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국조 2차 청문회...최순실 몰랐다던 김기춘, 증거 나오자 “착각했다” 말 바꾸기 / 정인혜 기자
헌정 사상 최악의 국정농단 사태로 평가받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규명하기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특위)의 제2차 청문회가 7일 국회에서 열렸다. 국조위원과 증인들 사이에는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다.
이날 청문회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고영태 더블루케이 전 이사, 차은택 감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이번 사태의 주범 최순실 씨와 핵심 증인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 씨와 우 전 수석 외에도 13명의 증인이 청문회 참석 명령에 불응했다. 애초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던 최 씨의 조카 장시호 씨는 동행명령장을 발부받은 후 오후에야 모습을 드러냈다.
특위 위원들의 질문은 김 전 비서실장과 고영태 씨, 차은택 씨에게 집중됐다. 김 전 실장이 대부분 질문에 시종일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등 모르쇠로 일관하자 일부 의원들이 고성을 지르는 등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김 전 실장에게는 세월호 사고 당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김 전 실장은 “대통령 관저에서 일어나는 사사로운 생활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른다”고 말했다.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적힌 사법부·언론 통제 의혹에 관한 질문도 줄을 이었다. 김 전 실장은 비망록에 대해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사법부와 언론을 통제할 수 있겠나”라며 ‘김영한 비망록’에 대해 “완전 루머”라고 일축했다.
김 전 실장은 최순실 씨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고 일관하다 일부 증언을 바꾸기도 했다. 김 전 실장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문건과 동영상을 제시하자 “기억이 잘못됐다. 이제 최 씨의 이름을 못 들었다고 할 수 없겠다. 착각했다”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최 씨를 만난 적은 없다는 기존 주장은 번복하지 않았다.
세월호 관련 질문도 쏟아졌으나 소득은 없었다. “난 알면서 거짓말하진 않는다”는 김 전 실장을 향해 “법률 미꾸라지” 등의 비판이 쏟아졌으나, 그는 “죄송하다. 제 부덕의 소치다”라고 피해갔다.
반면 고영태 씨와 차은택 씨 등 일부 핵심 증인들은 의혹을 일부 시인했다. 고 씨는 최순실 씨의 연설문 대필 의혹의 핵심 증거인 태블릿PC를 언론사에 건넨 사람이 자신이란 의혹엔 부인했지만 최 씨 관련 의혹을 대부분 인정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최순실 씨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는 “세월호의 노란색만 봐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차 씨 역시 “최순실 요청으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교육문화 수석 추천에 관여했다”고 언급했다. 차 씨는 “최 씨와 박 대통령은 거의 같은 급에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고도 말했다. "공동정권이라는 것이냐"라는 물음에 차 씨는 “특히나 최근에 와서 그렇게 생각했다”고 답변했다.
그러면서도 비선 모임 의혹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차 씨는 새누리당 최교일 의원이 “최순실 씨가 논현동에서 전문가를 만나 정책을 논의했다고 하고, 그 자리에는 차은택 씨와 고영태 씨도 함께 있었다고 하더라. 비선 모임을 했냐”고 추궁하자 “그런 사실은 전혀 없다”고 강하게 부정했다.
이날 불출석한 증인들의 무성의한 태도도 도마 위에 올랐다. 최 씨는 청문회 불출석 이유를 "공항장애"라고 적어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공황장애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강하게 든다. 꼭 출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시호 씨 역시 이날 오전 불출석 사유서에 "심한 하열"이라고 적었는데, 이는 ‘하혈’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 씨의 오빠 장승호 씨는 유치원 학부모 모임을 이유로 이날 청문회에 불참했다. 이를 두고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국회를 모독하고 국민을 우롱한 엽기적인 불출석 사유”라고 맹비난했다.
한편 특위는 오는 19일 5차 청문회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5차 청문회에선 증인 출석 요구에 불응한 최순실 씨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등에 대해 재출석을 요구할 계획이다. 3차와 4차 청문회는 오는 14일, 15일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