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 근대 개인 병원 '백제병원' 외관 살려 리모델링
이교성 대표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행사, 부산서도 향유 가능"
앞으로 '편집자 교육', '독서 토론', '작가와의 만남'등 지속 개최
부산역 건너 이바구길에 들어서면 주변환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듯한 느낌을 주는 고즈넉한 건물인데, ‘백제병원’이라는 낡은 외벽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내부로 들어가니 병원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아늑했다. 2층으로 올라가라는 팻말과 함께 ‘창비 부산’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창비 부산’이 사옥으로 쓰고 있는 이곳은 원래 부산 최초의 근대 개인 병원인 ‘백제병원’이 자리했었다. 부산시민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의료 지원시설인 동시에 부산의 근대역사의 산실로 불렸다. 대학생 김동현(26, 부산시 남구) 씨는" 외관이 빨간 벽돌이라 외국 교회 느낌이 들었다"며 "내부에 들어가보니 전혀 다른 느낌의 건물이라 마치 동화 속 같았다"고 했다.
이곳은 2021년 4월 개관 이래 연간 3만 명이 방문하는 명소다. 방문객 중 절반 가량이 외지인과 외국인이라고 한다. '창비 부산'은 어떻게 부산에 터를 잡게 되었을까.
'창비 부산' 대표는 이교성(50, 부산시 중구) 씨다. 이교성 씨는 24년간 출판사 홍보팀 세계사와 창비를 거쳐 마침내 창비 부산 대표에 올랐다. 이 씨는 “출판사 홍보팀에 있으며 독자들께 매년 듣던 얘기가 왜 지방에는 수도권처럼 ‘작가와의 만남’, ‘저자 강연회’, ‘북 콘서트’ 같은 출판 문화가 없냐는 항의였다"면서 '창비 부산'의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방에서 독자들이 느끼는 소외감을 충분히 공감해 해결안으로 낸 것이 지방에 북 큐레이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창비부산에 대해 설명해 주신다면?
"출판사 창비 도서들을 전시, 관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고, 작가의 방과 시민참여 문화프로그램, 작가와의 만남 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명 뒤에 부산을 붙인 건 독립출판사로서 지역에 당당히 출범하기 위한 시도입니다. 과거 ‘창비출판사’는 1980년대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조처가 내려졌을 때 독자적으로 서명 운동을 펼치며 저항했습니다. 우리는 그 정신을 받들어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지방 출판문화 개선에 앞장서려 합니다."
-사옥이 상당히 오래된 건물인 듯한데, 입지 배경은요?
"이곳은 1930년대까지 근대 부산 최초의 개인 병원인 ‘백제병원’ 자리였습니다. 저희가 창비 부산 사옥을 찾아 여러 군데를 물색했는데, 부산역과 가까운 점도 있고 부산에서 상징적인 건물이어서 적합한 곳이라 생각했습니다. 단번에 이곳을 임대해 외관은 거의 손을 대지 않았고, 내부도 ‘책’, ‘문학’이라는 테마에 맞추려 노력했습니다."
-개관 2년 반이 지났지만 대부분 부산시민이 이곳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요?
"설립 초기에는 관광 후 돌아가기 위해 부산역을 찾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열차 시간이 남아 역 주변을 둘러보시다가 호기심에 들르신 분들이 많았죠. 그런데 작년의 경우 자체 조사 결과 외지인과 지역주민 방문 비율이 5:5였습니다. 이제는 우연히 들른 분들보다 SNS ‘창비 부산’을 통해 다양한 문화행사 소식을 접하고 일부러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이 늘었습니다."
-창비 부산에서는 어떤 프로그램들이 이뤄지고 있나요?
"많은 분이 처음 방문하셔서 많이 하시는 질문이 “여기 서점 아닌가요?”라는 질문입니다. 저희는 서점은 아니고요. 출판사 창비의 책, 창비 출신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 공유, 홍보하는 북 큐레이션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매년 진행하는 행사로는 ‘독서토론’, ‘저자와의 만남’, 그리고 다양한 '독서클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창하게 모임을 만들어 진행하지 않더라도 이 공간 내부는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어 눈치 보지 않고 앉아서 책에 관해 대화 나누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공간입니다."
-주변에 둘러보니 새 책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판매도 하는 것 아닌가요?
"아, 저희가 처음에는 일절 책 판매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전시, 소개, 홍보 목적으로 비치했던 게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둘러만 보고 가기에는 아쉬운 좋은 책들이 많다는 방문객들의 요청으로 신간을 위주로 소량씩 판매 상품을 비치하고 있습니다. 또한 올해부터는 부산 출신, 부산을 다룬 작품들을 다수 비치할 예정입니다."
-주로 어떤 연령층이 방문하는지요?
"오픈 초 20~30대분들이 많이 방문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엔 가족 단위로 함께 오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그래서 가족끼리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2023년 창비 부산 행사나 계획은요?
"올해는 부산 출신 작가와 작품 전시에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또 초·중·고등학교와 협력해 학교 미술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결과물을 이곳 빈 벽에 전시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호응이 상당했던 편집자학교를 또 한 번 진행할 계획입니다. 편집자학교는 출판사에서 근무하고픈 분들에게 창비에서 3개월간 편집 교육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향후 SNS를 통해 공지할 예정입니다."
이교성 대표는 차분한 모습의 첫 인상과 달리 ‘창비 부산’에 대해 질문하자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인터뷰 내내 부산도 수도권에서만 누리던 문화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은 충분히 수도권을 넘어선 지방의 복합 문화 거점도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향후 '창비 부산'이 독서 출판문화의 견인차로서 어떤 모습으로 활동하고 자리매김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