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은 줄고, 인건비는 줄여야 하고...대학 위기는 곧 교수 실직 위기
학과 취업률, 학과 경쟁력 강화로 폐교 전 폐과부터 막는 게 대책의 전부
대학 수입의 70% 이상이 학생 등록금
지금은 대학생들도 차량 통제소에 주차비만 내면 캠퍼스에 차를 끌고 등교할 수 있지만, 1990년대 초반의 학생들 자가용은 교수들 눈엣가시였다. 100만 평을 자랑한다는 서울대 캠퍼스가 학생들 차량으로 북적인다는 얘기도 당시에 돌았다. 그러자 교육적이지 않다는 이유도 있었고, 학생들이 끌고온 차량 때문에 교수들 주차할 곳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직접적 원인이 되어, 여러 대학에서 학생 차량의 교내 출입을 금지시켰다. 그후 대학 근처 골목길은 학생들 불법 주차 차량으로 가득했고, 대학 주택가와 상가들의 항의가 학교로 빗발쳤다.
이때 불만을 가진 한 학생이 어느 대학 교정에 붙인 대자보에 이런 문구가 적혔다. “월급 주는 사람들 차를 월급 받는 사람들이 막고 있다.” 이를 풀어 쓰면, “학생들 등록금으로 월급 받는 교수들이 등록금 내는 물주(物主)인 학생들 차를 막고 있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대자보를 두고 많은 교수들이 이렇게 한마디씩 했다. “말인즉슨 맞다.”
대학 연간 수입에서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한 언론은 등록금과 기타 학부모들이 내는 입시 수수료 등을 합치면, 교비회계 중 학생들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전체 대학 수입의 평균 70% 이상이라고 보도했다(연합뉴스 2018년 1월 1일자).
다른 신문 보도에 의하면, 학교 수입 중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에서 포스텍이 8%로 단연 낮았다. 거대 기업 포스코의 통 큰 지원이 이렇게 낮은 포스텍의 등록금 비율을 낳았을 것이다. 연세대는 교비 중 등록금 비율이 44%를 기록했다. 연세 학교 법인이 운영하는 연세우유나, 서울역 앞에 떡 자리 잡은 세브란스 빌딩이 떠오른다. 종교재단의 든든한 재정적 뒷받침으로 이 학교는 등록금 말고 다양한 수입원 루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대학의 전체 수입 중 등록금 비율은 71%였다. 특별한 재원이 없는 대부분의 대학 중에서 출세한 졸업생들의 기부금이 많은 대학인 고려대는 이 정도의 등록금 비율을 유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부산지역 사립대학의 수입 중 등록금 의존 비율은 이들 대한민국 유수 사립대학인 연고대보다 당연히 훨씬 높다. 학교별로는 84%에서 92%에 이르는 수입의 등록금 의존율을 나타내고 있었다(부산일보 2009년 1월 12일자). 결국, 우리나라 대다수 사립대학들은 수입의 대부분을 학생 또는 학부모의 주머니에 기대고 있다.
그럼 학교 예산 중 교직원의 월급에 해당하는 인건비 비율은 어느 정도일까? 보도에 따르면, 2019년도 회계 기준으로 재학생 5000명 이상 사립대에서는 인건비로 예산의 68.2%를 쓰고, 재학생 1만 명 이상 사립대에서는 73.7%를 지출한다고 보도했다(U’s Line 2021년 1월 11일자).
경영학에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제조업의 인건비는 전체 지출의 20-30%, 인력 의존도가 높은 서비스 산업이라도 인건비가 지출의 50%를 넘으면 회사 경영이 어렵다는 걸 아는데, 대학은 예산의 태반이 인건비다. 학교 수입의 큰 손이 학생들이며, 그들이 낸 등록금의 70%를 인건비로 쓰고 있으니, 1990년대 초 학교가 학생들 자가용 출입을 금지했을 때, 학생들이 쓴 대자보의 의미가 더 확실해졌다. “학생들 등록금으로 월급 받는 교수들이 등록금 내는 물주인 학생들 차를 막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대자보는 대학의 재정 수입과 지출 상황을 정확하게 꼬집은 진실이었다.
대학 정원 줄줄이 미달 사태...등록금 수입 감소는 정해진 순서
올 2021년 입시 결과가 2월로 마감되자, 언론들이 일제히 대학 정원 미달사태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이 현실이 돼가고 있다는 헤드라인이 뉴스를 장식했다. 부산지역 대학 중 동명대 804명, 신라대 746명, 영산대 548명, 동서대 535명, 국립대인 부산대도 90명, 부경대도 79명이 정원이 미달되어 추가 모집에 들어갔다고 언론이 보도했다(연합뉴스 2021년 2월 23일자). 전북의 경우, 원광대가 760여 명, 호원대가 380여 명, 전주대와 우석대가 330여 명이 미달되어 추가 모집했다고 한다(KBS 2021년 2월 24일자). 이 밖에도 대구대가 876명, 상지대가 781명을 추가 모집했고, 지방 거점 국립대학인 경북대가 135명, 경상대가 123명 미달됐다고 한다. 대교협 발표에 따르면, 전국 162개 대학 2021년도 입시에서 추가 모집 전체 인원은 2만 6129명에 이르며, 이중 수도권인 서울, 경기, 인천을 제외한 나머지 지방대의 추가 모집 인원 수가 전국의 91.4%에 달한다.
이들 정원 미달 숫자는 곧바로 대학의 주 수입원인 등록금 수입 감소로 이어진다. 입학 정원 2000명인 대학에서 500명이 미달하면, 이게 누적되어 4년 뒤에는 등록금 수입의 ¼이 감소한다는 말이다. 그럼 등록금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교수들 인건비는 어찌해야 할까? 등록금 수입이 감소하면 제일 먼저 줄일 곳이 교수 인건비라는 건 구멍가게를 운영해 본 사람에게도 상식에 속한다. 코로나 사태로 영세 자영업자들이 알바생부터 줄이지 않았던가.
입학 정원을 감축하거나 입학 정원 미달 사태가 나도, 많은 대학들이 당장 교수들 인건비를 줄이지 않는 이유는 해외 유학생 유치라는 임시방편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 유학생은 소위 나라에서 정한 정원 외 입학이 가능하다. 교육부가 정한 입학 정원과 상관없이 외국인을 유치할 수 있고 보니, 어떤 대학은 1000명, 어떤 대학은 2000명 이상의 외국인이 캠퍼스를 활보한다. 이들의 수학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들의 한국어 능력은 과연 대학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수준일까? 이런 점들이 항상 의아스럽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는 과목마다 한국인 학생 분반, 외국인 학생(주로 중국인) 분반으로 2개씩 개설하기도 한단다. 그리고 외국인 학생 분반에는 통역을 배치해서 수업한다고 한다. (아주 예외적인 상황이라고 믿고 싶다.) 이런 방식의 대학 수입 유지 방책이 얼마나 오래 갈까? 코로나 사태로 외국인 입국도 어려워졌으니, 정원외 외국인 유학생 수입 대체 효과도 한계를 향해 가고 있을 것이다.
최근의 한 신문 보도는 대학 재정 상황을 더욱 암담하게 만들고 있다. 특례법에 의해 대학의 부동산에 대한 재산세 면세 조치가 금년 말까지 적용됐는데, 이게 내년에 연장되지 않으면, 대학은 모자라는 재정에도 불구하고 내년부터 대학별로 50억에서 80억에 이르는 재산세까지 납부해야 된다는 것(조선일보 2021년 4월 13일자). 이 정도 금액이면 수백 명 정원 미달에 따른 등록금 수입 감소액보다 더 많은 재정 손실을 입는 대학이 수두룩할 것이라는 게 언론의 예측이었다.
대학 수입 감소는 교수 인건비 삭감 압박 요인
대학의 정원 미달이 등록금 수입 감소를 가져오고, 여기에 재산세 과세까지 이어지면, 대학의 재정 위기는 결과적으로 교수의 인건비 삭감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대학의 재정 위기는 곧 교수의 위기다. 대학이 망해도 학생들은 졸업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폐교되는 학교의 학생들은 인근 학교로 편입시켜서라도 졸업을 보장해 주지 않으면, 대학과 교육 당국이 행정소송을 당할 수 있다. 국가 교육 정책에 의해 각 대학들이 공식적으로 입학시켰으면 학생의 잘못이 아닌 한 졸업을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수들은 폐교가 되면 직장이 사라진다. 학교는 살아 있고 학과만 폐과돼도 교수들에게는 문제가 생긴다. 교수들은 전임강사로 부임 후 일정 기간이 지나거나 조교수 또는 부교수 이상이 되면, 정년 보장 심사를 따로 받아야 한다. (학교마다 제도적 차이는 조금씩 있다.) 이미 정년이 보장된 교수는 소속 학과가 폐과될 경우 교양과목이나 인접 학문 과목을 맡는 한이 있어도 정년을 채울 여지가 살아 있다. 그러나 신임 교수처럼 정년 심사받기 이전이거나 정년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교수들은 폐교 전에 폐과만 돼도 실직 위기에 놓일 수 있다.
등록금 수입은 급격히 줄고 있고, 기업이나 졸업생의 기부금이 많지 않은 대다수 대학들이 학수고대하는 게 교육부 지원금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주기적으로 대학을 평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 교육부 지원액을 차등 지급한다. 그래서 대학들은 교육부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생존을 걸고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인다. 여러 평가 항목 중 대부분은 돈을 투입해야 점수를 더 받을 수 있다는 게 또 문제다. 예를 들어 장학금 지급률은 학교가 장학금을 학생들에게 많이 주면 당연히 해당 평가 점수가 높아 지지만, 수입도 주는데 지표 상향을 위한 재원은 또 어디서 마련하란 말인가. 그래서 교육부 지원금을 받는 대학들 평가 싸움은 곧 총알(재원) 싸움이란 말은 벌써부터 정설이 됐다.
여러 평가 항목 중 돈이 가장 많이 들어 가는 게 교원충원율이다. 모든 대학들은 학과별 학생 정원에 맞는 교원충원율을 달성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여기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통상적인 전임교수(테뉴어, 즉 정년 보장 트랙 교수)는 당연히 교원충원율에 계산된다. 교육부는 재정이 빠듯한 사립대학을 봐주기 위해 테뉴어 교수 이외에도 외국인 교수, 산학협력중점교수(업체에서 10년 이상 일한 분이 학교에 와서 강의도 하고 취업 관련 일을 맡는다), 교육전담교수 또는 강의전담교수(연구 의무 없이 강의만 담당한다)도 교원충원율에 산입해 준다. (교원충원율에 시간강사, 겸임교수, 객원교수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미 10년 전부터 대학들은 교육부의 요구에 의해 입학 정원을 10% 이상 줄여 왔다. 그래야 교육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 입학 정원의 자율적 감축으로 벌써부터 대학의 등록금 수입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 교수, 산학교수, 교육전담교수의 연봉은 학교별 차이는 있겠지만 연 3000만 원 내외다. 그래서 높은 연봉을 받는 통상적인 정년보장 트랙 전임교수는 수년 전부터 은퇴 교수가 생겨도 교원충원율에도 산입되고 인건비가 싼 외국인 교수, 산학교수, 교육전담교수로 대체되고 있다. 정년 보장 트랙 교수 중 가장 낮은 직급인 전임강사의 초봉도 과거에는 대기업보다 많은 6000만 원대였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는 대기업 초봉보다 낮은 4000만 원대로 급감했다고 한다. 대학교수 처우가 말이 아니다.
한 해 신생아 27만 명 시대...대학 입학 자원이 벌써부터 고갈됐다
이 모든 일은 대한민국 신생아 수가 줄면서 대학 입학 자원이 고갈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사태다. 일부 대학들은 교수들에게 고등학교를 방문해서 입학 희망 학생을 모아 오라고 강요하기도 한단다. 등록금의 반을 장학금으로 주겠다는 대학도 있었고, 입학 즉시 최신 기종의 스마트폰을 주겠다는 대학도 있었다. (돈도 없는데 이런 물량공세가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 그러나 여기저기 미달 사태가 나는 대학을 골라 가는 입시생 입장에서 스마트폰 준다고 원치 않는 대학을 가지는 않을 것이다.
원래 대학은 국가 탄생 초기부터 사회 분야별로 필요한 인력 규모에 맞춰서 설립 학과와 입학 정원을 조절했어야 했다. 마치 의대, 한의대, 약대, 법학전문대학원처럼 말이다. 그래서 농업 지역에는 농대를, 산업 지역에는 공대를, 도시 지역에는 경영학과를 더 많이 설립하고 학생을 더 뽑아야 했다. 프랑스보다 한국의 불문과가 더 많고 독일보다 한국의 독문과가 더 많다는 농담이 대학가에 유행한 적도 있었다. 철학과, 역사학과, 수학과, 물리학과 등은 원래 기초학문이므로 취업 인력보다는 연구와 교육 인력이 더 필요하다. 그래서 지역별로 몇몇 거점 대학에만 설립됐어야 했는데, 백화점식으로 모든 대학이 경쟁적으로 기초학문 학과를 개설했으니, 그 짧은 생각의 통탄할 결과가 지금처럼 대학 정원 미달 사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 언론은 ‘당신의 모교는 안녕하십니까’란 기사를 내보냈다. 수십 년 동안 폐교된 초중고등학교가 무려 3834곳이나 되므로, 혹시 자신의 모교가 지구상에서 없어졌을지 모르니 확인해보라는 거였다(조선일보 2021년 4월 6일자).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점점 줄어드니 학생 없는 학교는 문을 닫을 수밖에.
내 출생 연도인 1956년 한 해 신생아 수는 99만 명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오전반과 오후반이 있었다. 한 개 교실을 두 반이 오전과 오후로 나눠서 공유했다. 한 학년의 학급수가 10반 이상이었고, 교실수가 부족하니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베이비 부머’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1957년에는 신생아가 100만 명을 넘더니 이게 1971년까지 이어졌다. 그러다가 1980년대엔 한 해 신생아 수가 70만 명대, 2000년대엔 60만 명대로 급감하기 시작하더니, 2005년엔 43만 명, 2017년엔 35만 명, 드디어 2020년엔 27만 2400여 명으로 급락했다. 고교 졸업자 수도 덩달아 줄고 있는 건 당연한 이치다. 2010년의 고3은 63만 명이던 것이 2020년엔 45만 명이었다. 2020년 대학 입학 정원 총수가 약 50만 명이니 대략 5만 명 가까이가 고3 졸업자보다 더 많다. 대학은 정원을 줄일 수밖에 없고, 등록금 수입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게 100% 확정적이며, 결과적으로 대학들은 지출의 대부분인 인건비 줄이기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취업률 낮은 학과부터 없어질 것...교수 위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이 모든 현상의 결과, 취업률이 낮은 학과부터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졸업 후 취업이 막막한 학과에 지원할 학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수들은 각자의 학과 졸업생들이 취업할 곳이 많은지부터 따져 봐야 한다. 미래 먹거리와 관련이 없으면, 학과가 문 닫는 일은 순식간에 산사태처럼 들이닥친다.
취업 전망이 있으나 다른 대학 동종 학과들과 경쟁이 치열한 학과도 위험하기는 똑같다. 이런 상황에서 교수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자신의 학과가 다른 대학 동종 학과보다 취업률을 높게 만들면 된다. 소속 학과가 다른 대학 동일 학과보다 취업률이 높도록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지 여부가 교수들의 직장 보존과 직결된다.
대학이 취업 장사하는 곳인가?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 아닌가? 이런 항변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지금 학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학문 연구와 학자 양성은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 하면 된다. 학부는 직업 교육과 교양 교육을 하는 곳이라는 단순 명료한 명제에 충실한 학과는 살아남고, 취업 전망이 좋아도, 한 학과가 다른 대학 동종 학과와 경쟁에 밀리면, 그 학과는 죽고 교수는 실직한다. 대학이든 학과든 골라 가는 입장인 입시생은 대학의 위기가 오히려 기회다. 재학생은 대학의 위기가 불편하기는 해도 졸업하는 데는 지장 없다. 결국 대학의 위기는 돌고 돌아서 교수의 위기로 귀결된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은 남쪽부터 망한다지만, 그중에서도 취업률이 낮은 학과 소속 교수에게는 벚꽃이 피기도 전에 북풍한설이 몰아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