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 부산 원정대 동참기②]러시아-한국 젊은이들, 문화교류로 서로를 이해하다 / 박현주 기자
기자는 유라시아 부산원정대의 대학생 팀으로 합류하여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중간 기착지 도시들을 들르며 러시아 대학생들과 차세대 리더로서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첫번째로 7월 23일 기차가 정착한 곳은 이르쿠츠크. 원정대 팀은 그곳 크레스토파에야드 호텔에서 이르쿠츠크 한국어학과 학생들 29명과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보냈다. 참가자들이 각자 자리에서 일어나 낯선 얼굴들을 바라보며 자기 소개도 했다. 두 도시의 소개 발표까지 마친 뒤 기자를 포함한 한국의 유기훈(27) 대원, 허상원(23) 대원, 김도현(21) 대원이 기획한 이날 행사의 본격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원정대에 합류한 창원대 무용학과 학생들의 K-POP 댄스 공연이 시작되자 조금 어색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무르익기 시작했다. 이르쿠츠크 학생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고, 가사를 알고 있는 듯 따라 흥얼거리는 러시아 학생들도 많았다. 뒤이어 이르쿠츠크 학생들의 장기자랑이 펼쳐졌는데, 대부분 K-POP 노래를 부르거나 K-POP 노래를 크게 틀어 놓고 거기에 맞춰 춤을 췄다. 러시아에도 어김없이 한류 열풍이 불고 있음을 확인한 장면이었다. 말로만 듣던 K-POP에 대한 러시아 젊은이들의 애정을 고스란히 느끼기에 충분한 무대였다.
이날 아이돌 종현의 <할렐루야>라는 노래로 멋진 춤을 선보였던 따샤 안드리바(23, Tasha Andreeva)는 “우연히 한국 연예인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자연스레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며 “이제는 한국에서 살고 싶을 만큼 한국의 모든 문화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여한 마리나 쿠리가노바(20, Marina Khuriganova)도 “한국은 아주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라고 표현하며 “나의 오랜 꿈인 한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는 일이 10월부터 내년 1월까지 성취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샤와 마리나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한 이르쿠츠크 한국어학과 학생들의 애정은 기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준비한 게임 중에 K-POP 노래를 듣고 제목 맞추는 게임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모두 빠짐없이 노래를 맞춘 것이다. 심지어 한국 대학생 대원들도 몰랐던 한국 가수 하하와 스컬의 <부산 앞바다>라는 노래를 당당히 맞추고 가사를 따라 부르기까지 하는 이르쿠츠크 학생들을 보며 유라시아 부산원정대 대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르쿠츠크 학생들 앞에서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푸시킨의 명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낭송한 김승유(23) 대원 또한 “한국에 열광하는 러시아 친구들을 보니,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며 “앞으로 우리 문화가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첫 번째 기착지 이르쿠츠크에서의 교류 행사가 무사히 끝난 후 우리 일행은 현지 학생들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깊은 호수, 시베리아의 진주라고 불리는 바이칼 호수를 산책했다. 호수 근처에 기념품 시장이 있었는데, 기념품을 사기 위해 시장을 방문했을 때 기자는 이르쿠츠크 학생들로부터 감동을 받았다. 장사꾼의 말을 통역해주고, 조금 더 싼 값으로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흥정까지 도와주는 이르쿠츠크 친구들의 상냥함에 은연 중에 가지고 있었던 러시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모두 사라졌다. 특히 ‘힘센 사나이’라는 뜻이 담긴 '이르쿠츠크'의 젊은이답게 활기차고 마음씨 고운 친구들이 돼준 이르크추크 학생들은 내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을 것이다.
이날 이르쿠츠크 소개 발표를 맡았던 이리나 바투에바(23, Irina Batueva)는 “새로운 한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 주어서 유라시아 부산 원정대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며 “곧 부산에서 보자”고 기자와 약속했다. 그로부터 3주 뒤, 이리나는 부산을 깜짝 방문해 기자에게 연락했고 8월 10일 수요일, 기자를 포함한 몇몇 당시 원정대원들과 함께 남포동과 송도를 구경하고 돌아갔다. 러시아에서 만났던 이리나를 부산에서 보고 함께 또 시간을 보내니, 감회가 남달랐고 반가웠다. 부산의 무더운 날씨를 겪은 이리나는 “이렇게 더운데 여기서 도대체 어떻게 사느냐”고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부산이 좋다”며 “더 오래 머물다 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7월 29일엔 모스크바 현대 모터스 전시장에서 모스크바 국립대 학생들과의 두 번째 교류 행사가 열렸다. 모스크바 국립대는 한국의 서울대 수준의 세계적인 종합 대학이자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명문대학. 기자는 이 대학 소속 한국어학과 교수, 학생 24명과 교류하는 자리에 참여해 또 한 번 러시아 대학생들의 한국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교류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잠시 모스크바 학생들과 따로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 원정대원들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끔씩 소통에 장애를 겪기도 했지만 손짓, 발짓에 영어 단어까지 동원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애를 썼다. 기자는 러시아 학생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대화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소통하려는 진솔한 마음가짐이라는 것을 배웠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엘리아(27, Eliarh)는 “평소 (컴퓨터) 게임을 아주 좋아하는데 한국 게임을 접하면서 한국에 호기심을 가지게 됐다”며 “앞으로 한국어를 더 많이 공부해서 한국 게임 산업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소망를 내보였다.
이르쿠츠크에서 있었던 교류 행사와 마찬가지로 각 도시의 소개 발표가 가장 먼저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이소진(24) 대원, 소창일(26) 대원, 강다현(22) 대원, 김경주(22) 대원이 기획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는데, 제기차기 같은 한국의 전통놀이부터 시작해서 만보기 횟수 늘리기 게임, 볼펜을 통 안에 집어넣는 게임, 퀴즈 게임과 경품 추첨 등 다양한 놀거리와 볼거리로 모스크바 대학생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문화 교류 행사 때마다 부산 소개 발표를 준비했던 정지혜(23) 대원은 “현지 친구들이 아주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기분이 좋았다”며 “그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 특히 부산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 날 행사의 MC를 맡은 이소진(24) 대원도 “러시아와 한국 학생들 사이의 벽을 완전히 허문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며 “차세대 러시아 엘리트들인 이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을 잃지 말고 정치, 문화, 경제 모든 부분에서 서로 도움을 주는 파트너로 성장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행사에 참여했던 비노그라도바 올야(21, Vinogradova Olya)는 “모두 난생 처음 해보는 게임이었다”며 “한국 사람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로 참 재밌게 노는 흥이 많은 민족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인 크리스티나 니콜라에바(24, Kristina Nikolaeva)는 “한국의 전통 놀이 문화를 더 알아보고 싶다”며 “유라시아 부산 원정대가 열어준 이벤트 덕분에 한국을 향한 사랑이 더 깊어져서 한국이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8월 15일 광복절을 맞이해 그때 만난 러시아 친구 예프제나아(Yevgenia)가 “한국의 광복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기자는 자신의 나라만큼이나 한국을 생각해주는 러시아 친구들이 그립고, 그들의 마음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들이 계속해서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한국을 아껴주고 응원해준다면, 그리고 러시아 젊은이들과 우리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대화한다면, 유라시아 시대의 러시아와 대한민국의 사이는 마치 한 가족처럼 가깝고, 끈끈하고, 견고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