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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노인들도 '지공거사' 소리는 듣기 싫어 한다...지속가능한 노인복지 위해 대안 마련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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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석 칼럼] 노인들도 '지공거사' 소리는 듣기 싫어 한다...지속가능한 노인복지 위해 대안 마련해야
  • 편집국장 송문석
  • 승인 2023.02.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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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0대 노인 두 명이 지하철 무임승차제도가 부당하다고 헌법소원을 냈다. 젊은이들에게 무임승차자라는 부정적 인식을 받게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한마디로 ‘지공거사’로 취급받기 싫다는 거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서 각하 결정이 나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때마침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도시철도를 운영 중인 지자체에서 도시철도 노인 무임승차제도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도시철도 적자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데 정부가 국비지원을 거부하자 현재 65세 이상 무임승차 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주장이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이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이다. 서울시와 오 시장, 대구시와 홍 시장이 도시철도 무임승차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은 기본적으로 같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보면 대약간 차이가 있어 보인다.

오세훈 시장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근본적 시스템 개선이 추진돼야 한다”면서 “연령별, 소득 계층별, 이용 시간대별로 가장 바람직한 범위를 정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시민사회, 국회, 정부와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홍준표 시장은 한발 더 나간다. “복지는 손익 차원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지요. 그건 지방 사정마다 다르니 지방정부의 재량에 맡기는 게 옳지 않습니까?” 홍 시장이 최근 페이스북에 올린 문장이다. 그래서 홍 시장은 대구 거주 70세 이상 노인에게 지하철 뿐만 아니라 시내버스도 무상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현행 65세 이상 돼 있는 도시철도 무상이용 대상을 70세로 올리는 것이 전제다.

지하철에 수많은 시민들이 탑승해 이동하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지하철에 수많은 시민들이 탑승해 이동하고 있다(사진: pixabay 무료이미지).

한국 사회에서 노인에 대한 복지나 예우를 잘못 말했다가는 쌍욕을 듣기 십상이다. 본전도 못찾을 수 있다. 어떤 정치인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정치생명을 단축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에둘러 말하거나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 애써 피하려고만 한다. 노인들의 도시철도 무임승차 문제도 그 중 하나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도시철도 무임승차제로 인한 적자 규모가 너무 크다. 최근 5년간 전국 도시철도의 연평균 당기 순손실은 1조3427억 원이다. 이 가운데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이 41%인 5526억 원이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도시철도마다 무임승차 손실로 허덕이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2021년 당기순손실 9644억 원 중 무임승차에 따른 손실은 2784억 원으로, 적자의 30% 가량이 노인 무임승차에서 나오고 있다. 부산은 무임승차 손실이 2020년 1045억 원, 2021년 1090억 원, 2022년 1234억 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2021년 기준 무임승차 손실 1090억 원은 전체 적자액 1948억 원의 56%나 된다. 자조적 푸념인 ‘노인과 바다’의 도시, 부산의 자연과 인구 특성을 반영하듯 전국에서 노인 무임승차 비율이 가장 높다.

다른 도시도 부산보다는 낫지만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대구는 2022년 무임승차 손실이 436억 원으로 전체 손실의 47.6%를 차지하고, 대전은 2020년 76억 원, 2021년 80억 원, 2022년 92억 원으로 증가추세다. 광주도 무임승차 손실이 2020년 50억 원, 2021년 51억 원, 2022년 56억 원으로 늘었다.

노인 무임승차 연령을 70세로 높이자거나 일정한 액수의 이용료를 받자는 등의 제안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도시철도 운영기관이 합리적이고 혁신적인 경영으로 적자 운영을 타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노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부도덕하고 희생양 삼기라는 식의 반응이 대표적이다. 또 정년퇴직 연령과 노인 일자리 문제를 한꺼번에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한민국 노인을 대표하는 단체인 대한노인회 김호일 회장의 라디오 방송 출연 발언에 이런 생각이 집약돼 있다.

“낮 시간 빈자리에 노인 몇 사람 더 탄다고 적자 나느냐? 빈자리로 갈 때도 전기요금 들고, 몇 사람 탔다고 전기요금 더 나가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70세로 (무임승차 연령을 높이려면) 69세까지 정년퇴직 연령을 높이든지, 돈을 주든지, 노인 일자리에 신경을 쓰든지 그런 여건을 만들어놓고 연령 상한 이런 걸 논의해야 한다. (출퇴근 시간 무임승차 제한에 대해) 출퇴근 시간에는 노인들이 굳이 외출해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노인이 타기 때문에 돈을 내는 젊은 사람이 못 타 적자가 된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빈자리를 두고 지하철 운행할 바에야 기왕 가는 김에 노인들 태우고 가는 게 전기요금 더 드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말은 언뜻 맞는 말처럼 들리지만 경제논리에 어긋난다. 그렇다면 비행기 선박 고속버스 등도 출발 전 빈좌석이 있을 경우 원하는 사람에게 공짜로 태워줘도 된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물론 김 회장이 노인 무임승차제를 옹호하다 보니 나온 말이겠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어느 누구도 제 돈을 주고 먼저 교통비를 내고 이용권을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김 회장이 대안으로 언급한 정년퇴직 연령 상향, 교통비 지급, 노인 일자리, 출퇴근 시간대 무임승차 제한 등은 하나하나 검토해볼 만한 의견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으로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를 시행하는 나라는 없다. 지상낙원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질하는 북한조차도 평양 지하철 요금으로 5원(북한돈)을 받는다고 한다. 65세 이상 혹은 특정한 나이를 넘어서면 지하철 요금을 할인해주는 나라는 있지만 전액 무료로 타게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라는 사상 초유의 제도를 도입한 이는 12.12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대통령이다. 1984년 서울을 순환하는 지하철 2호선이 완전개통할 때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를 시행했다. 정권의 정당성이 취약한 탓에 일종의 포퓰리즘 정책을 편 것이다. ‘경로 우대’ ‘동방예의지국’ ‘효 사상’ 등을 앞에 내세워 대대적으로 포장했다. 당시 노인 비중이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하던 때였다. 현재 64세 이상 노인인구는 17.5%다. 2025년엔 20%, 2030년 24.3%, 2060년에는 40%에 이를 전망이다. ‘지공거사’ 천지가 된다는 얘기다.

한국보다 선진국 반열에 먼저 올라선 나라들도 우리처럼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를 도입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복지에도 어느 정도 긴장감이 작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복지는 공짜라는 생각이 지배할 때 복지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공짜가 당연한 혜택이라고 여기면 복지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가치롭지도 않다.

누군가로부터 ‘무료’라고 빨간색 글자가 찍힌 영화표나 공연입장권을 받아본 적 있는가? 그때 기쁜 마음으로 영화관이나 공연장으로 달려갔는지 기억해보기 바란다. 아마도 십중팔구 “나를 어떻게 보고 이따위 표를 주는 거야? 내가 공짜표나 받는 거지로 보여?”라며 쓰레기통 속에 던졌을 것이다. 만약 15만 원짜리 입장권인데 특별히 당신은 2만 원만 내고 들어가도 된다고 하면서 할인표를 주었다면 대접받는 느낌도 들고 고개를 들고 공연장에 들어갔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다. 우선 몇 푼이라도 내 돈을 내면 당당해질 수 있고 자존심도 지킬 수 있다.

영국 런던은 출퇴근 시간 무임승차 제한제를 시행한다. 60세 이상의 경우 출근시간 이후인 평일 오전 9시부터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프랑스는 소득세 납부 현황에 따라 요금을 달리 적용한다. 65세 이상 저소득층에게만 20~80% 요금 할인을 제공한다.

가까운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도쿄(東京)는 노인들이 버스 지하철 등 교통수단을 싸게 이용할 있도록 ‘실버패스’를 지급한다. 대상은 70세 이상이다. 1년 정기권(실버패스)은 1000엔(9650원)짜리와 2만510엔(19만7921원) 짜리가 있다. 1000엔 짜리 실버패스는 연소득이 135만 엔(1300만 원) 이하인 사람이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발급가능하다. 주민세를 내는 노인들은 2만510엔 짜리 패스를 사야한다.

교토(京都)는 도쿄 보다 노인들의 대중교통 복지제도가 엄격하다. 노인 평균수명이 늘어나자 지난해 ‘경로승차증제도’를 50년 만에 개정했다. 경로승차증 발급 연령을 2년마다 한 살씩 늦춰 2032년에 75세가 돼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소득에 따른 개인 교통부담금도 차등화했다.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는 형평성 논란도 있다. 서울과 광역시에만 65세 이상 노인들이 사는 것은 아니다. 노인들은 농촌에 오히려 더 많다. 지하철이 없는 중소도시와 농촌의 노인 중 1년 열두 달 지하철 한번 타본 적이 없는 경우도 많다. 평생 정부의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제 혜택을 받아보지 못한 노인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버스를 공짜로 타는 것도 아니다. 지하철이 있는 서울과 부산 대구 대전 광주 등 대도시 노인만 노인인가?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를 배려하는 교통복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교통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지하철 무임승차가 노인의 활동을 촉진해 자살 우울증 등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다. 의료비 사회적비용 등 편익을 따져볼 때 무임승차 비용보다 경제적 효과가 크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복지제도일지라도 지속가능하지 않다면 말짱도루묵이다. 결국은 미래 세대에게 짐을 떠넘길 뿐이며, 오늘 잘 먹고 잘 살자고 내년 종자를 삶아 먹는 꼴이 될 뿐이다. 복지제도도 시장질서를 무시하고는 존재할 수 없다.

노인 무임승차제도에 대한 대안은 이미 나와 있다. 소득수준에 따라 차등화한 경로승차증 구매제, 출퇴근시간 승차제한제, 승차권 할인제 등이 그것이다. 단, 교통복지는 지하철이 운영 중인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등 대도시 노인만이 아니고 전국의 모든 노인에게 공평하게 적용돼야 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무엇보다 무임승차제도를 그대로 존속시키면서 적용연령을 65세를 70세로 연장하는 것은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금의 고령화 추세로 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몇년 지나서 또 뜯어고쳐야 하기 때문이다.

껄끄럽고 부담스럽고 말하기 힘들다고 노인 무임승차 문제를 어물쩍 넘겨서는 곤란하다. 결국은 우리의 아들 딸 손자 손녀에게 빚이라는 돌덩이를 안겨주게 될 뿐이다. 노인들 스스로 당당하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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