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부경대에는 차량이 드나드는 후문이 있고, 그 후문에서 남천중학교를 지나 부경대 담을 따라 걷다보면 대연동 먹거리 가게들이 밀집되어 있는 골목길로 통하는 쪽문이 하나 있다. 그 쪽문 근방에 자리 잡은 여러 카페, 책방, 음식점 등 업소 중에 가게 하나가 보인다. 가게 안에는 다양한 모자가 걸려 있고, 아기자기한 액세서리도 있으며, 지갑, 옷들도 잔뜩 진열되어 있다.
그냥 평범한 옷가게인 듯도 하지만, 액세서리와 지갑도 섞여 진열되어 있으니, 꼭 옷가게 같지만도 않다. 언뜻 이 가게의 정체가 궁금해진다. 상호를 보니, 약간의 힌트가 보인다. 상호가 ‘리메이크마켓’이다. 이 가게의 판매상품은 바로 ‘리메이크,’ 즉 ‘리폼’한 헌옷과 자투리 원단으로 제작한 클러치(손지갑)와 지갑이다. 알뜰한 대학생들을 부르는 이 헌옷 재생 공간은 생긴 지 벌써 3년이 지나고 있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주인 김경아씨는 부드럽지만 '센 언니'다.
리메이크마켓은 단순히 물건을 재활용하는 것을 뜻하는 리사이클링(recycling)을 넘어 그 물건에 디자인을 더해서 새로운 가치를 지닌 재활용품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제품을 판매한다. 김 씨는 맨투맨 티셔츠(땀을 흡수할 수 있는 약간 두툼한 운동용 티셔츠)의 양소매를 자르고 다른 원단을 붙이기도 하고, 기본 자켓에 와펜(가슴에 붙이는 문장 모양)을 잔뜩 붙여 전과는 다른 옷을 만들어낸다. 김경아 씨는 최근 소파의 자투리 가죽을 이용한 클러치와 지갑을 많이 만들고 있다. 자투리 가죽과 알록달록한 자투리 원단이 만나면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지갑과 클러치가 탄생한다. 이 제품들은 ‘리메이크마켓’이라는 브랜드로 롯데백화점을 비롯한 다른 가게에 납품돼 팔리고 있다.
김경아 씨가 이런 특별한 공간에서 특별한 제품을 판매하게 된 사연은 무얼까?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 때까지 전교생이 20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시골 분교가 있는 경남의 한 시골에서 자랐다. 그녀의 어머니는 옷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고 그녀에게 항상 직접 만든 옷을 입혔다.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놀거리가 없었던 그녀는 어머니가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 가지고 놀곤 했다. 자투리로 인형 옷 을 만들어 인형에 입히고 그 인형을 가지고 놀았다고 그녀는 기억한다. 그녀는 “그것들로 새롭게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에 재미를 느꼈어요”라고 말했다.
부산으로 이사 온 그녀는 부산에서 중학교과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미적 감각이 뛰어났던 그녀는 창의적인 일을 하는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대학에서 시각디자인과를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로 진출, 패션 브랜드의 광고를 제작하는 패션 전문 광고회사에 입사해 아트 디렉터로 일했다. 7년간 열심히 일하던 그녀는 어느날 ‘뜻한 바 있어’ 회사를 그만 두고 2013년 부산 대연동 대연성당 근처에 리메이크마켓 1호점을 개업했다. 아마도 어린 시절부터 창의적인 일을 좋아하는 그녀의 삶의 철학이 업사이클링 분야를 창업하게 한 계기일 듯하다. 김경아 씨는 "당시에는 업사이클링이 새로운 유망 분야로 떠올랐던 사회 분위기도 내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리메이크마켓이 단지 옷과 소품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리메이크마켓의 물건들을 콘텐츠로 여겼으며, 그 콘텐츠를 가지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했다. 그녀는 버려진 제품에 두 번째 가치를 불어 넣었고, 그 가치를 손님들에게 알렸으며, 손님들은 그 제품의 가치를 알고 사가는 것이 가게와 손님들 간의 소통이었던 것. 그녀는 “리메이크마켓이 단지 그저 그런 옷가게가 아닌 업사이클링 가치로 소통하는 공간이 되기를 원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소통은 곧 SNS를 통한 홍보활동으로 이어졌으며, 많은 사람의 발길이 그의 가게로 몰렸다. 손님을 끌어 모은 끝에 그녀는 2015년 4월 대연동 용소로 7번길에 2호점을 개업했다.
역시 리메이크마켓의 확장은 SNS를 이용한 소통이 한몫을 했다. 리메이크 제품은 패션정보를 공유하는 앱 ‘스타일 쉐어’를 통해 입소문을 탔다. 김 씨는 처음에는 재봉을 잘 못 해도 옷을 리폼해서 예쁘게 입을 수 있다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꾸준히 스타일 쉐어에 사진을 올렸고, 이용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녀는 “7만 5,000명 정도가 팔로워 해주셨고, 1호점만 운영할 때 위치가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SNS의 힘 덕분에 찾아온 손님들이 많았어요”라고 말했다.
지금도 그녀는 사진 공유 앱 인스타그램을 통해 꾸준히 손님들과 소통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 옷과 소품 사진을 업로드하고 댓글과 카톡을 통해 손님들의 문의를 받는다. 그녀는 “앱과 카톡으로 빨리 팔리고 즉시 입금이 되기도 하죠. 신제품이 올라오면 언제 팔릴지 모르는 상황이 늘 있게 되자, 가게 근처에 있는 손님이 마음에 드는 옷을 SNS를 통해 보면 헐레벌떡 가게로 바로 뛰어오기도 하죠”라고 말했다. 이런 해프닝은 하나뿐인 제품을 판매하는 리메이크마켓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물론 모든 일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사업 노하우가 없어 힘들었다. 또 그녀는 수치에 굉장히 약해 세무나 경영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 부산시 청년 창업 지원사업을 통해 자신의 창업 아이템이 지원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그녀는 부산시의 금전적 지원에서부터 경영에 관한 교육 등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자신은 판매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그냥 이 공간이 좋고 이 일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지 하나라도 더 팔아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마음은 항상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사업 상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항상 노력한다. 단지 판매 공간이 아닌, 손님과 주인이 함께 만들어가는 소통의 공간을 꿈꾸는 그녀는 손님들을 위해 핼러윈 파티도 하고 소소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자주 오는 손님들을 초대해서 손님 각자의 특기를 살려 노래도 부르고 악기도 연주하는 그런 공연이었다. 그녀는 이렇게 고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녀의 가게는 헌 물건의 가치를 더하는 업사이클링뿐만 아니라 이렇게 인간관계도 새롭게 가치를 부여하는 힐링 공간이기도 했다.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들을 보는 김경아 씨의 시선은 남다르다. 그녀는 학생들이 졸업 후 바로 창업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별로인 회사도, 짜증나는 선배에게도 배울 것은 무조건 있다며, 그녀는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회사생활은 한 번 경험해보는 게 좋다고 권했다. 김 씨는 “사업도 사회생활이에요. 졸업하고 바로 창업하는 것은 절대 추천하지 않아요. 조직생활을 한 번 경험해봐야 개인 사업에서 자기가 조직을 만들어서 꾸려 나갈 수 있어요”라고 전했다.
가게 앞 위도우에는 “What is your second dream?” 이라는 네온사인이 붙어있다. 이것은 김 씨가 운영하는 리메이크마켓의 슬로건이다. 업사이클링이란 곧 두 번째 가치를 창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컨드 드림’은 재탄생한 제품들의 두 번째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말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당신의 두 번째 꿈은 무엇이냐’고 묻는 말이기도 하다. 세컨드 드림의 참뜻은 꿈이 현실이 되면 꿈이 아니며, 다음 꿈이 지금을 버티는 힘이 된다는 것. 그녀는 “지금 꿈을 이루면, 또 다른 세컨드 드림이 생겨야 해요. 그게 인생인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