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자사회가 ‘윤리적 언론’을 추구하고 나섰다. 한국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모든 보도·논평 종사자가 실천해야 할 핵심원칙을 담아 ‘언론윤리헌장’을 제정했다. 추락하는 한국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기자사회가 새삼 시도하는 자구(自求)노력의 하나다. 그 시도, 한편 공감할 만하다.
헌장은 언론인의 주요한 목표·과제 9개 원칙을 명시했다. ①진실 추구 ②투명한 보도와 책임 있는 설명 ③인권 존중 및 피해 최소화 ④공정 보도 ⑤독립 보도 ⑥갈등 해결 및 신뢰 제고의 공론장 제공 ⑦다양성 존중 및 차별 반대 ⑧품위 있는 행동과 이해상충 경계 ⑨디지털 기술로 저널리즘의 가능성 확장 등이다.
헌장은 서문에서, 언론의 존재이유를 확인했다. 언론은 시민을 위해 존재하며, 시민의 신뢰는 언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다. 시민의 알 권리 충족과 민주주의 가치 실현을 위한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도 강조했다. 언론의 본질적 기능을 새삼 주목했다. 권력 감시·비판을 통한 민주주의 발전에의 기여다. 저널리즘의 원칙·책무에 충실한 ‘윤리적 언론’을 추구하겠다는 다짐이다.
본문 9개 항의 주어(主語)는 ‘윤리적 언론’이다. (진실 추구)윤리적 언론은 진실을 보도한다. 진실 추구는 언론의 존재 이유다, (공정 보도)윤리적 언론은 특정 집단·세력·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한다, (갈등 해결‘윤리적 언론은(···)진영논리에 빠져 특정세력을 편들거나 반대세력을 과도하게 공격하지 않으며(···) 같은 문맥이다.
언론윤리헌장이 선언하는 바는 뚜렷하다. 전문 언론인이 추구해야 할 직업적 특성, 그 ‘언론윤리’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언론의 본질적 기능에 충실하며 공공복리에 기여해야 할 언론인, 그 ‘전문인’의 직업윤리를 새삼 깨우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문맥은 언론윤리 영역의 많은 고전과 원칙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언론인의 신조’(The Journalist's Creed)(1914), ‘언론윤리강령’((The Canons of Journalism)(1924),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A Free and Responsible Press)(1947) 같은 언론윤리의 규범적 틀로부터, 윤리영역의 TUFF 공식(Truthful-Unbiased-Full-Fair), 램베스의 윤리 프레임(진리보도-공정-자유의 원칙), ‘저널리즘의 기본요소’(2000) 같은 현장취재의 지침까지···.
돌아보면, 한국기자협회는 이미 ‘윤리강령’(1957)과 실천요강들을 갖고 있다.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가진 언론인 최일선 핵심존재로서 공정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는 행동기준이다.
강령은 언론자유-공정보도-품위유지-정당한 정보수집-올바른 정보사용-사생활 보호- 취재원 보호-오보의 정정-갈등·차별 조장 금지···. 언론인이 직면하는 취재․보도 기법상의 언론윤리를 세세하게 규정, 준수를 다짐하고 있다. 전체적 맥락에서, ‘윤리강령’과 ‘언론윤리헌장’은 큰 차이가 없다.
한국기협은 이 윤리강령과 실천요강 외에도, 여러 강령과 권고기준, 보도준칙, 실천선언을 갖고 있다. 자살보도, 인권보도, 군 취재보도, 재난보도, 감염병보도, 성폭력·성희롱 사건보도, 선거여론조사 보도 등 관련이다. 한국 기자사회는 전통적 언론윤리 강령과 촘촘한 실천요강을 갖고, 또 윤리헌장을 선언했다.
기자사회로선 이즘 한국 언론의 신뢰 추락을 외면할 수 없었을 터다. 새 윤리헌장을 제정·선포한 상황에 공감과 연민의 정을 느끼는 이유다. 그러나, 그 기자사회가 그 신뢰 추락의 원인 분석과 뼈를 깎는 자성에 소홀함은 참 아쉬운 바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언론의 신뢰가 떨어지고 기자들이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이유, 윤리강령의 허술함 때문은 아니지 않나.
우리 언론이 민주국가의 존립을 위한 기초로써, 사회통합·여론형성에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이유는 뭔가? 우리 기자가 언론의 존립바탕이라 할 그 진실·공정을 외면하며 역사의 현장에서 우왕좌왕하는 이유는 또 뭔가? 언론과 기자, 사회갈등의 심화에 따른 진영논리와 자사 이기주의에 침몰한 때문 아닌가?
한국 사회를 온통 이념적 내전상황으로 몰아넣은 연전의 ‘조국 사태’를 보라. 언론이 끝없는 진영논리에 침몰, 본질을 외면하며 갈등을 증폭시킨 것은 겪은 대로다. “'조국 감싸기'에··· 한겨레 이어 KBS도 내부반발”, 당시 기사 제목이다. 정부비판 성향 언론도 예외일 수 없다. 조선일보 독자권익위의 비판이 있다. “언론들은 자기 진영 논리만 주장, 대변, 확대했다”는 질책이다.
‘진보논객’ 진중권은 최근 ‘페북 절필’을 선언하며 굳이 언론의 정파성을 거론했다. 위조 표창장을 진짜로 둔갑시킨 MBC ‘PD수첩’, 이상한 증인으로 진실을 호도해온 TBS ‘뉴스공장’, 조국 일가를 비호하려 여론을 왜곡한 다양한 어용매체, 국민을 속여온 수많은 어용기자를 비판했다.
마침, 진중권이 비판한 ‘어용 지식인’, 그 유시민의 처절한 자성도 있다.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정치적 다툼의 당사자처럼 행동했다",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 ”입증 가능성을 검토하지 않고 충분한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다“,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기본을 어긴 행위였다···.“
언론학자 강준만은 최근, 저널리즘의 품격을 얘기하며 언론의 신뢰회복을 위한 분발을 새삼 강조했다. 언론은 종래의 ‘권력 모델’ 대신 겸손·신뢰·실력을 갖춘 '봉사 모델'로 전환해야 하리라는 것, 종교적 신념에 가까운 정파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선 그만한 (언론윤리적)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신문과 방송' 2021년 1월호).
진중권의 직설적 언론 비판과 유시민의 처절한 자기반성, 강준만의 애정 어린 조언에서 우리 언론과 기자가 느껴야 할 바는 뭔가? 언론윤리에 몽매한 ‘사이비 언론인’의 자성 문맥에서, 언론윤리에 철저해야 할 기자들은 정녕 당당할 수 있나? ‘언론윤리헌장’ 제정에 즈음, 언론의 가벼운 현실 인식과 기자의 소홀한 자성 의지를 아쉬워하는 이유다.
[덧붙여]
1. 한국 언론의 신뢰도는 최악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의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20’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40개국 중 언론 신뢰도 21%로 최하위다. 지난해에도 22%로 최하위였고, 조사에 포함된 이래로 매년 최하위권이다(미디어오늘).
언론 신뢰도는 왜 추락하나? 그 변수는 정권이 아니라 언론의 행동이라는 지적이 있다. 정준희 교수(한양대)는 “결국 언론 신뢰도는 정권이 변수가 아니라, 정권이 만들어 낸 환경에 언론이 어떤 행동들을 했는가에 의해 평가받는다”고 설명한다(미디어스). 그 신뢰도 저하? 언론 스스로 저널리즘의 진실추구 원칙을 거스르며 불공정의 늪에 침몰한 자해적 행동의 결과다.
[차용범 칼럼]한국언론과 '조국 보도’, 공정성, 진영논리, To be or Not to be
//liliumpumilum.com/news/articleView.html?idxno=24578
2. 한국 언론의 신뢰 회복, 어디에서 출발할 것인가. 저널리즘의 전통적 과제, 공정성·정확성부터 되찾아야 한다. 특히, 공정성, 그리 어려운 개념도 아니다. 공정보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 BBC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라. "우리는 편들지 않는다(We don’t take a side). 세계적 권위지 WP의 주문 역시 결은 같다, “기자는 기사를 마무리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공정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뉴스 사회학의 시조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은 말한다. “뉴스란 ‘사회적 모든 상황의 반영 아닌, 눈에 띄는 측면에 대한 보고”라고-. 언론은 특정한 독자·시청자를 위해 시각·지침을 바꿀 순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대 저널리즘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전통적 과제, 정확성·공정성이다. 특히 언론이 공정성을 의심받는 순간, ’언론‘은 이미 ’언론‘일 수 없다는 것이다.
3. 한국 언론의 신뢰성 위기, 돌파구는 있다. 언론윤리에 철저하며, ‘최고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번 윤리헌장도 공정보도를 되짚으며, 정파적 보도를 넘어서는 것이 언론계 지상과제임을 강조했다. 공정보도, 그건 ‘언론윤리헌장’의 규정에 앞서, 언론윤리의 핵심개념인 것이다.
기자는 ‘전문직’이다. 진정한 의미의 전문인((true professional)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직업이다(딘 밀스). 사회적 요구와 기대에 부응할 전문적 기술·능력과 함께, 늘 윤리적으로 정당한 행위인지를 회의할 도덕적 반성력을 지녀야 한다. 언론의 공적 과업과 책임이 중요한 만큼, 언론인의 드높은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미국 ‘언론인의 신조’(The Journalist's Creed).
나는 믿는다, 언론인은 한 전문직이라고(I Believe In the profession of journalism). 나는 믿는다, 공공의 언론은 공공의 신뢰 그 자체이며 공공에 대한 봉사보다 가벼운 대상에의 봉사는 이러한 신뢰에 대한 배신임을.
나는 믿는다, 분명한 사고와 명백한 진술, 정확하고 공정한 취재가 훌륭한 언론인을 위한 지름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언론인은 스스로 마음속으로부터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만을 기사화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뉴스를 억압하는 것은 공공의 행복이 아닌 어떤 명분으로도 전혀 변명할 수 없는 행위라고. 나는 믿는다, (…) 훌륭한 언론에 대한 최상의 가치 척도는 공공에 대한 봉사의 정도라고.
5. 우리 기자사회, 그 언론윤리를 어떻게 이해하며 체화할 것인가? 그러잖아도 우리 언론인의 전문직화 수준은 날로 저조하다. 기자들은 더, 자주 언론윤리를 토론하며 윤리적 쟁점을 의식하고 문제해결 능력을 높여가야 한다. 한국 언론, 강고한 진영논리에의 함몰한 그 상당수 기자들을, 어떻게 ‘윤리적 언론’으로 끌어갈 것인가? 정녕, 언론윤리헌장에 기대는 것만으로, 오늘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