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6시. 투표 시작과 동시에 출구조사도 시작됐다. 아직 어두웠고,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투표 시작 몇 분 전부터 이미 10여 명의 유권자들이 우산을 쓴 채로 줄을 서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조사부터 출구조사가 가능한 제한거리 규정이 종전 100m에서 50m로 줄어서 그런지 유권자들의 모습을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권자들이 투표소를 다녀갔다. 특히 내리는 비를 맞으며 목발을 짚고 힘들게 투표소에 도착한 어느 한 아저씨가 인상적이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그 아저씨는 “내 작은 한 표가 세상을 바꾸는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싱긋 웃어보였다.
아침 10시가 넘어갈 무렵, 비가 그쳤다. 해도 떴다. 점점 투표소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몰렸다. 조사원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조사함에 쌓인 용지도 제법 많았다. 조장은 본부에 첫 집계 보고를 했다.
그동안의 TV 선거 방송과 홍보 등으로 투표자들이 출구조사를 익히 알고 있어 조사에 대부분 잘 응해줬다. 심지어 먼저 다가와서 자신을 조사하라는 할머니도 있었다. 주변 상인들은 아들 딸 뻘 되는 조사원들이 비오는 날에 고생하는 것 같아 가여워 보였는지 따뜻한 커피와 과일을 내어 주거나 화장실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출구조사에 흔쾌히 응하지는 않았다. 실제 개표로 확인될 사항을 굳이 왜 조사하는가, 비밀투표가 원칙인데 조사원들이 내용을 볼까봐 미심쩍다 등이 조사를 거부하는 이유였다. 그럴 때는 조사에 응해줘서 고맙다는 표시로 제공되는 껌 한통이 조사에 큰 힘이 됐다. “30초만 투자하시면 답례로 껌 한통 드려요”라고 하니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바꿔 가던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그러나 껌 한통으론 통하지 않는 철옹성 같은 유권자들 또한 적지 않았다.
특이한 점은 20대 투표자들의 수가 현저히 적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모든 조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다른 지역의 조사원들 또한 “젊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투표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조원 한명은 “노인들만 투표하러 와서 마치 실버타운 같다”고 말했다.
순탄했던 출구조사가 투표 종료 1시간을 앞두고 최대의 난제를 맞았다. 낮부터 약주를 하신 어르신들이 “출구조사가 비밀투표를 방해한다”며 따졌다. 우리는 이미 선거관리위원회의 허락 하에 합법적인 절차로 진행된다는 점을 설명했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급기야 욕을 하기 시작했다. 선관위 관계자와 인근 주민들이 나와 간신히 사태를 수습했다.
투표 종료 시각인 6시가 가까워지자 투표소 주위에 경찰이 배치됐다. 몇 분 뒤, 본부에서 마지막 집계 보고 전화가 왔다. 조장의 마지막 보고로 우리의 출구조사는 끝났다.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제 19대 국회의원 선거의 출구조사 결과를 알리는 라디오 방송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