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발암물질 벤젠과 PVC, 포름알데히드 등 국내 허용치 외국보다 크게 허술 / 양소영 기자
직장인 김원경(28, 부산시 남구) 씨는 얼마 전 새로 구입한 자동차를 운전하다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꼈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안정을 취해 봤지만, 어지럼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근처 병원을 찾은 김 씨는 의사로부터 '새차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새차증후군은 새 차 내부의 각종 화학물질이 뒤섞여 나는 냄새가 어지럼증이나 호흡 곤란, 구토 등의 증상을 유발하는 것으로 새집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다. 김 씨가 어지럼증을 느낀 이유도 바로 이 때문. 주로 페인트와 접착제에 남아 있는 각종 휘발성 유기화합물과 가죽시트의 포름알데히드, 차 내부의 PVC(염화비닐수지), 천장 부분에 도장된 벤젠 등이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급 발암물질로 분류되는 벤젠은 장기간 노출 될 경우 기관지는 물론 중추신경계에 자극을 주어 백혈병을 일으킬 수 있다. 차 내부의 PVC는 성장과 면역성을 저하시키고 생식기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가죽시트에서 방출되는 포름알데히드는 노출 정도에 따라 경미한 호흡기 장애부터 심각할 경우 독성 폐기종으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피부과 전문의 박기원 씨는 “새 차 내부의 화학물질이 대부분 인체에 유해한 성분들이다. 특히 면역성이 낮은 어린이나 노인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부 윤미진(33, 부산시 해운대구 좌동) 씨도 아들 정모(9) 군이 새차증후군으로 1년 넘게 아토피 치료를 하는 바람에 속앓이를 했다. 윤 씨는 “새 차를 타고 가족여행을 가는 길이었는데 아이가 자꾸 눈이 따갑다고 했다. 다음날 아이의 피부에 발진이 나 병원을 찾았더니 의사로부터 새 차가 원인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데도 새차 증후군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현실을 따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자동차관리법 제33조 3항에 규정된 신규 제작자동차의 실내공기질 관련 기준에 따라 정부는 새롭게 출시되는 자동차에 대해 유해물질 권고기준 준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작년에 신차 실내공기질 관리기준을 강화했지만 여전히 미흡하다는 것.
새 차에 대한 우리나라의 유해물질 허용 기준은 외국에 비하면 엄격하지 않다. 포름알데히드의 국내 기준은 250㎍/㎥에서 210㎍/㎥으로 허용치를 강화했지만, 일본과 중국이 100㎍/㎥, 독일이 60㎍/㎥인 것과 비교하면 외국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유해물질 허용기준을 크게 낮추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의 박기원 씨는 “새 차로 인한 유해물질은 자동차 제조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긴 하지만 업체들이 소비자들의 건강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발생량을 줄여야 할 것이다. 소비자들도 새차를 사면 당분간은 차창을 자주 열어주는 등 차내 환기를 해 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국내 승용차 소비자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도 유해물질 수준을 외국 기준에 맞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