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에 대한 로망도 있고 주변 친구들이 부럽긴 하지만, 막연하게 진학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빠르게 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박상현(20, 부산 남구) 씨는 이렇게 말하며 대학 진학 대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택했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릴 나이지만 당장의 즐거움을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택한 것. 그는 “대학에 진학하고 남들처럼 평범한 생활을 하면 내 장래가 너무 어두울 것 같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며 “남들보다 먼저 고생하면 남들보다 먼저 웃을 날이 오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인사혁신처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치른 국가직 9급 공채에 22만 1,853명이 원서를 냈고, 이 중 18∼19세 지원자는 총 1,955명으로 2015년 1,387명보다 40%나 급증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신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을 일컫는 ‘공딩(공무원+고등학생)’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고등학교에도 공무원 시험 열풍이 불고 있다.
왜 고등학생까지 공무원 시험에 눈길을 돌리고 있을까? 일찌감치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고등학생 이동현(18, 경남 김해시 부원동) 씨는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하기가 힘든 세상이기 때문에 미리 진로를 준비하자는 부모님의 설득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면서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진로에 대한 확신이 서서 옳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 4년제 일반대의 취업률은 64.4%로 3년째 하락세를 보였다. 대졸 취업난이 지속되면서 대학을 포기하거나 대학에 합격하고도 공무원 학원으로 발길을 돌라는 고등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공무원 시험은 최종 학력이나 스펙을 따지지 않고 시험 성적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게다가 수학, 영어 등 고등학교 교과 과목과 공무원 시험 일부 과목이 연결돼 고등학교 수업과 병행이 가능한 점도 이점으로 꼽힌다.
2년째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정모(25, 경남 김해시 내외동) 씨는 “최근 학원에 고등학생들이 많이 온다”며 “요즘 나도 어릴 때부터 미리 준비했으면 더 빨리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고 말했다. 차모(25,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씨는 “대학에 진학해 어영부영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남들보다 먼저 미래를 준비하는 선택이 더 현명한 것 같다”고 전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늘면서 이들을 걱정어린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고등학교 교사 전모(28, 부산 금정구) 씨는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장래 희망을 공무원으로 적어내는데, 우리 사회가 젊은 아이들의 꿈을 빼앗고 공무원으로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남들이 다 준비하니까 나도 한다는 생각을 하는 친구들도 여럿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학원 관계자는 “요즘 학원 등록생 10명 중 3~4명은 고등학생이다. 미리 진로를 정하고 공부를 일찍 시작하면 남들보다 유리한 점은 분명 존재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두고 한 번 선택했으면 죽으라고 공부해야 나중에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하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