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벌써부터 공정·정의의 감각을 잃고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하는가?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갖곤, 지난해에 이어 올 새해 기자회견도 외면하고 있다. 취임 초기 출근길 약식문답을 6개월 만에 중단하곤, 1년 넘도록 언론과의 질의응답을 피하고 있다. 국정 전반에서 가족사 의혹까지, 국민과의 소통에 게으른 모양새다. 그의 정치적 지지층은 그 ‘불통 태도’를 특히 걱정하며 그를 떠나고 있다(에스티아이 심층조사).
대통령은 왜, 언론과의 잘의응답을 피하는가? 그는 의욕을 갖고 시도했던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취재기자와의 마찰 끝에 중단했다. 미국 방문 때의 MBC 보도(‘바이든 vs 날리면’ 논란)로, 방송사와도 갈등을 빚고 있다. 언론윤리에 취약한 일부 언론(혹은 ‘사이비언론’)의 불공정·부정확한 보도행태에 실망한 바도 없지 않으리.
그럼에도, 대통령의 대응을 보는 우려는 크다. 대통령은 막중한 권한을 가진 국가권력의 집행자로서, 그 권한에 상응한 설명책임을 져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는 자유주의 체제의 기본적 인권이며, 정부는 그 권력 행사의 투명성․개방성 위에 국민에의 ‘설명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할 민주주의는 날로 개방의 요구를 재촉하고 있다. 언론과의 질의응답, 그건 대통령의 피할 수 없는 책무이다.
원래 권력과 언론의 관계는 갈등관계다. 민주사회 언론의 존재의의는 권력의 권리남용을 감시·비판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여론을 얼마나 듣고 싶어 하고, 그를 위해 언론과 어떻게 접촉하는가? 언론의 (불편한)질문에도 얼마만큼 책임 있게 답변하는가? 이런 의지와 방식에, 권력-국민 소통의 성공이 달려 있다. 대통령은 되새겨야 한다, 언론의 기능을 이해하며 언론의 질문에 호응해야 한다. 대통령직의 진중(鎭重)함 위에서 직분에의 존재이유를 찾아가야 한다.
1. 대통령의 신년회견은 민주국가의 통상적 소통방식이다. 국정 책임자가 새해 국정의 방향과 시정(施政)의 각오를 밝힐 기회다. 언론이 국민을 대신해서 궁금한 사안을 묻거나 따질 기회이기도 하다. 대통령과 국민의 그런 소통은 얼마나 소중한가. 윤석열 대통령은 이 신년회견을 2년째 갖지 않고 있다. 우리 대통령사(史)에서 신년회견을 거른 두 번째 사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22년 퇴임을 앞두고, 여러 국가적 현안 속 신년회견을 외면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회견을 외면하는 이유? 여러 짐작과 평가가 있다. 우선 대통령 3년차, 그의 정책을 둘러싼 박(薄)한 평가와 불통(不通)에의 실망이 있다. 국민의 관심사, ‘KKH(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질문도, 총선 앞의 당정관계에 간한 논란도 성가신 부분이리. 올 국정 운영을 주제 삼아야 할 신년회견이 여러 정치적 논란에 흽쓸린다는 것,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언론과의 질의-응답을 피할 수 없다. ‘김건희 리스크’ 관련 질문이 더러 껄끄러울지언정 그는 ‘김건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그 사안에 대한 국민적 시선은 따갑다. 4월 총선 앞, 그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여당의 지지율 역시 지지부진하다. 세계적 안보 환경이며 국내적 사회·경제 상황은 그리 녹녹한가? 국가적 생존을 다투는 불확실성 시대, 대통령의 생각은 과연 어떤가? 국민들이 ‘듣고 싶은 바’를 한사코 피한다? 그건 국민을 대하는 도리도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당일,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정부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현실정치 경험 없이 당선, 새 정치에 대한 다짐과 함께 국민에의 설명책임을 떠올린 것 같다. 그런 그가 취임 100일 회견 뒤로는, 그 약속을 잊고 있다. 그는 올해도 기자회견 대신 특정 언론사와의 단독 인터뷰를 검토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국민과의 올바른 소통방식일 수 없다. 그는 정녕 ‘기자회견 단 1회’의 기록을 남기고 싶은가.
2. 대통령의 언론 소통, 미국 모델을 볼 만하다. ‘역사상 최고 대통령’ 링컨의 성공은 언론관계의 성공에 기반했다. ‘링컨은 신문과 싸우지 않았다: 언론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한 한 대통령의 이야기’-견고한 이상을 현실에 조화시킨 지도자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야기다. 그가 ‘남북전쟁’을 치르며 거대한 사회갈등을 풀고 미국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던 것은 언론관계의 성공 덕분이다.
“언론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더라도 공직자가 질문을 받아야 할 의무를 가볍게 만들지는 못한다”, ‘백악관 기자실의 전설’ 헬렌 토머스 기자의 말이다. 당연히 미국 대통령은 기자회견에 성실했다. 고령의 조 바이든은 연평균 28회의 기자회견에, 지금까지 400번의 질의응답 시간을 갖고 있다. 허버트 후버는 연평균 82회 기자회견을 가졌다는 기록도 있다(미국 대통령 프로젝트 사이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언론관계 역시 언론·권력 모두가 부러워할 전형이다. 오바마는 재임 동안 158차례 기자회견을 갖곤, 퇴임식에서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나를 단련시켰다”고 회고했다. 오바마, “오바마는 '소통'했고 국민들은 '존경'했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눈여겨봐야 할 언론관이요 본보기다.
“백악관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비판)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알아차린다. 여러분의 일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구심점이며, 그것이 오바마를 더 나은 대통령, 더 나은 공직자로 만들었다. 그건 여러분이 결코 우리를 살살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시절 ‘역대 최고의 대변인’이란 칭송을 들었던 조시 어니스트의 고별사다.
3. 이대로 갈 순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역사적 좌표를 생각하면, 그의 실패는 단지 그 한 사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당장 국민이 걱정하며 대통령의 생각을 듣고 싶은 의제는 또 얼마나 많은가. 최근 당정마찰 과정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인식과 태도를 보면, 그는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언제까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하기 싫은 말’은 안 할 수는 없다. 묻고 따지는 언론이 귀찮고 지겹더라도, 질의응답을 통해 국정 비전을 밝히며 국민이 안심할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최근 ‘KHH 리스크’를 설명하는 방식 역시 공영방송과의 대담형식을 검토한다니, 대통령은 언제까지, 그의 특권이며 책무, 그 기자회견을 회피할 것인가. ‘공정·정의의 큰 승부사’, 그 윤석열은 어디로 간 것인가.
당면한 국가적 위기는 결코 만만찮다. 중요한 국정 아젠다는 보이지 않고, 장관․참모들도 대통령의 그늘에 숨어있는 모양새다. 그럴수록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쏟아내는 대신, 경청(傾聽) 리더십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야 한다. 국민․언론과 공감하고 소통하며 ‘대통령다움’을 아는 진중(鎭重)한 대통령으로 다시 서야 한다. 언론의 기능을 이해하며 언론의 질책에 호응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되새겨야 한다, 대통령은 ‘민심과의 동행’을 위해, 삿된 ‘간신’보단 직언을 마다치 않는 ‘충신’을 좀, 널리 구했으면 좋겠다. ‘대통령의 사람’을 자처하며 당과 대통령을 망칠 ‘졸물’보다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알고 말할 ‘현사(賢士)’를 곁에 두고, 헌법적 책무를 수행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통령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을 찾아갔으면, 정말 좋겠다.
대통령은 냉정한 현실인식 위에,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유연함을 보여야 한다. 언론이 왜 그것을 묻고 질책하는가, 그에게 공정․정의를 기대했던 유수 언론은 왜 비판대열에 들어섰는가? 그는 국민이 실망할 때 그 실망에 진심으로 각성하고, 일상을 힘들어할 때 그에 필사적으로 응답해야 한다. 대통령은 무엇보다 독선․불통의 이미지부터 씻고, 서둘러 국정의 동력을 찾아가야 하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