적인 개 도살이 늘어나는 것이다. 국회에서 개식용 관련 법을 명확하게 만든다면 불법적 도살은 줄어들 것이다. 모든 것은 문화의 변화에 맡겨야 한다. 개고기 식당 자체가 거의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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