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남공원은 철거 위기, 감지해변은 이전 영업 계획...상인, "생존권 보장"을 / 정혜리, 이슬기 기자
이제 부산 명물 조개구이를 먹으려면 해운대까지 가야할지도 모른다. 부산의 대표 조개구이촌인 서구 암남공원과 영도구 태종대 감지해변이 자리를 옮기거나 규모를 축소하게 됐다.
감지해변과 암남공원에는 30여 년 전부터 해녀촌이 정착한 이후, 각각 포차 35곳, 29곳이 지금까지 영업해왔다. 바다를 지척에 두고 파도 소리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일 수 있어 부산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조개구이촌이다.
이달 초 태풍 ‘차바’가 부산을 강타해 바닷가 인근 지역이 침수될 정도로 피해가 컸다. 암남공원과 감지해변 역시 태풍을 피하지 못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는 폐허만 남았다. 26일 찾은 암남공원 주차장은 여전히 썰렁했다. 포장마차를 찾은 손님들로 북적거려야 할 주차장이 한산했고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낚는 낚시꾼들만 보였다. 피해를 입은 지 한 달이 다 돼 가지만, 지자체와의 갈등으로 복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부서진 포차 시설이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감지해변 포차촌은 해변 자갈 위에 간이시설을 만들어 해변을 독점하고 폐수를 바다로 그대로 흘려보내는 등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암남공원 포차촌은 국유지인 부지를 계약 갱신해오며 임시영업을 해왔지만 구청과의 갈등이 있어 온 곳.
사실 암남공원 포차촌은 서구청이 지난달부터 철거를 요구한 상태였다. 암남공원 주차장 한 켠에 있는 포차촌을 없애고 2017년 암남공원에 완공되는 해상 케이블카 주차공간으로 쓰겠다는 게 구청의 계획. 암남공원 포차촌은 98년 해수청과 국유재산 사용·수익허가 계약을 맺고 계약 갱신해왔고, 현재 2020년까지 계약한 상태지만 해당 지자체가 요구하면 자진철거한다는 조항에 따라 서구 측은 빠른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암남공원 포차촌은 포차촌으로는 드물게 사업자등록을 하고 신용카드 사용과 영수증 발급을 해왔다. 암남해변조합은 현재 서구 측에 가게가 쓰고 있는 땅 중 약 20%에 달하는 자산관리공사 소유 땅만이라도 가건물을 세우고 영업하겠다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구청 관계자는 “공용으로 필요할 경우 30일 이내에 자진철거한다는 조항이 있다”며 암남공원 포차촌이 무허가 업소로 식품 허가가 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암남해변조합 서광수 운영위원장은 조개구이를 먹기 위해 암남공원을 찾는 시민들이 아직도 언제쯤 복구가 되냐며 전화가 온다고 말했다. 또 서 위원장은 “이대로 서구의 관광 명소인 '해녀촌'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감지해변 자갈마당에는 조개구이촌의 활성화를 촉구하는 호소문이 걸려있다. 호소문에는 “이곳의 영세 포장마차는 총 34곳이다. 비록 무허가이지만 30년 세월 동안 이곳 자갈마당을 지키며 태종대 관광객 유치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이번 피해로 저희 상인들과 종사자들에 생계가 직결된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저희 노점상인들과 종사자 등 딸린 식구만 해도 1,000명 정도 된다. 하루 빨리 조속한 대책을 마련해달라”는 내용이 적혀있다.
하루 아침에 생계가 끊긴 상인들은 답답한 심정으로 구청에서 제공하는 대체부지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 자갈마당 뒤편에서는 조개구이 포장마차 상인들이 모여 ‘태종대 감지 자갈마당 18호 태풍 대책위원회’ 현수막을 걸어두고 대책이 마련되기만 기다리고 있다. 자리를 지키고 있던 대책위원회 부회장은 “이번 주 내로 구청에서 대체 부지를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아직 들은 내용이 없어 이렇게 모여 있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감지해변 부근의 컨테이너 카페를 운영 중인 한 상인은 “감지해변에 사람들의 발이 뚝 끊겨 밤에는 무서울 정도”라며 감지 자갈마당의 썰렁해진 분위기를 설명했다. 또 “조개구이 포장마차 사람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인데 빨리 대체 부지를 마련해 줘야한다”고 말했다.
부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지난 11일, “그동안 감지해변 자갈마당 조개구이촌은 관광명소인 태종대와 매우 가까운 해변임에도 제대로 된 오염 방지시설을 갖추지 않고 음식 영업을 지속해왔다”며 “또한 무허가이기 때문에 카드 결제가 되지 않고 세금도 납부하지 않았다”고 운영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경실련은 동시에 감지해변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면서도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조개구이촌의 영업권은 일부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구청에 대체 부지를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구청은 현재 대체 부지를 마련했으며 상인들과 이전에 대해 논의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영도구청 건축행정담당자 문용찬 씨는 “이전할 부지는 감지해변 입구 태종대 부설 주차장으로, 부지만 제공하고 건물이나 천막은 상인들이 설치하게 될 것”이라며 “오늘도 주민상인대표와 부지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까지 상인들이 자갈마당을 불법으로 점령해 영업을 하다 보니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는데 이번 장소 이전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자갈밭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