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첫째 의무는 진실 추구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검증의 규율에 있다…. 언론인에게 가장 중요한 정확성․공정성 추구, 그건 언론윤리의 핵심가치다. 존재하지 않은 것을 덧붙이지 말라, 독자․시청자를 속이지 말라, 방법과 동기에 관해 가능한 한 투명하라…. 그 규율의 우뚝한 신조는 “절대로 조작하지 말라”는 것이다. 저널리즘의 위기 속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핵심원칙, 빌 코바치의 ‘저널리즘의 기본요소’(2000)를 되새긴다. 그 저널리즘 철학은 언론의 존재가치를 논함에 있어 더 이상 명쾌할 수 없다.
MBC의 ‘대통령 비속어 사용’ 보도에 따른 논란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하다. 정부․여당은 그 보도의 정확성 결함을 들어 보도경위 설명을 요구하다, 끝내 언론사를 형사 제소했다. MBC는 그 보도과정을 설명하는 대신, 정부․여당의 대응을 ‘언론 탄압’으로 항변하고 있다. 그 소모적 논쟁에 따른 정치적 혼란, 국민의 피로감은 만만찮다.
문제의 ‘비속어 논란’에 따른 정부의 대응은, 안타깝다. 비공식 시․공간에서 내뱉은 경솔한 발언을 두고, 정확한 워딩(wording)이며 맥락을 설명하지 못한 채 어설프게 대응했다. 특정 언론의 부정확-불공정 보도라 한들, 우선 대통령의 부적절한 언어부터 ‘쿨(cool)'하게 사과하며 정면으로 돌파할 순 없나. 세계적 경제위기며 동북아의 안보위기 속, 그게 그렇게 언론과 대치하며 국민의 입살에 오르내릴 일인가?
MBC의 대응 태도 역시, 미덥잖다. 그 누가 보도의 정확성을 문제 삼는다면, 그 보도의 사실 검증과정을 설명해야 하지 않나? 그 정확성 설명 책임, 스스로 강령에서 선언한 약속이지 않나? 그런 노력 없이 ‘오보(誤報)’에의 항의를 그저 ‘언론 탄압’으로 강변하는 건, ‘MBC 저널리즘'의 신뢰를 떨어뜨릴 뿐 ‘공영언론’의 책임 있는 자세일 순 없다. 모든 자유가 그러하듯 언론의 자유 역시, 책임 없이 홀로 설 절대적 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의 함의는 분명하다. 한국 언론에 있어 ‘자막 조작'론의 현실적 위험은 무엇보다 심각하다는 것, 그건 그 보도관행 혹은 저널리즘의 미래에 심각한 경종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MBC가 그 보도에서 ‘정확성’을 추구한 노력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언론법제며 언론윤리, 보도강령을 두루 외면한 보도다. 자막을 조작한 것도 사실이다. 이건 저널리즘의 기본원칙과 검증의 규율을 거스른, 언론의 실패 형태다.
1. 보도의 사실관계. MBC가 대통령의 ‘뉴욕 발언’을 보도하며, “(미국)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란 자막을 달면서부터다. MBC가 발언이 뚜렷하지 않은 부분을 어떻게 ‘바이든’으로 확정했는지, ‘국회에서’ 앞에 ‘(미국)’을 왜 넣었는지가 문제다. MBC는 추가 취재로 발언의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는 대신, 자기만의 해석을 자막으로 단 것이다. 그건 검증의 규율에 충실한 보도일 수 없다.
‘국회’는 한국 국회를 가리키는 고유명사다. 그 앞에 ‘미국’을 넣어 미국 의회인 양 전달한 것, 그건 변명할 거리도 없다. 결국 MBC는 자기 해석대로 자막을 제작, 인간의 연약한 인지(認知)에 따른 ‘기준점 편향’ 효과를 부추긴 것이다. 다른 방송사의 보도는, MBC가 먼저 ‘터뜨린’ 이후에 등장했다.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세월호 침몰 외부 충격설’처럼, ‘팩트’에 관계없이 원하는 효과를 창출하는 ‘대안적 사실’의 영역을 만들어낸 것이다(고정애).
<음성인식 전문가 "바이든 안 들린다…MBC, 엉터리 자막 변조">, 음성인식 전문가 성원용 교수(서울대)는 “문제의 핵심은 데이터 변조”라고 직설한다. 그는 “문제의 발언을 자동음성인식기에 넣어본 결과, 어떤 인식기에서도 ‘바이든’이라는 단어를 찾을 수 없었다”면서, “당연 ‘바이든’이라고 듣는 사람의 귀가 더 예민하다 믿을 근거는 없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이 그 부분을 ‘바이든’으로 듣는 것, 그 자막 정보가 매우 선명한 사전정보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성 교수는 “그 발언은 매우 잡음이 많고 불분명한데, 여기에 MBC는 자의적으로 자막을 달아서 송출했다”면서, “데이터 변조가 언론의 자유와 혼동이 된다면 정직과 투명, 논리적 설득이 아니라 거짓말과 술수, 선동이 난무하는 세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덧붙였다, “야당이나 일부 언론도 이 문제를 두고 MBC를 옹호할 일이 아니다”라고(중앙)
.그렇다. 이번 논란에서 그 누구든 MBC를 옹호할 일이 아니다. MBC 내부의 지적처럼, MBC는 보도 과정에서 보도준칙-언론윤리-저널리즘의 원칙을 지킨 흔적이 없다. 그 좁은 언론법제의 영역, 나아가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의 철학을 경시했다. MBC가 보도․제작 과정에서 보여온 온 부끄러운 일탈의 역사는 이것뿐이랴.
2. 우선 원칙론. 언론의 자유는 민주사회의 존립․발전을 위한 필수요소다. 헌법은 언론․출판의 자유를 두텁게 보호하며 타인의 명예-권리 침해에 따른 책임도 규정한다. 법제는 판례원칙까지 포용하며 언론의 면책사유를 폭넓게 인정한다. 오직 ‘진실한 보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이라고 믿은 상당한 사유’를 인정하는 것이다. 오늘날 언론 보도가 개인의 자유·권리를 침해할 가능성은 날로 높다. 공직자는 물론 일반국민도 문제 있는 언론보도에 적극 대응하는 추세다.
기억하는가? 문재인 정부 말기, 정부․여당이 ‘언론개혁’의 미명 아래 집요하게 추구한 ‘언론중재법’ 개정 파동을. 언론보도에 징벌적 배상을 물리려는 그 ‘언론악법’, ‘가짜뉴스’ 프레임으로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정보 통제의 한 양상이다. 그 언론자유 억압 악법을 끝내 좌초시킨 것, 그건 '언론자유 보호'에 대한 시대적 결의 아래, 언론계가 모처럼 단합하고 다수 국민의 반발, 국제 언론단체의 비판이 함께 한 덕분이다.
[차용범 칼럼] 한국 언론자유, 존망을 다투다; 권력, ‘언론탄압법’ 독주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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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언론보도, 폭넓은 면책사유의 혜택을 받되 보도의 진실성과 공익성을 입증해야 한다. 언론에 특별한 면책사유를 인정하는 것은 오직 그 보도가 ‘진실한 사실’을, ‘공익을 위해’ 보도했을 경우에 한해서다. 언론이 ‘특별한 대우’를 받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 그것은 보도의 진실성(정확성)-공익성(공공성)이다. 자유롭고 책임 있는 언론‘, 그건 자유민주주의 언론이 추구할 기본적 철학이다.
3. 언론은 법제를 뛰어넘는 수준의 윤리도 준수해야 한다. 한국 기자사회는 연전, 모든 보도·논평 종사자가 실천할 핵심원칙을 ‘‘언론윤리헌장’으로 다짐했다(2021). 추락하는 한국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해, 기자사회가 새삼 시도한 자구(自求)노력이다. 헌장은 언론인의 목표·과제 9개 원칙을 명시했다. 진실 추구, 투명한 보도와 책임 있는 설명, 공정 보도 등이다.
헌장은 서문에서, 언론의 존재이유를 확인하며, 저널리즘의 원칙·책무에 충실한 ‘윤리적 언론’을 다짐했다. (진실 추구)윤리적 언론은 진실을 보도한다. 진실 추구는 언론의 존재 이유다, (공정 보도)윤리적 언론은 특정 집단·세력·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한다… 같은 문맥이다. 언론윤리의 공통적 키워드는 진실보도(정확성)-공정보도(공정성)다.
[저널리즘 세계·한국언론 이슈-27]한국언론의 존재이유와 정확·공정성 찾기, 새 ‘윤리헌장’으로 충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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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협회는 일찍부터 ‘윤리강령’(1957)과 실천요강을 갖고 있다.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을 알릴 의무를 진 최일선 핵심존재로서 공정보도를 실천할 사명을 띠고 있으며, 기자에게는 다른 어떤 직종의 종사자들보다도 투철한 직업윤리가 요구된다는 행동기준이다. 그 기자사회는 전통적 언론윤리 강령과 촘촘한 실천요강을 갖고 있고, 직군별-회사별 취재준칙도 운용한다.
방송기자연합회의 강령을 보라. “취재와 보도는 무엇보다 정확해야 하며, 단편적인 보도를 지양하고 완전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전문 아래, 세부 행동지침과 기준을 정하고 있다.
*정확하고 완전한 취재 보도; 우리는 충분한 사실 확인을 거친 사안만 보도하며, 작은 내용이라도 이해 관계자의 반론을 들어 사안을 완전하게 보도하도록 노력한다. 취재 내용이 불분명할 때에는 충분한 사실이 확인될 때까지 보도를 미룬다, 단편적 정보를 무분별하게 보도함으로써 뉴스 이용자의 오해를 초래하지 않도록 반드시 맥락을 고려해 취재 보도한다.
*정직하고 책임 있는 취재 보도; 우리는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해서 보도하며,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지 않는다, 취재와 보도가 불완전한 것으로 드러나는 경우 적극적으로 잘못을 바로잡는다. 보도 내용에 대한 이견이 제기되거나 오해가 발생할 경우 적극적인 설명을 할 책임을 진다.
이쯤에서, MBC에 묻는다. MBC는 우리의 언론 법제와 윤리 앞에, 특히 ‘검증의 규율’과 취재강령 앞에, 정녕 당당한가? MBC의 이번 보도는 과연 정확하고 완전한 보도이며 맥락을 고려한 취재인가? 과연 정직하고 책임 있는 보도이며 보도내용의 이견에 대해 적극적 설명을 할 책임을 지고 있는가? “MBC가 공영방송에 합당한 신중함․책임감․불편부당함을 보인 흔적을 찾기 어렵다”는 내부 한탄이 나온 건 왜인가?
4. 저널리즘의 위기 속에서 언론이 지켜야 할 핵심원칙, 그 ‘저널리즘의 기본요소’를 되새겨야 한다. 국민이 언론에 갖는 불만․요구사항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언론 자유의 철학적 배경과 함께 기자가 알아야 할 것과 독자가 기대하는 것을 정리한 원칙이다. 이쯤에서 다시 MBC에 묻는다. 이번 보도, 과연 진실을 추구한 검증의 규율에 충실했는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덧붙인 것은 없는가, 검증 대신 단정하고 사실 대신 조작한 것은 없는가?
[저널리즘세계·한국언론이슈-32] 저널리즘의 기본을 찾아서: 잇따른 언론윤리·취재윤리 논쟁을 보며
//liliumpumilum.com/news/articleView.html?idxno=31366
“야당이나 일부 언론도 MBC를 옹호할 일이 아니다”, 그 말뜻을 되새긴다. 야당과 일부 언론계 는 ‘언론자유에의 위협’을 들어 문제의 보도를 옹호하고 있으나, 그건 논쟁의 초점을 상실한 처사다. 더러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언론탄압’ 프레임의 우위를 강조하고 있으나, 그 여론으로 언론사회를 규율하는 절대불변의 가치를 넘어설 순 없다. 검증 대신 단정, 사실 대신 조작의 저널리즘을 옹호한다? 그건 언론의 자유, 그 숭고한 가치를 모독하는 행위다.
“(MBC노조 공감터) MBC 직원이라면 아셔야 합니다”, 이즘 논란을 달구는 SNS 글이다. 문제의 보도가 나온 배경-과정, 문제의 핵심-맥락을 고발한다. 이 글도 ‘자막 조작’의 영향을 심각하게 직시한다. 팩트체크 노력이 없었다, 어느 언론이 다수결로 팩트를 확정하나? ‘(미국)국회’, 그 하지도 않은 말을 자막으로 처리한 건 변명의 여지도 없다, 뉴스룸 차원의 검증 노력은 전무했다….
이 글은 MBC 보도의 공정성 상실과 함께, 정치적 의도(?)까지 짚고 있다. “많은 국민에게 MBC는 ‘만나면 좋은 친구’가 아니라 ‘듣기만 해도 짜증 나는 존재’다”, 글 마무리 부분은 참 허전하다. '뉴욕타임스(NYT)'의 ‘이라크전 오보 사과’ 사례를 들며 회사 차원의 진상조사와 사과를 촉구하기도 하나, 그건 MBC가 결단할 일일 터다.
한국 언론에 대한 평가는 날로 냉혹하다. 뉴스의 완성도며 저널리즘 행위의 윤리적 측면, 특히 언론의 전문성․정확성․공정성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 결국 언론 스스로 저널리즘의 진실추구 원칙을 거스르며 불공정의 늪에 침몰한 자해적 행동의 결과다. 기자들이 저널리즘의 기본을 잃고 진영논리·왜곡보도에 탐닉하며 저널리즘의 붕괴를 재촉한다? 직업윤리를 망각하며 언론의 품격을 잃는 일탈에 빠져든다? 우리 사회에서 그런 스산한 언론이 무슨 소용이랴?
언론의 신뢰 회복, 어디에서 출발할 것인가. 저널리즘의 전통적 과제, 공정성·정확성부터 되찾아야 한다. 공정성 역시, 그리 어려운 개념도 아니다. 공정보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 BBC의 캐치프레이즈를 보라. "우리는 편들지 않는다(We don’t take a side). 세계적 권위지 WP의 주문 역시 결은 같다, “기자는 기사를 마무리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공정했는가?’를 스스로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MBC가 근래 보여온 진실성 상실과 기만적 취재 같은 언론 윤리-법제 위배, 또는 올림픽 중계과정의 허황한 실패 사례는 두루 열거할 필요도 없다. MBC는 이제 정말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MBC 로고송 ‘만나면 좋은 친구’의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 MBC가 이번 기회를 그냥 넘긴다면, 공영방송의 존재가치를 좀처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어차피 언론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의 존재 역시 예전처럼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
이제 MBC 앞에는 ‘MBC 저널리즘‘의 생사를 건 냉정한 질문이 남아 있다. 스스로 진실성-공정성 상실의 보도․제작 사례를 반성하고 사과하며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 지금처럼 오만한 자세로 ’MBC 저널리즘‘의 타락을 가속할 것인가? ’MBC 저널리즘‘, 정녕 살려 들면 살 것이고 죽으려 들면 죽을 것이다. MBC의 선택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