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권민정(24) 씨는 올해 다니던 학교를 휴학했다. 이유는 한가지. 토익 점수를 올리기 위해서다. 그녀의 가방 안의 책들은 모두 토익 관련 서적이다. 그녀가 토익 점수를 위해 지금껏 쓴 돈 만해도 학원비, 책 값, 시험 응시료 등을 포함해 150만원이 족히 넘는다.
권 씨는 “토익을 하는 이유는 오직 취업 때문”이라며 “높은 토익 점수가 없으면 취업 전쟁에서 서류조차 넣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영어 능력 시험 중의 하나이자 취업 스펙의 기본으로 여겨지는 토익. 과연 토익은 개인의 영어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시험일까?
토익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을 대상으로 언어 본래의 기능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에 중점을 두고 일상생활 또는 국제업무 등에 필요한 실용영어 능력을 평가하는 글로벌 평가 시험이라고 토익 실시 기관인 ETS(Educational Testing Service)는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2년 삼성 그룹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토익을 도입한 이후로 대다수의 기업들의 공인된 영어 점수로 대체되고 있다. 이에 따라 취업 준비생들은 취업을 위해 토익 점수를 얻어야만 하는 실정이다. 하지만 취업 준비생 사이에는 ‘토익은 토익이고 영어는 영어다’라는 인식이 공공연하게 퍼져있다.
토익 공부를 1년 째 하고 있다는 안종재(26) 씨는 “학원에 가면 점수를 올리기 위한 공식을 가르쳐 준다. 문제를 보면 지문을 다 읽지 않아도 기계적으로 답이 보인다”면서 “하지만 외국인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된다”고 말했다. 하루 종일 토익이라는 영어 공부를 1년 동안 했지만 정작 영어를 써야 할 때는 쓰지 못하는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경성대 크리스찬(29) 교수는 토익 점수가 개인의 영어 능력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단호히 “NO”라고 대답했다. 그는 “토익은 단지 시험에만 고정된 테스트”라면서 “실생활에는 시험에 없는 다양한 상황이 있고 토익은 이를 대체하기 힘들다”고 했다. “영어를 잘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직접 상대방과 대화하는 ‘Face to Face(면대면)'이다. 10번의 테스트보다 10번의 만남(영어 대화)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그는 조언했다.
지난 7일 취업포털 사이트인 잡코리아가 조사한 주요 대기업 합격자의 평균 토익 점수는 삼성전자가 841점, 대한항공 837점, LG전자 832점 등으로 800점대를 상회했다. 토익을 시작한지 8개월 째라는 어느 한 학생의 점수가 670점인 것에 비하면 800점대는 결코 쉬운 점수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업무 능력이 뛰어나도 토익 점수에 막혀 기업에 서류조차 넣을 엄두를 못내는 취업준비생이 많다.
크리스찬 교수는 “유독 한국만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시간과 비용을 토익에 쏟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