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등단 후 장편소설 42권 출간...고교땐 영화감독 꿈
최근 새 단편소설 집필... "영원한 현역 작가로 남고픈 마음"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을 나무.” 이 문장은 작가 박범신이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된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소설가로서 자그마치 반세기를 살아온 그의 세계가 궁금했다.
올해로 등단 50주년을 맞은 박범신은 이문열, 최인호와 함께 70~80년대 최고의 인기 작가로 통한다. ‘죽음보다 깊은 잠’, ‘풀잎처럼 눕다’, ‘토끼와 잠수함’ 등 셀 수없이 많은 작품이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박범신은 작가 생활 50년간 장편소설만 42권을 썼다. 성실한 창작활동을 이어온 그는 장편소설 ‘유리’(2017, 은행나무) 이후 약 6년간 소설을 내지 않았다. 소설을 쓰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
지난 2016년 불거진 술자리 성추문 의혹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것이 발단이었다. 소셜미디어 게시글에는 박 작가가 어느 모임 술자리에서 그의 팬과 여성작가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이 있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후 성추행 피해자로 지목된 팬과 여성작가가 전혀 그런 일이 없었다고 밝히며 사건은 단순 헤프닝으로 일단락됐다. 언론사에서 정정보도도 냈지만, 이미 대중의 머릿속에 박범신은 '위험한 노인'으로 깊게 자리 잡은 후였다. 결국 그의 등단 50주년 기념 출판물도 소설이 아닌 산문집 두 권(‘두근거리는 고요’, ‘순례’ )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가 쓴 작품 중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소설은 ‘은교’(2012, 문학동네)다. 소설 ‘은교’는 박해일, 김고은 주연의 동명 영화로도 제작됐다. 소설 속 은교는 노 시인 이적요와 소설가 서지우 두 사제 간의 애증 관계가 주요 서사로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원작에 비해 의미가 달라진 아쉬움이 있었다는 박 작가는 "그래도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표현해낸 ‘촐라체’, ‘고산자’, ‘은교’로 구성된 이 세 소설을 자신이 가장 애착을 갖는 소설”이라고 했다.
박범신은 “작가로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지, 작가로 살아온 지난 세월이 좋은 선택이었는지 이제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다른 직업에 비해 돈이나 명예로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남는 것은 자기만족뿐이지 않을까”라고 했다. 이어 그는 “전(前) 작가가 안 되려고, 현역 작가로 남기 위해 평생 소설을 썼다”며 “영원한 현역 작가로 남는 게 내 평생 꿈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 올해로 데뷔 50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어떤가요?
▲꿈만 같지요. 정말 지난 시간이 연애 한 번 한 것처럼 지나가 버렸어요. 나는 독자들에 많은 사랑을 받은 작가 중 한 명이에요. 죽을 때까지 그 보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작가로 지금까지 살며 너무나 행복했거든요.
-요즘 근황은요?
▲요즘 주로 서울에 있지요. 몇 년 전까지 논산 조정리에 마련한 내 집필실 ‘와초재’가 이제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방됐습니다. 그리고 강경에 소금 문학관이라는 곳이 생겼어요. 나와 내 작품과 관련된 테마로 조성돼있죠. 멀리서 방문하는 손님이 있을 때면 논산으로 내려가 방문객들과 시간을 보내고는 하죠.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라는 두 권의 산문집을 냈는데, 내용을 소개한다면?
▲먼저 '두근거리는 고요'는 신문이나 잡지, 팬클럽 와사등에 올렸던 글들을 책으로 엮었어요. 가장 최근에 쓴 글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순례'는 과거 출간됐던 산티아고 순례길과 카일라스 가는 길, 그리고 폐암 일기 등이 수록돼 있어요. 이번에 낸 두 권의 산문집을 준비하며 등단 50년을 맞아 내 문학 인생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지요.
-2017년 장편소설 ‘유리’를 끝으로 햇수로 6년간 소설을 출간하지 않았습니다.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이 있나요?
▲사실 이번에 발간한 산문집에 그동안 소설을 못 쓴 이유에 대해 털어놨어요. 털어놓고 났더니 한결 가벼워져서 그런지 며칠 전부터 단편 하나를 쓰고 있어요.
-시집 '구시렁구시렁 일흔'에서 “산문의 세계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고 썼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그것은 소설을 의미한 것인데, 소설은 근본적으로 인과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원인과 결과의 잘 짜인 논리 안에서 이야기를 해야 하죠. 논리적으로 빈약하다면 좋은 소설이라고 할 수 없어요. 소설의 한계에 관해 얘기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운문은 다른가요?
▲그렇지요. 운문은 논리적 비약이 없어도 성립될 수 있지요.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운문에서는 자유롭지요.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시인이 되고픈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어요. 시집 '구시렁 구시렁 일흔'은 가슴 속에서만 존재했던 내 오랜 소망의 결정체지요.
-신춘문예에 평생을 도전해 소설가의 길을 걸으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소설가가 되려면 어떤 것을 갖춰야 하나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요.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고, 또 무엇보다 글을 많이 써보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지만 나는 소설을 쓰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갈망이라고 생각해요. 쓰지 않는 고통이 쓰는 고통보다 월등히 클 때 좋은 소설이 탄생한다고 나는 굳게 믿어요. 즉, 자신이 무언가 쓰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존재론적 불안을 느끼는지를 잘 들여다봐야 해요.
-저서 중 많은 작품이 영화, 드라마로 영상화 됐습니다. 소설, 즉 텍스트가 영상화될 때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없는 게 아니라 아쉬운 점이 너무나 많지요(웃음). 하지만 나는 내 소설이 영상화됐을 때 이미 또 다른 작품으로 탄생 됐다고 생각해요. 소설에서 말하는 바를 영화에서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면 원작자로서는 보람을 느끼겠지요. 하지만 영화로서는 감독과 극작가의 의도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봐요. 나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에도 조예가 깊어요. 고교 재학 중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했지요.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겉으로 내색하지 않고 최대한 존중하려 합니다.
-다작으로 유명입니다. 수많은 소설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그건 어린아이에게 엄마가 좋은지 아빠가 좋은지 묻는 것과 같은 질문이라 작가에게 매우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하지만 나도 자식을 길러보니 유독 애착이 가는 애가 있어요. 열 손가락 중 유독 아픈 손가락이 존재하는 법이지요. 나는 내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더러운 책상’과 ‘흰 소가 끄는 수레’를 가장 아껴요. 그리고 갈망의 3부작도 내가 애착을 갖고 집필했던 작품입니다.
-독자들에 하고 싶은 말은?
▲꽤 오랜 시간 소설을 출간하지 못해 독자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아쉬움을 표현하는 것을 전해 들었어요. 나는 작가로서 꽤 운이 좋았던 작가예요. 과분할 정도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죠. 내가 젊은 시절엔 소설이 지금보다 훨씬 많이 팔렸던 시대적 배경이기도 했겠지만, 나에 대한 독자의 사랑도 엄청났다고 생각해요.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가슴에 품고 있어요. 얼마 전 단편 하나를 쓰기 시작했어요. 머지않아 세상에 내놓을 겁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소설 쓰기가 이어지길 바랄 뿐이에요.
작가 박범신은 인터뷰 중 유독 소설과 문학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한평생 소설을 써온 작가임에도 글에 관한 얘기를 할 때면 문학 소년으로 돌아간 듯 그의 가슴이 뛰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등단 50주년에 소설이 아닌 산문으로 독자 앞에 선 것에 대해 부채감을 느낀다고 했다.
기자는 문득 작가의 그 말을 듣고서 1993년 문화일보에 장편소설 외등을 연재할 때 어느 날 갑자기 언론에 “나의 상상력의 불은 꺼졌다”라는 문장만을 남긴 채 절필 선언을 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3년 만에 문단에 복귀 의사를 밝히며 발표한 소설 ‘흰 소가 끄는 수레’는 작가 인생 통틀어 박범신 문학의 최고봉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 사람이 지금껏 살아온 길을 보면 앞으로 그 사람이 살아갈 모습이 보인다고 했던가. 소설을 발표하지 않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기대가 커지는 느낌은 비단 기자만의 감정은 아닐 것이다.
※본 인터뷰는 박범신 작가님과 전화 인터뷰로 진행됐음을 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