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문화마을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촌으로 시작된 고지대로 일명 산복(山腹)도로의 달동네였다. 가파른 산비탈에 자리잡은 이곳은 지형적인 특성 탓에 가옥들이 계단식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집이 뒷집의 전망을 가리지 않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3~4년 전 만해도 인구가 급격히 줄고 빈집이 늘어 황폐화 일로를 걷던 이 달동네는 2009년 5월 지역 예술가들이 사하구청과 힘을 합쳐 문화체육관광부의 ‘마을 미술 프로젝트 공모전’에 응모, 당선되면서 획기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마을 미술 프로젝트'란 한 마을을 회화, 조각 등 미술적인 기법을 이용해 아름답게 단장하는 사업을 말한다. 감천 문화마을은 빈 집을 전시장으로 개조해 예술품을 전시하고 마을 곳곳에 벽화를 그려 넣는 등의 재단장 사업으로 공모전에 당선됐다. 물론 구청은 이 사업에 대해 주민들의 전폭적인 동의를 얻었다.
이후, 감천 달동네의 변신은 탄력이 붙었다. 사하구청은 감천동을 ‘도시 활성화 프로젝트’ 구역으로 지정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기존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주민들까지 직접 참여해 만든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감천 문화마을은 이러한 구청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마을 잘 꾸민 모범 사례로 인정받아 2012년 ‘아시아 도시 경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시아 도시 경관상은 아시아도시경관위원회 주최로 타 도시의 모범이 될 만한 성과를 거둔 아시아 지역의 도시, 또는 프로젝트에 주는 상이다.
이렇게 감천동 문화 마을은 그냥 주거공간이 아니라 아름다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여 국내외적으로 평가 받을 정도로 유명해졌으나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 마을이 예술적이다라는 입소문을 타고 구경꾼들이 물려들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사생활이 심대하게 침해되기 사작한 것이다.
이 마을은 애당초 피란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거주하면서 형성된 동네이다 보니 좁은 비탈길에 세워진 집들은 옆집은 물론 앞집과의 간격도 없이 빽빽하게 밀집되어 있다. 이 마을을 구경 온 사람들이 여기저기를 걷다보면 자연히 좁은 골목을 따라 이동할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골목 옆으로는 담도 없는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고개를 돌리면 창문 사이로 주거공간이 훤히 보인다. 사생활 보호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문화마을 주민 최 모(63) 할머니는 "집 바로 앞으로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통행하기 때문에 문을 열어놓고 생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푸념한다. 최 할머니는 “그나마 지금은 날씨가 선선한 계절이라 괜찮지만 무더운 여름에는 문을 닫고 사니 사우나에서 이불을 덮고 있는 격이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자, 문화마을을 관할하는 사하구청은 주민들의 불편함을 최소화하고자 투어코스를 지정하여 화살표 등으로 방향 표시를 하고 그 쪽으로만 다니도록 안내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방문객들이 정해진 투어코스를 벗어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구청 창조도시계획과 관계자는 안내 표지판을 추가로 설치하고 안내자를 배치하여 주민들의 불편이 최소화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한 그는 소음과 관련하여서 방음 장치 등을 설치하는 쪽으로 대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주민들은 안내 포스터와 같은 방법은 오히려 마을의 쓰레기만 늘어나게 될 뿐 효과가 없다고 주장한다. 주민인 박 모(67) 할아버지는 구청의 뒤 늦은 행정 대책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제야 자원봉사랍시고 몇몇 학생들이 마을 안내를 하고 있는데 이 렇게 적은 자원 봉사자로는 넘쳐나는 방문객들을 통제하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주민들이 겪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주차 공간 부족이다. 거주민 김 모(50) 씨는 매번 마을을 출입할 때마다 차 댈 곳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 앞 승합차 차주가 누구요!” 김 씨는 이런 고성을 듣는 것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구청 관계자는 협소한 마을 공간과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주차공간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으나, 올해 주차 공간을 2개 정도 설치할 계획이며 현재 대상지를 선정하여 부지 매입을 위해 협상 중이라고 말했다.
일부 주민들은 방음 시설 미설치, 주차 공간 부족과 같은 시설의 불편함도 있지만 쓰레기 투기, 물건 절도 등 시민의식이 부족한 관광객들의 태도로 인한 피해도 심각하다고 지적 한다. 주민 김 모(55) 씨는 매번 밖에 빨래를 널어놓을 때마다 양말 한 짝, 속옷 일부가 사라지는 것은 관람객들의 장난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어떤 경우에는 옆집 건너 빨랫줄에 우리 빨래가 걸려 있는 경우도 있다. 옷감을 찾는 경우는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새로 구입해야 하므로 돈 없는 노인들에게는 적잖은 부담이 된다”고 했다.
사하구청 관계자는 감천 문화마을이 매스컴을 통해 많이 알려지면서 예기치 못하게 방문객들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곳이 관광지가 아닌 관광지가 되어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해 주민들과 상의해서 조속한 시일에 해결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
한편, 마을 주민들은 방문객들이 예의 있게 관람하도록 하는 방안과 함께, 주민들은 완공될 주차장을 무료로 이용하게 해 줄 것을 해당 구청에 요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