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의 무인카페, 시골 책방 같은 도서관도 나란히
대룡마을 주민들, “예술촌은 우리 마을의 자랑” 한 마음
부산 감천 문화마을, 영도 흰 여울 문화마을, 경기 파주 헤이리마을, 전북 전주 한옥마을처럼 오래된 시골 마을을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재탄생시킨 마을이 전국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부산 동북쪽 ‘기장군 장안읍 오리’도 그 중 하나다. 여기에는 예술가들이 한데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마을 이름은 대룡(大龍)마을. 이 마을은 원래 마을 주민들이 농사짓고 사는 보통 농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작가, 예술인 조각가들이 모여 공동 작업실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는 마을로 유명하다. 문화 예술촌으로 변화하고 있는 대룡마을은 리(里)의 이름을 따서 ‘아트 인 오리’라 불린다. 2007년 행정안전부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프로젝트’에서 우리 마을 보물찾기 부문 우수상을 받은 바 있다. 이곳에는 여러 예술작품, 먹거리, 무인카페, 도서관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하다.
대룡마을은 차를 타고 방문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방문할 수 있다. 차를 몰고 올 경우는 내비게이션에 기장 대룡마을이라 치면 된다. 버스는 해운대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울산으로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송정과 기장을 지나, 하근마을 다음 정류장인 대룡마을에서 내리면 바로 마을 입구가 보인다.
대룡마을 이장 이정옥 씨는 “소규모 마을에 예술가들이 들어오고 마을 주민들이 소소한 재미를 위해 조금씩 마을을 가꾸다 보니까, 볼거리가 생기고, 그래서 사람들도 와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장의 말처럼,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생기가 도는 듯하다. 이 씨는 “소문으로 듣고 이 작은 마을을 구경하러 와주는 방문객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대룡마을 곳곳을 둘러보면서 숨은 여러 예술작품을 보는 것이 하나의 재미이기도 하다.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마을 안에 설치해뒀다. 우선, 대룡마을 입구에 도착하면, 대룡마을이라 적힌 큰 비석과 표지판이 보인다. 시골 마을이라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그 어떤 다른 예술작품 전시관보다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조각 석상, 페인팅, 조형물, 벽화 등 아기자기하고 특이한 예술 작품이 마을을 방문하는 손님을 맞는다.
예술작품은 마을 구석 곳곳에 하나씩 설치돼 있는데, 특이한 것도 있고,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엽기적’인 작품도 있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귀여운 벽화와 토끼 조형물, 또 태평양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을 연상케 하는 돌조각까지 다양한 작품이 마을 입구에서 시선을 빼앗는다. 작품을 보며 마을을 천천히 구경하면, 대략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예술가들의 공동 작업실 건물을 구경할 수 있지만, 작품을 만드는 도구들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외지인이 작업실 안까지는 들어갈 수 없다.
마을을 걷다가 부부로 보이는 방문객을 만났다. 방문객 윤은지(41) 씨는 “남편이랑 조용한 마을을 걷고 싶어서 관련 블로그를 찾다가 대룡마을을 오게 됐다. 예쁜 작품들이 눈에 띄고 커피도 한 잔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친구들과도 또 올 생각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을”이라고 말했다.
부산대학교 미술교육과를 졸업한 강이수 조각가는 2009년 9월에 자신의 조각 작품, <원시·기호·현대>를 이 마을에 설치했다. 강이수 조각가는 부산, 서울을 오가며 자신의 많은 작품들을 전시하고 갤러리에서 기획전을 열었다. 강 씨 작품만의 특별한 점은 살아있는 생물의 모습을 많이 활용하는 것이다. 마을에 전시된 작품 역시 물고기의 모습을 띄고 있다(아래 사진). 강이수 조각가는 작품설명에서 “여러 가지 실험과 변형을 통해 곤충이나 동물의 형상 등으로 원시의 감성과 메시지의 기호를 입체화, 구상화하는 작업들을 시도해왔다”고 적었다.
그 다음에 보이는 작품은 조각가 정희욱 씨의 <나의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이라는 조각품이다. 정희욱 조각가는 부산대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많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분이다. 그는 대체로 인간의 얼굴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을 만들어 왔다. 크고 작은 바위를 조각해 만든 작품을 직접 설치까지 한다는 정 씨는 조각뿐 만아니라 회화도 그린다. 꾸준히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는 조각가 정희욱 씨의 작품은 2009년 9월 대룡마을에 설치됐다.
대룡마을에는 한국인 작가의 작품뿐만 아니라, 일본인 작가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설치작가 마사유키 츠보타의 <스스로의 바람>이란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마사유키 츠보타는 현대적이고 감각적인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여러 번 개인전을 열어온 마사유키 츠보타는 커다란 통나무처럼 여러 나무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며, 그의 작품은 나무가 갖는 결과 고유성을 부각시켜 현대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2009년 9월에 그의 작품이 대룡마을에 설치됐다. 마사유키 츠보타는 작품설명을 통해 “내 작품을 통해 사람과 사람사이에 만남을 가지듯, 소중한 관계을 맺을 수 있으면 한다. 작품을 통해 몰랐던 자신을 마주하길 바란다”고 적었다.
대룡마을 아트 인 오리만의 특별한 점은 바로 무인카페가 있다는 것이다. 예술작품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무인카페가 있다. 카페에는 주인장으로 보이는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고 창문 밖으로 부는 바람만이 손님들을 반긴다. 무인카페 ‘커피 아트 인 오리’는 모든 것이 셀프다. 커피를 내리고 커피 컵을 씻는 것 전부 셀프이며, 벽에 붙은 음료 제조법을 보고 직접 손님이 제조해야 한다. 결제는 현금이며, 냉장고 옆에 요금함이 놓여있다. 파티, 회식, 모임 등을 계획하는 개인이나 단체는 카페 전체를 대관할 수도 있다. 카페 내부 천장과 벽에는 방문객들이 방문 흔적을 남길 수 있도록 엽서들이 놓여있다.
카페를 마주 본 채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다 보면, 마을회관 바로 앞에 기품이 느껴지는 한옥이 보인다. 대룡마을 ‘상상 작은 도서관’이다. 이 작은 도서관은 마을의 분위기와 어울리게 한옥 건축물로 지어졌다. 기장 군민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책을 읽고 대출할 수가 있다. 기장 군민이 아니고 각지에서 온 방문객이라면, 책을 대출할 수는 없지만 누구든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읽는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화요일에서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 도서관 바깥에는 누구나 여러 종류의 책을 무료로 나눌 수 있도록 자신이 가진 헌 책을 놓고 갈 수도 있고, 놓여 있는 책을 들고 가서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대룡마을 주민들도 예술촌이 된 자신들의 마을을 사랑하는 듯 보인다. 마을 주민 황인애(63) 씨는 “우리 마을이 예술촌이 된 게 마을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한다. 가끔 보면 우리 마을 지나치다가 시동을 끄고 작품 사진 찍으려고 차에서 내리는 사람도 봤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마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자랑을 멈출 줄 몰랐다.
마을 이정옥 이장은 “젊은 사람들, 가족들, 친구들끼리 마을을 방문해주면 그저 고맙고 반갑다. 방문객들이 보이면 내가 직접 소개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정옥 이장은 “우리 대룡마을의 특색있고 아름다운 경치를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 예술작품 좋아하고 멋진 경치 구경하고 싶으면 대룡마을로 오면 된다”고 웃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