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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지식인'의 일그러진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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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형 지식인'의 일그러진 초상화
  • 편집국장 강동수
  • 승인 2017.01.23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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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을 발판 삼아 권력에 빨대 꽂다 쇠고랑 찬 해바라기 지식인 더는 안 봤으면 / 편집국장 강동수
 
편집국장 강동수
지난 넉 달 가까이 온 나라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란 이름의 진공청소기에 빨려들고 있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에게 새해 국정과제를 제시하고 이행의 로드맵을 발표했을 거다. 국민들도 TV로 중계되는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새해엔 조금이라도 살림이 좀 펴일까 짐짓 기대를 걸어보는 때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라 살림이 어떻게 꾸려질 건지, 경제가 좀 나아질 건지,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의 국제정세 변화에 어떻게 대처할 건지 따위 국민의 삶에 진짜 영향을 미칠 화두는 가뭇없이 잊힌 지 오래다. 그 빈자리를 온통 헌법재판소와 특검 발 뉴스가 채우고 있다. 자고 깨면, 대통령에 대한 무슨무슨 의혹이 새로 나왔네, 누가 또 구속됐네 하는 이야기가 뉴스의 대부분을 장식하고 있다. 대통령의 눈과 귀 노릇을 했다는 실세 비서관들과 노른자위 자리만 골라 옮겨 다녔던 전직 장관에 이어 ‘정유라 봐주기’에 연루된 이화여대 교수들도 잇따라 구속됐다. 엊그제는 역대 정권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아 위세를 부리던 ‘왕 실장’과 ‘박근혜 정권의 신데렐라’로 불리던 현직 여성 장관이 특검 사무실에서 구치소로 직행했다. 떵떵거리며 위세를 부리던 이들이 수의를 입고 수갑을 찬 채 특검으로, 법원으로, 헌재로 끌려 다니는 모습에서 약간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더 크게 엄습한 것은 부끄러움, 민망함, 착잡함 같은 감정들이었다. 대개 그들은 ‘엘리트 지식인’들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인간사라지만 조금만 처신을 잘 했더라면 저 지경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아닌가. 권력은 화려한 꽃술에 담긴 달콤한 꿀로 곤충을 유혹해 잡아먹는 식충식물과 같은 것이다. 꿀에 취해 자칫 한 발 잘못 디뎠다가는 권력이라는 이름의 끈끈이주걱에게 포획돼 형체도 없이 녹아버리는 거다. 영광과 영화의 시간은 잠깐이고 이제는 몸뚱이가 녹아들어가는 고통과 수모의 시간만 남았으니 지켜보는 이조차 착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전직은 대개 교수, 검사, 변호사처럼 한국사회가 선망하는 엘리트 전문직이다.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손가락에 꼽히는 명문대학, 그 중에서도 세칭 일류학과 출신들이다. 김기춘, 조윤선, 안종범, 문형표 같은 이들이 그렇다. 아직 구속되지는 않았지만, 국회의 청문회에서 온갖 수모를 당하고 특검 소환이 예약된 우병우 같은 이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만큼 자타 공인의 수재가 아닌가. 교수, 검사, 변호사만 돼도 한국 사회에서 대접받고 세상을 위해 할 일이 적잖은데, 청와대 수석에 장관, 또 무슨무슨 공기업 이사장까지 탐내다 저 꼴이 됐으니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할는지. 부나비처럼 권력의 불길로 뛰어드는 ‘엘리트 지식인’들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태생적 금수저형’과 ‘자발적 투신형.’ ‘태생적 금수저형’이란 유복하고 안정된 환경에서 처음부터 잘 교육받고 관리된 수재들이다. 돈 많고 행세깨나 하는 부모가 어릴 적부터 좋은 과외선생을 붙여주고 이런저런 걸림돌을 치워줘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유학까지 다녀온 이들이겠다. 정원사의 가위 끝에서 잘 전정된 보기 좋은 향나무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좋은 직업과 부, 높은 사회적 평판을 천부적(?) 권리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다. 잘 관리된 스펙 덕에 자연스럽게 권력에 다가갈 기회가 많다. 그 결과로 얻은 권력 역시 자신의 몸을 감싼 피부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가업’이라는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니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고생 모르고 귀하게 자라온 덕인지 대체로 성품이 원만하고 매너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때로 유약한 모습도 드러낸다. 답답한 노릇은 이들이 태생적으로 우리와 같은 장삼이사들의 살림이라든가 누항(陋港)의 정서를 잘 모른다는 대목이다. 그래서 자기중심적인 경우가 많다. 잘 나갈 때는 ‘형광등 몇십 개 켠 듯한 아우라’로 포장돼 있지만, 한번 무너지면 처참하게 허물어져 버리는 경향이 있다. ‘자발적 투신형’이란 제 스스로 권력이란 꽃의 암술을 찾아다니며 꿀을 탐하는 유형이다. 대체로 ‘가난한 수재’들이 많다. 어릴 적부터 믿을 것이라곤 머리 하나 뿐인 이들은 자신의 고달픈 성장기를 보상 받기 위해 출세를 향해 직진한다. 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경험과는 담쌓고 고시원에서 책만 판 그들의 첫 직업은 대개 판·검사, 정부 실세 부처의 사무관 따위인데, 보너스로 재력이나 문벌이 좋은 집안의 영양을 아내로 맞아 비빌 언덕을 장만한다. 이런 사람들 중엔 일벌레가 많다. 상사의 지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직장에서 안테나를 세워 높은 사람의 동향에 주파수를 맞춘다. 머리가 좋아 일 잘하겠다, 상사에게는 입의 혀처럼 구니 높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나. 게다가 처가에서 뒷배까지 받쳐주니 요직을 돌다가 마침내 권력의 핵심부로 진입할 기회를 잡는 거다. 이들은 야심만만하고 처세가 차돌처럼 단단하다. 누구에겐가 당하면 반드시 되치기에 나선다. 위로 뚫고 올라가는 데는 능하지만 문제는 한번 무너지면 이들 역시 그 동안 쌓은 업보 때문에 누구보다 깊은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다는 거다. 금수저형이건, 자발형이건 이들 ‘권력 엘리트’들이 공통적으로 갖추지 못한 건 지식인다운 통찰력과 직업 윤리, 공공적 봉사심 따위이다. 통찰력이나 윤리성, 공공성은 머리가 좋거나 지식이 많은 것과는 별개다. 그들은 권력을 자신의 태생적 소유물로 착각하고 있거나, ‘1%들의 천국’으로 끌어올려 주는 동아줄로 여기는 거다. 그들은 자신들이 국민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려고 권력이란 이름의 식칼을 잠깐 빌린 요리사가 아니라, 스스로 주방의 주인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조자룡 헌 칼 휘두르듯 함부로 휘두르다 끝내 국민이란 이름의 식당 주인에 의해 주방에서 비참하게 끌려나오고 만다. 글쎄, 배울 만큼 배우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앞날을 보는 눈은 어째 그리도 없었을까. 뭘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지식과 판단력을 덮어버린 권력욕을 걷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그러니, 문화애호가를 자처했던 어떤 이는 문화를 맡는 장관이 되자 자기가 지키겠다는 문화예술에 ‘블랙리스트’란 이름의 쇠사슬을 채우지 않았던가. 잘 나가는 소설가와 문학평론가를 겸했던 어떤 교수는 또 어떤가. 권력 비선실세 딸의 성적 조작에 견마지로를 다하다가 쇠고랑을 차고 말지 않았던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군상들의 삶의 행로를 통찰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소설가를 겸했던 그 교수는 자신의 삶에 대해선 과연 어떤 통찰을 했을까. 자신이 닦은 지식과 경륜을 세상을 위해 펼친 지식인들이 없는 건 아니다. 초당에서 거문고를 타다가 유비를 보좌해 ‘천하삼분지계’를 이룬 제갈량이 그랬고, 최고의 병법가 손무가 그랬으며, 드골 정권에서 문화부 장관을 하다가 다시 저술가로 돌아왔던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그랬다. 하지만, 나치에 부역했던 철학자 하이데거나 유신정권에 복무해 한국 철학의 태두라는 명성에 흠집을 남겼던 박종홍 같은 이들도 있다. 대지약우(大智若愚)라, 노자(老子)의 말마따나 ‘큰 지혜는 곧 어리숙함’이 아닌가. ‘밝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경지(知其白守其黑)’가 진짜 지식인의 세계가 아닌가. 머리 좀 좋다고, 책 줄이나 읽었다고, 부나비처럼 권력의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가 제 몸을 태우고 세상을 어지럽힌 지식 소매상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곧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이번엔 폴리페서(polifessor)나 폴리널리스트(polinalist)가 안 보였으면 좋겠다. 지식인더러 현실 정치에 귀를 막으라는 소리가 결코 아니다. 아니, 지식인은 세상의 변화를 위해 자신의 지식과 재능을 발휘해야 할 책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현실 정치에 대해 발언할 수도, 나아가 참여할 수도 있다. 다만, 자신의 지식을 권력이란 이름의 달콤한 과즙을 빨아먹는 빨대나 '1%의 천국'으로 올라가는 동아줄로 쓰진 말라는 거다. 줄줄이 포승을 차고 법의 심판을 받으러 끌려 다니는 ‘일그러진 지식인’의 초상화를 보는 세월이 얼른 끝나면 좋겠다. 어쨌거나 한국 지성계에 자성의 바람이 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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