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이 사건’과 ‘조두순 사건’ 중 우리는 어떤 사건이 더 귀에 익을까?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나영이 사건’을 더 많이 기억한다. 그러나 두 사건은 같은 사건이다. ‘조두순 사건’은 2008년 12월 사건 가해자 조두순이 8세 아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2년 형을 받게 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발생 초기 피해자의 이름인 ‘나영이 사건’이라 알려졌지만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조두순 사건’으로 사건명이 정정됐다.
비록 가명을 썼다고는 하지만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사건명은 피해자에게 한 번 더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사건 피해자인 아이가 소문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고 한다. 이는 사건명으로 인해 피해 아동과 가족들이 2차 피해를 입은 것이다. 또한 피해자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 당시 ‘나영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들이 피해를 입은 사례도 많았다.
뒤늦게 이런 사연들이 알려지고 피해 가족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잘못된 사건명을 비판하기 시작해 ‘조두순 사건’이라는 가해자의 이름으로 사건명을 붙여 부르게 됐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사건명들은 지금까지도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성범죄에 관한 사례가 제일 많은 것으로 보인다.
성범죄는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긴다. 가해자 처벌도 정말 중요하지만 잘못된 사건명으로 인해 2차 가해를 일으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당연한 조치이며 피해자가 받아야 할 당연한 권리다. 물론 성범죄가 아닌 다른 사건이어도 피해자 이름을 앞세워 사건명을 짓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캣맘 살인 사건’, ‘배산 여대생 살인사건’, ‘섬마을 여교사 성폭행 사건’ 등 모두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진 사건명을 가지고 있다. 반면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어떨까? 시간이 지나면 다수의 사람들은 비교적 기억하기 쉬운 사건명은 기억해내지만 가해자의 이름은 잘 기억해내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상처는 오롯이 피해자가 몫이 되는 것이다.
사건이 널리 알려지고 이로 인해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피해자를 구석으로 내모는 잘못된 사건명 짓기는 분명 우리가 힘을 합쳐 없애야 할 관행이다. 평생 벌을 받아야 마땅한 자는 떵떵거리며 살고, 피해자가 고통 받고 숨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목소리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사람에게 칼을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