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이즘, 대통령실 청사에서 ‘출근길 문답’을 갖고 있다. 중요 인사가 청사를 드나들며 취재진과 문답을 갖는 도어스테핑(door stepping), 국내 정치환경에선 생소하다 할 만큼 파격적이다. 역대 대통령한테선 상상할 수 없던 직접 소통, 국민과 취재기자에게 낯선 풍경이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수시로 언론과 소통하는 대통령’을 다짐했다. 그 약속의 실질적 정착, 한국 정치-언론사에 기록할 긍정적 변모다.
국가안보 라인의 상황설명 역시 직접적-전문성 측면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한․미정상회담 결과,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북한관련 NSC 회의 결과 브리핑을 보라. 안보실장은 정상회담 결과에 붙여, 우크라이나 무기지원 논의 여부까지, ‘확실하게’ 답변했다. 1차장은 북한의 마사일 발사에 따른 의도와 핵실험 준비 동향까지 예민한 정보 사안도 아울러 설명했다. 그 실명(實名)보도, 깔끔한 설명과 분석 전달에, 정부의 자신감도 그대로 드러났다.
대통령과 안보 라인의 ‘선전(善戰)’에 비하면, 대통령실 소통 라인은 아직 ‘졸전(拙戰)’ 중이다. 국민 소통에의 열정과 자질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여소야대 속 정부 출범 초기, 국민에게 알리거나 동의를 구할 현안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중요직책의 인선이며 정책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할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전임 정부의 ‘불통’ 관행 속, 특히 언론 브리핑의 범위와 깊이에서 언론과 국민의 기대에 한참 모자란다.
최근 퇴임한 미국 백악관 대변인 젠 사키는 대통령 취임 당일 언론 브리핑을 시작했다. 첫 브리핑에서, “브리핑룸에 진실성․투명성을 다시 들여오겠다”며, “(주말 빼곤)매일 브리핑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1년4개월 여, 하루 평균 1시간 30분 분량의 1일 브리핑을 계속했다. 약속대로, 진실성․투명성에 바탕한 브리핑과 언론을 존중하는 친절함으로 호평을 받아 왔다. 젠 사키의 뜨거운 열정과 탁월한 자질, 그 빛나는 품격은 오직 미국만의 성공 사례인가?
1,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이튿날, 용산 집무실 1층 로비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과 마주쳤다. 첫 출근 소감을 묻는 질문에 “어제 첫 출근하기는 했다”고 답한 뒤, 질문에 없던 전날 취임사 얘기를 꺼냈다. “어제 취임사에 통합 이야기가 빠졌다고 지적하는 분들이 있는데 (통합은) 너무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빠진 것이다)”이라며 관련 논란에 대한 입장을 직접 밝혔다. 대통령이 하고 싶은 얘기, 자연스럽게 해명한 것이다.
그 출근길 문답은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은 6․1 지방선거 뒷날, 여당 승리의 정치적 의미를 묻는 기자에게 ‘경제위기 태풍권’을 작심 경고했다. 제20대 대선 후 대통령의 메시지를 들으려다 울음을 터트리는 박경미 대변인을 본 기억, 그 차이다. 대통령의 적극적 소통 의지와 함께,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이 같은 건물에 입주한 뒤 나타난 소통방식이다. 틀에 박힌 회견 대신 출근길 문답,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모습이다. 청와대에선 대통령 집무실과 기자실이 담장 안팎에 따로 있었고, 대통령은 언론과의 직접 소통을 외면한 탓이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시절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오전-오후 1시간씩 비서동으로 가서 직접취재를 했다. 대통령이 있는 본관엔 접근조차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엔 그마저도 막았다. 기자들은 춘추관 기자실에만 머물렀다. 출입기자들도 ‘대통령을 뉴스로 본다’고 자조하곤 했다. 대통령이 춘추관을 찾는 일도 드물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수시로 춘추관을 찾아서 중요한 국정현안은 직접 설명하겠다"고 했지만, 그게 사실상 마지막이었다(송국건).
각국 정상의 이동 중 문답은 선진국형이라 할 만하다. 미국 백악관은 관저와 집무실이 한 건물에 있어 대통령의 출근길을 볼 순 없지만, 대통령이 백악관 밖으로 외출할 때 기자들은 건물 밖 프레스라인에서 질문하고 대통령은 답변한다. 일본에서도 약식회견은 정례적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출퇴근 때마다 기자에게 질문 기회를 준 것을 시작으로,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는 취임 반 년간 100여 차례의 약식 회견을 했다.
2. 앞으로, 한국에서도 도어스태핑이 뿌리내릴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국가 원수의 동선 노출에 따른 경호 부담에, 메시지 관리 능력도 관건이다. 대통령이 매일 현안에 답변을 내놓기 어려울 수도, 민감한 현안이 있을 땐 출근길 문답을 꺼릴 수도 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자체로 통치행위인 것, 그 혼란에의 우려다. “대통령은 ‘기자와의 소통이 곧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신념이 강하다”며 앞으로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대통령실의 말이 있긴 하다.
대통령은 자택 출퇴근을 감수하며 청와대를 떠난 사람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다. 그래서인가. 그는 도어스태핑을 시작하며, 국회 시정연설 후에는 국회 로텐더홀에 대기하던 취재진과 질의응답을 했다. 그가 지금처럼 언론과의 자유로운 접촉을 정례화한다면, 그는 전임 대통령의 ‘쇼통’을 넘어 진정한 ‘소통’의 의무를 다한 사례로 찬탄받을 것이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대통령 취재의 업그레이드를 기대한다. 미국 대통령처럼 집무실에까지 기자들을 불러들여 자연스럽게 질문을 받는 형식이다. 청와대에선 지금까지, 사회자가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진행했지만, 미국은 사회자 없이 대통령이 직접 회견을 주관하며 (미리 약속한)질문에 답한다. 우리 대통령의 기자회견 회수, 이명박-박근혜-문재인까지, 20회 미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언론 소통이 격의 없기를 바라는 기대는, 그래서 크다.
3. 대통령의 언론 소통, 미국 모델을 볼 만하다. ‘역사상 최고 대통령’ 링컨의 성공은 언론관계의 성공에 기반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조시 어니스트 대변인, 그들과 언론의 관계는 언론·권력 모두가 부러워할 전형이다. ‘조 바이든의 입’, 젠 사키 대변인 역시 진실성·투명성에 바탕한 브리핑과 보수-진보를 두루 존중하는 친절함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젠 사키. 그는 대통령이 취임 5시간 만에 17개의 행정명령·행정조치에 서명하자, 바로 출입기자 앞에 섰다. 그녀는 인사에서부터 진지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자리에 서게 되어 영광이다. 우리는 국민과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방에서 상황을 다르게 볼 때가 있겠지만, 그건 민주주의의 일부분일 것”이라고. 그는 대통령이 취한 역사적 조치(코로나19 대처, 경제회복, 기후대응…)들을 설명하며, 31개의 질문에도 답했다.
'뉴욕타임스'는 이 부분을 짚었다. “그는 행정부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포함, 참석한 모든 기자들의 질문을 계속 받았다”며, 그의 냉철한 머리와 진실에 대한 존중을 격찬했다. 사키가 재임기간 동안 가진 브리핑은 총 224회. 주말․공휴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기자 앞에 섰다. 브리핑은 대변인의 모두발언으로 시작, 보통 1시간 동안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갖는다. 이 과정은 백악관 유튜브 계정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된다.
사키는 분야를 넘나드는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공격적인 기자들과 문답을 하면서도 얼굴을 붉히는 법이 없었다. 브리핑 때마다 가슴에 안고 들어오는 두툼한 갈색 폴더가 그의 유일한 무기였다. 폴더 속 문서에는 수험생 노트처럼 형광펜 자국이 가득했다. 사키는 후임에의 조언을 청하는 기자에게 답했다. 첫째, 대통령에게 자주 질문하라. 이는 대변인의 특권이다. 둘째, 정책팀을 더 괴롭혀라. 더 많이 공부해야 제대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셋째, 기자들에게 모든 맥락과 디테일까지 다 전해라…(김필규).
버락 오바마 시절 ‘역대 최고의 대변인’이란 칭송을 들었던 조시 어니스트의 고별사도 있다. “백악관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비판)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알아차린다. 여러분의 일에 대한 열정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구심점이며, 바로 그것이 오바마를 더 나은 대통령, 더 나은 공직자로 만들었다. 그건 여러분이 결코 우리를 살살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입’, 그의 언론관이 참 부럽다.
4. ‘백악관 모델’의 소통방식과 비교하면, 우리는 ‘대통령=진화 중’, ‘소통라인=무사 안일’’ 정도다. 강인선 대변인은 공식업무 사흘 째, 임시 국무회의 관련 첫 브리핑을 했다. 약 3분짜리다. 질의응답, 추가경정예산안 관련해선 “설명하기 이르다”, 인사 논란에 대해선 “특별히 드릴 말씀은 없다”, 대통령의 일정에 대해선 “비공개 일정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정도다. 그는 한덕수 총리 후보자 인준안의 국회 통과 때는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문’을 냈다.
그 뒤로도, 대변인은 적극적 ‘대면 브리핑’ 대신, 자주 무성의한 ‘서면 브리핑’을 내고 있다. 정부 관계자-기자간 대화를 ‘비보도’로 돌리는 일도 반복, 기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기자들은 직설적으로 말한다. (용산 시대 속)오가면서 대통령실 관계자를 만날 수 있고, 대통령에게 질문할 기회가 열려 있다는 건 높이 평가한다, ‘언론 소통=국민 소통’이라는 대통령의 의지가 제대로 실현되길 바란다고-.
하긴, 문재인 대통령 시절 청와대 대변인에 대한 평가 역시 호의적이진 않다. 대변인 김의겸, 그는 자기표현대로, ‘까칠한’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 “재임 중 ‘정권보호와 관련 있는 문제라면 거친 언어로 ‘돌격대’를 자처했다”는 한 언론의 평가를 받을 정도다. 그가 고별사에서 보인 언론관을 보면, 그는 나름의 진영논리적 우월감을 가진 듯하다. 그가 쓴 ‘보수언론의 논리’, ‘선배들의 굳은 머리’ 같은 표현은 그가 정녕 ‘언론인’ 출신이라면, 생각조차 못할 오만이다.
고민정 대변인, 그는 “곳간 재정 쌓아두면 썩기 마련” 발언에서 보듯, 직무 앞에 무식했다. 강민석 대변인의 언론 대응방식도 좋은 평을 받진 못했다. 그는 신문사 편집부국장으로 일하다, 그 일을 맡자마자 언론의 비판·의혹 보도를 ‘명백한 오보-왜곡보도’로 재단하며 강경대응을 선언했다. 박경미 대변인은 제20대 대 선 이후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를 낭독하다 울음을 터트렸다. 공적 직분과 사적 감정을 가리지 못한 천박함이다.
그 소통 라인의 언론대응에 대한 우려는 컸다. ‘권력의 권위화’를(박성민), “언론불신을 의도적으로 전파하는 프레임”을(윤석민) 걱정했다. 그렇다, 청와대 대변인의 천박한 품격이며 작심한 듯한 언론 때리기, 그 끝은 어디이겠나. 진실성·투명성에 바탕한 브리핑 대신 진영논리에 침몰한 강변, 보수-진보를 두루 존중하는 친절함 대신 ‘우리편’만 챙기는 강퍅(剛愎)함으로 무슨 소통을 이룰 수 있었겠나.
권력과 언론은 갈등 관계다.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한, 그렇다. 민주사회 언론의 존재의의는 권력의 권리남용을 감시·비판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언론-권력의 갈등은 언론을 보는 권력의 인식과 언론과의 관계를 고려한 소통역량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권력이 여론을 얼마나 듣고 싶어 하고, 그를 위해 언론과 어떻게 접촉하는가? 언론의 (불편한)질문에도 얼마만큼 책임 있게 답변하는가? 이런 의지와 방식에, 권력-국민 소통의 성공이 달려 있다.
대통령의 ‘입’, 대변인의 품격과 자질은, 그래서 중요하다. 역대 대통령이 대변인에 언론 출신을 중용한 것도 그런 기대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랬다. 그들은 ‘언론 출신’의 경험과 논리로 어떤 소통방식을 취해야 할 것인가? ‘오바마의 입’ 조지 어니스트의 민주주의 지향적 언론관과 ‘바이든의 입’ 젠 사키의 뜨거운 열정-탁월한 자질을 되새기며, 윤석열 대통령실 소통라인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