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15년 1월부터 안전점검 규정을 지키지 못한 놀이터의 이용을 금지한 이후, 이용 금지된 놀이터들이 보수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방치되거나, 성인용 편의시설로 바뀌고 있어 애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후된 어린이 놀이터에서 그네에 녹이 슬어 줄이 끊어지거나 미끄럼틀의 벌어진 틈에 끼어 부상하는 등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자, 2008년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관리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놀이터는 안전점검 규정 검사를 받아야 설치될 수 있으며, 이후 2년에 1회 이상 정기 시설검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이미 설치되어있는 놀이터들도 안전점검을 받아하고, 기준에 미달되면 보수공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하지만 어린이 놀이터들에 대한 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검사를 받으면 보수공사를 시행해야하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는 것. 사정이 이렇자, 정부는 다시 법을 강화해 2015년 1월 26일을 기점으로 모든 놀이터들이 안전점검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하는 한편, 사소한 부분이라도 안전기준에 미달되거나 안전점검을 받지 않은 놀이터들의 이용을 금지했다. 2015년 당시 2,000여 개의 놀이터가 안전규정 미달로 이용금지됐다. 이후 많은 놀이터가 보수공사를 마쳐 현재는 전국 230여 개의 놀이터들만이 이용 금지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보수공사가 이루어진 곳은 학교나 브랜드 아파트들이고, 오래된 서민 아파트의 놀이터는 보수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방치돼 있는 것이다.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의 한 아파트의 놀이터는 이용금지 판정을 받았다. 아파트 주민 김모 씨는 "집에 아이가 없어서 놀이터가 이용금지 상태인지 몰랐다. 저렇게 공간이 낭비되는 것이 아깝다. 주차장으로 바꾸든지 놀이터 보수공사를 하든지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치원, 학원, 학교에 설치되어있는 놀이터는 지역 교육청이 관리하고, 공공시설의 놀이터는 시, 군, 구가 관리한다. 아파트나 민간단체의 놀이터는 그 설치 주체가 관리책임을 맡고 있다. 가장 관리가 힘든 곳은 오래된 아파트나 민간단체의 놀이터. 관리비를 지출해 보수사업을 실시해야 하지만 관리사무소나 주민들이 놀이터 보수사업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데다 관리비 부담 증가를 들어 꺼리는 일이 많다.
이 때문에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2015년 민간 어린이 놀이터에 예산을 지원하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 군, 구청에서 놀이시설에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법률이 지난해 1월 7일 통과돼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아직 이런 사실을 모르는 민간단체가 많다. 또 놀이터 1곳 수리비가 3,000만~5,000만 원 가량 들지만 구청의 예산 지원액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 제때 예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부산 시청 재난예방과 손효석 씨는 "군, 구청에서 지원조례를 제정해 예산을 지원하도록 되어 있고 공동주택 관리지원 조례를 고쳐 기금으로 놀이시설에 대한 예산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손 씨는 "한정된 예산으로 모든 놀이시설을 지원할 수 없다 보니 선정할 때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손 씨는 "예산 지원 뿐만 아니라 놀이터 설치 시 1년마다 의무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놀이터 안전 관리자를 선임해 2년마다 교육을 받게 하는 등 놀이시설 개선을 위해 노력 중"이라면서도 “법은 잘 정비돼 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모든 아파트에 지원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은 지원받기 어려운 영세한 민간 놀이터들을 위해 놀이터 개보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록우산 측은 지금까지 광주, 부산 두 지역에 각각 하나씩의 놀이터 보수공사를 실시했다. 예산은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과 기업들의 후원으로 대부분을 충당하고, 일부는 지역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보수공사가 진행됐다.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 관계자 채희옥 씨에 의하면, 광주 이용금지 놀이터에서 놀던 아동이 당시 취재 나온 기자에게 인터뷰를 자청해 놀이터 보수를 해달라는 기사가 보도된 후 지역주민, 기업, 지자체 등이 지원에 나서 몇 개월 후 해당 놀이터가 개보수됐다고. 채 씨는 “앞으로 다른 지역의 이용금지 놀이터들도 주변의 관심과 도움으로 빨리 보수가 진행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놀이터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놀이터에 성인용 운동기구를 설치한 편의시설로 바꾸거나 주차장으로 바꾸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2월 26일자 매일신문 보도에 의하면, 대구 북구 산격동 한 아파트에는 90여 가구가 살지만 놀이터가 없다. 2014년까지만 해도 놀이터가 있었지만 주민 동의를 받아 폐쇄한 후 그 자리에 주민 쉼터로 이용되는 컨테이너를 놓아뒀다는 것이다.
채희옥 씨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없어지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한다”며 “놀이터는 아이들의 공간이므로 아이들의 의견을 신중하게 듣고, 아이들과 함께 해결방안을 모색하면 좋겠다는 게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의 입장”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