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인터넷 신문 '시빅뉴스' 창간... 커리큘럼 혁신 주역
32년간 파란만장 교수생활 마감... '큰 산 작은 나무' 등 책도 출간
“의과대학이 부속병원에서 수술을 가르쳐 의사를 양성하는 형태처럼, 신문방송학과에서도 부속 언론사의 정교한 커리큘럼을 통해 기사 쓰는 방법을 가르쳐 언론업계에 진출하려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옛 신문방송학과) 정태철 교수가 이달 말 정년퇴직한다. 그는 "약 32년 간의 교수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2007년 경성대의 학교기업인 '시빅뉴스'를 창간하고 운영한 일"이라고 분명하고 자신감있게 말했다.
정태철 교수는 국내 대학 신문방송학과의 커리큘럼과 운영 시스템을 최초로 '실용적으로' 바꾼 주역이다. 그는 한국의 언론계 과제인 인재 양성 역시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시빅뉴스'는 적지 않은 졸업생을 언론계로 진출시켜 언론인 양성 사관학교라는 별칭을 얻고 있다.
'시빅뉴스'는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가 2007년에 자체 설립한 인터넷 언론사다.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로부터 뉴스검색제휴사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시빅뉴스’와 교육과정을 연계해, 전국 신문방송학과 중에서 최초이면서 유일한 ‘1인 1직무능력 졸업요건제’를 운영하고 있다. 재학생들은 기사를 작성할 수 있거나 영상을 제작할 수 있는 직무능력을 학교 언론사인 시빅뉴스에서 터득해서 일정 수준 이상을 갖춰야만 졸업이 가능하다.
정태철 교수의 정년퇴임을 앞두고 그의 저널리즘 교육철학, 비전, 숨겨진 에피소드, 그리고 학생들에 대한 당부의 말씀 등을 들어봤다.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어떤 생각으로 ‘시빅뉴스’를 만들게 됐나?
▲우리나라 신문방송학과의 교육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신문방송학과는 신문사나 방송국 기자, PD 등의 직업을 길러내는 학과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신방과 교육과정은 미국 대학원 석사, 박사 교육과정과 거의 같다. 이론 중심이란 말이다. 의대처럼 학생들이 교수와 같이 공부해 의사로서 모든 것을 갖춘 상태에서 졸업하는 게 아니라, 실무 없이 이론만 배워서 졸업하게 된다. 대부분의 전공과목 교재들도 미국 대학원 석사, 박사 과목 교재가 많다.
그래서 제대로 된 저널리즘 교육을 시키기 위해선 학과의 부속 언론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의대 교수들이 대학 부속병원에서 실제로 환자를 진료하면서 연구도 하고, 학생들 교육도 시키면서 완전한 의사로 길러내는 것처럼, 신문방송학과도 부속 언론사를 만들어 실무교육을 진행해야 한다. 그래야만 실전에서 어떤 것도 해낼 수 있는 기자를 양성해 우리나라 언론 문제도 바로잡을 수 있다.
-‘시빅뉴스’가 지향해온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우리 학과 재학생들을 언론업계에 취직 잘 시키려고 시빅뉴스를 설립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시빅뉴스가 우리나라 언론 교육, 언론 개혁과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언론개혁의 희망을 가지고 시빅뉴스를 설립했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다른 학교에서는 물론, 개별 언론사에서도 자체적인 저널리즘 교육을 체계적으로 잘 시킬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언론사 자체 교육이 부실한 상태에서 신입 기자를 현장부터 내보내는 사례가 점차 더 늘고 있다. 시빅뉴스를 보고 다른 곳에서도 저널리즘 교육의 현주소를 진단,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시빅뉴스를 통한 저널리즘 교육의 과정과 의의를 설명해 달라.
▲시빅뉴스를 만들고 어렵게 운영해서 학생들을 실습시켜 기사를 작성할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가장 큰 성과다. 기사 작성법을 가르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기사 작성을 가르쳐주는 학원도 없고, 기사의 '기' 자도 모르는 초보자들에게 기사를 어떻게 작성하는 게 좋은지 확실하고 쉽게 설명해 주는 책도 없다. 기사를 작성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나와 있기는 하지만, 역시 초보자들이 책 따라서 기사를 배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대부분 기자 출신들이 쓴 기사작성법은 각자 자신이 배운 방법을 적어 놓은 것인데, 제3자가 읽고 배우기에는 지나치게 개별화되어 있다.
내게도 기사를 써본 적이 없는 학생들에게 기사를 작성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숙제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기사 작성법을 연구하고 실험도 해봤더니, 정년이 다가오기 한 3~4년 전부터 내 나름대로 확실한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을 교과서로 만들었고 2년을 교과서대로 가르쳐보니 학생들이 제법 잘 따라왔다. 경성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학생들은 2학년 1학기 때 가장 기초적인 기사 글쓰기를 배우는데, 작년 한 학기를 가르치니 수강생의 약 60~70%가 나름대로 기사를 쓸 줄 알게 됐다.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의 80~90%가 기초적인 기사 쓰는 방법을 한 학기 만에 습득하더라.
기사 쓰는 것을 어떻게 가르치면 확실히 알려줄 수 있는지 내 나름대로 가르치고 그 방법을 찾아냈다는 것, 또한 나름대로 효과적인 그 교육 방법을 담은 ‘기사 작성법’ 책('원칙적 기사쓰기, 원론적 취재하기')을 출간한 일이 가장 보람 있었다. 앞으로 일선 언론사나 다른 신방과에서도 기사 작성법을 배우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이 책을 많이 참고했으면 좋겠다.
-재직 당시 이루고자 했던 목표 중 기억에 남는 성과와 보람이 있다면.
▲이루고자 했던 목표는 시빅뉴스를 비롯해서 실무 교육 중심 교육과정과 체계를 만든 것이었다. 일정 부분 이런 것들이 성취됐지만, 아쉬운 것도 있다. 우리 학생들이 시빅뉴스를 거쳐서 교육과정을 모두 마치고 기사를 쓸 줄 알거나 영상을 만들 줄 아는 상태에서, 그동안 시빅뉴스에 게재한 뉴스 콘텐츠를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일선 언론사, 신문협회, 인터넷신문협회, 전문신문협회, 잡지협회, 작가협회, 독립프로덕션 협회 등에 세일즈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기사나 영상의 실무능력을 갖춘 우리 학생들이 기자직이나 PD직을 용이하게 얻을 수 있도록 필요한 곳에 세일즈해야 한다고 마음만 먹다가 하지 못했다. 이게 아쉽다.
-언제부터 교수가 될 꿈을 꾸었나?
▲중·고등학교 때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했다. 스포츠를 하기도 좋아하고 보기도 좋아해서 스포츠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방과에 들어갔다. 그런데 신방과에 들어가서 1학년 때 전공수업을 듣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고등학교 때 맨날 사지선다형 문제풀이 식 공부만 하다가 대학에서 논술식으로 시험도 보고 주관식으로 리포트도 쓰는 게 굉장히 재밌었다. 그때 교수님들이 시험을 보거나 리포트를 써내면 내가 눈에 띄었는지 나를 불러서 이런저런 질문도 하시면서 더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래서 1학년 때부터 교수라는, 언론을 연구하는 직업을 생각하게 됐다.
나는 교수님들이 리포트를 쓰라고 하면 대학 도서관도 가보고 골똘히 생각도 하는 등 창의적으로 접근했고 그 과정에서 공부가 굉장히 재미 있었다. 그래서 스포츠 기자가 아니라 언론학을 연구하는 대학교수가 되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다. 그후 대학 4년 동안 취직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대학원 가서 공부할 계획을 갖었다. 그 결과 미국으로 유학 가서 석사, 박사 과정을 밟았다.
-정년을 맞아 학교를 떠나는 소회는?
▲흔히 은퇴를 하면 시원섭섭하다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과 연구하는 것이 나이가 들면서 점차 어려워진다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에 물러날 때가 됐다고 항상 생각했다. 학생들하고 너무 나이 차이가 나니까 당연히 세대차도 커졌다. 1학년 하고 나하고는 40세도 더 넘게 차이가 났고, 그들과 나의 생각 자체도 많이 달랐다. 생각 차이가 많이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쉽지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내가 물러날 때가 됐구나”하는 생각이 서서히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배우는 것은 미디어인데, 신문과 방송 등 간단하던 미디어가 지금은 유튜브에서부터 인스타그램까지 새로운 미디어가 자꾸 나오면서 너무 변화가 심해서 내가 따라가고 가르치는 것 자체가 힘들어졌다.
사람마다 생각은 다 다르지만, 잘 가르쳐야 된다는 생각이 선생으로 꼭 해야 될 의무처럼 여겨져서 나는 강의가 안될 때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다. 매주 매시간 강의할 때마다, 언제나 모든 과목에서 내가 계획한 대로 술술 강의가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매시간 항상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누구한테 이런 얘기를 하니까, 내가 천생 선생 타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매시간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잘 이해시켜야 한다는 짐을 내려놨다는 점에서 안도의 마음과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지금 아내는 자식이 있는 서울로 이사를 모두 마쳤고, 나는 충청북도의 오송에 연구실을 하나 마련했다. 그래서 주말은 서울에 있고, 주중에는 오송 연구실에 체류할 예정이다. 당장 하고 싶은 것은 ‘Q 방법론’에 대한 책을 5년 이내에 쓰겠다는 계획이다. Q 방법론이라는 연구 방법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방법론이고 한국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미주리 대학 유학 시절에 Q방법론의 창시자인 윌리엄 스티븐슨 박사와 그의 수제자 장원호 박사로부터 직접 배웠다. 굉장히 흥미롭고 중요한 방법론이지만, 이것을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한국에는 별로 없다. 그래서 Q 방법론에 대한 책을 5년 이내에 쓸 생각이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역사를 다룬 저서 '미디어, 사회갈등, 사회변화', 기사작성법을 다룬 저서 '원칙적 기사쓰기, 원론적 취재하기'의 개정판을 계속 업데이트할 생각이다.
책을 읽고 계속 연구활동을 하는 것은 내가 인간으로서 살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인간은 목적이 없어도, 쓸 데가 없어도 책을 읽고 지적인 탐구생활을 하는 것이 동물과 다른 인간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막혀 있지만 해외여행도 가고 싶다. 국내 여행은 틈나는 대로 많이 하고 싶다. 여행하고, 책 읽고, 책 쓰고, 그러면 5년은 가지 않을까? 5년 뒤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 5년 동안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하.
-마지막으로, 학교와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제대로 된 기자가 되고 싶으면 우리 학교로 오라”고 말하고 싶다. 하하. 지금 10대들은 대학 선택의 주도권이 대학이 아니라 수험생인 자신들에게 있는데도 가성비를 따지는 10대 답지 않게 어떤 대학이 좋다고 하면 우르르 따라가고 있다. 그 학과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꼼꼼히 따져 보고 대학에 가고 학과를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으면 아마도 경성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가 상당히 실속 있는 교육을 하고 있음을 파악할 것이다.
얼마 전에 KBS1-TV의 '질문하는 기자들 Q'에서 대한민국의 부실한 저널리즘 교육 문제의 대안으로 '시빅뉴스'가 당당하게 소개됐다. 꾸준히 열심히 하니 시빅뉴스의 존재와 가치를 남들이 알아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시빅뉴스와 우리 학과의 기자 교육 시스템을 많이 홍보했으면 좋겠다. 내가 지금 재학생들과 남아 있는 교수님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바로 이말이다.
정태철 교수는 정년을 앞두고 저널리즘 교재 ‘원칙적 기사쓰기, 언론적 취재하기’와 산문집인 ‘큰 산 작은 나무’ 등의 저서를 발간했다. 정 교수가 최근 펴낸 ‘큰 산 작은 나무’는 그가 시빅뉴스에 실었던 칼럼을 모아 책으로 낸 산문집이다. 그는 "책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몇 개월에 걸쳐 고민하다가 ‘큰 산 작은 나무’라고 정했다"면서 큰 산은 그가 움직이고 싶어했던 세상이고, 작은 나무는 그가 바꾸고 싶어 했던 세상 사람, 특히 제자들을 상징한다고 했다. '큰 산과 작은 나무'는 그의 희망이었고 뜻대로 되지 못했던 아쉬움의 표현이라고 했다.
<정태철 교수 약력>
1990~2021년, 경성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옛 신문방송학과) 교수
1997년, 2002년, 미주리 대학교 저널리즘 스쿨 방문 교수
1999년, 부산경남언론학회장
2006~2008년, 경성대학교 대외협력처장
2012년, 한국언론학회 부회장
2013~2015년, 일반대학원장
2019~2021년, 사회과학대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