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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해지고 있는 요즘, 나는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하지만 막상 집을 나서려고 하니 갈 곳이 마땅하지 않다. 그래도 막상 집을 나서니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어린 시절 내가 돌아다녔던 골목길과 집집마다 쌓인 담벼락은 어린 시절 우리들의 놀이터이자 무한한 상상의 세계였다. 그 시절 우린 무엇이 그리 재밌었는지 낙서라도 하다가 주인아저씨께 꾸지람을 듣더라도 금세 시시닥거리며 웃음을 되찾았다. 이제는 잊힐 법도 한데 시간이 갈수록 그 기억은 선명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찾은 것이 부산의 벽화마을들이다. 대표적으로 문현동 안동네, 안창마을이다. 부산 문현동 안동네는 문현동 산 23-1번지 일대다. 전포동에서 문현동으로 넘어가는 문현고개 어귀에 자리 잡고 있다. 안동네는 6.25이후 공동묘지위에 지어진 ‘달동네’로서 보고만 있어도 스산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문현동에 살았던 친구조차도 숨바꼭질을 할 때 안동네는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몸서리를 친다. 마을의 배경 때문인지 이전부터 무속인들이 많았다고 한다.
안동네는 들어서자마자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이질적인 공기가 느껴진다. 버스로 5분만 나가도 서면이고 바로 앞은 문현동 번화가인데 이곳은 그 속에서도 고요하게 가라앉은 차분한 느낌의 동네다. 마치 고향에 온 듯 편안하면서도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묘한 괴리감 그 느낌이 바로 안동네의 첫 느낌이다.
안동네는 완만한 곡선의 골목이 동네 전체를 휘감고 있고 담장 또한 없거나 가슴팍에서 머무른다. 골목 너비는 두 사람이 지나가면 꽉 들어찰 정도로 좁은데 그 정도로 이웃 간의 거리가 가깝다. 바로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동네를 사진을 찍으며 한 바퀴 돌고 맨 위 돌산공원에 가서 뭉친 다리를 풀고 가면 길지도 짧지도 않은 적당한 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2008년에 그린 그림들 치고는 관리가 상당히 잘 되어 있다. 그림들을 집안 물건이나 쓰레기들로 가려진 경우는 없었고 색깔 또한 바래지 않았는지 선명했다. 길은 전체적으로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지만 가끔씩 나오는 비포장 골목은 넘어질 수 있으니 조심하고 3명 이상의 인원은 주민들을 위해 삼가는 것이 좋겠다.
안동네 다음으로 간 곳은 동구 범일동 소재 안창마을이다. 벽화마을보다 오리고기동네로 유명한 안창마을. 이 곳 또한 벽화가 그려짐으로써 더욱 유명세를 탔다. 안창마을은 6.25전쟁 때 피난민들에 의해 세워진 동네로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오리를 키우던 것에서 유래돼 지금은 오리 불고기 집들로 가득하다.
서면에서 시내버스 29번을 타고 안창마을 방면으로 가면 마을 입구가 바로 종점이다. 거기서 나와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면 앞서 말한 마을의 유래에 대한 벽화, 그리기 봉사를 해주신 분들의 서명 들 그리고 여러 가지 벽화들이 있다.
마을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아름다운 벽화들과 음식 냄새, 손님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는 내 오감을 자극했다.
공휴일이었지만 의외로 거리는 한산했고 사진을 찍으러 오는 이도 없었다. 비 피할 데가 없어 비를 쫄딱 맞았다. 마을 사람들도 사진기를 들고 있는 낯선 이가 낯설지는 않는지 멀뚱히 쳐다만 보시고는 다시 제 할 일들을 한다.
안창마을은 벽화와 함께 오리 불고기 식당들로 유명하다. 그 중 한 집을 찾아가 보았다. 올해로 만 23년째 오리불고기 집을 운영해 오신 정춘선(63)씨는 “마을에 벽화가 생긴지 5년째인데 벽화가 그려지고 난 후 사진을 찍으러 온 손님들이 가게가 마을 안쪽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이 찾아온다”며 나 같은 손님이 처음은 아니라며 음료수 한 병은 슬쩍 서비스로 해 주신다.
벽화 마을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부산에도 이러한 소소한 명소들이 많구나’라는 걸 느낀다. 벽화 마을들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명소들은 아니다. 이런 곳들을 사람들에게 알음알음해서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자 이제 간단한 짐을 꾸리고 집 앞 골목이라도 돌아다니며 ‘여행’을 나서자. 소소한 여행일지라도 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