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집회 계기로 자발적 청년 모임 결성...드라마 '송곳' 모델 노조 관계자 초청 열띤 토론도 / 박영경 기자
요즘 청년들은 불안정한 미래, 고달픈 삶에 대해 많은 걱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부산의 한 청년 모임은 자신들이 직면한 문제들을 함께 모여 토론하며 해결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바로 ‘청년백수다’ 모임이 그것.
‘청년백수다’는 세상에 대한 애정이 살아있는 청년들이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이면서 시작됐다. “사람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촛불은 타오르고 있는데, 왜 우리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회의와 의문이 그들을 모이게 한 원동력이라고 황선영 대표가 밝혔다. 그들은 황 대표의 말처럼 “우리 그냥 속 시원하게 수다나 떨어보자. 그리고 수다에서 끝내지 말고 이 수다로 세상을 바꿔보자”며 촛불 집회가 열리는 현장에 나가 ‘청년백수다’ 로고가 찍힌 풍선과 유인물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로 뜻이 맞은 청년들이 모여 '청년백수다'를 결성했던 것.
'청년백수다'의 황선영 대표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인생 책자를 만드는 등 여러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청년들 스스로가 힘들어 하면서도, 왜 힘든가 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속상했다”며 이 모임의 활동 초기를 회상했다.
그래서 그들은 더욱 똘똘 뭉쳐 구체적으로 기획을 짜고 머릴 맞대고 함께 고민해 ‘청년백수다 4단계 활동 로드맵’을 구상했다. 황 대표에 따르면, 그 첫번째 단계가 바로 수다다. 이어 두번째는 수다에서 나온 큰 덩어리의 주제들을 구체화해 공부하는 것. 셋째가 그것을 바탕으로 청년들의 10대 요구안을 만드는 것이란다. 황 대표는 “마지막 목표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에 청년 대표를 나가게 하는것, 적어도 후보들 중에 청년들의 요구를 받아줄 수 있는 후보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청년문제 해결에 앞서, 오늘날 청년 문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공부하기로 했다. 8일 있었던 '청년백수다' 모임에 외부 전문가를 강사로 초청한 것도 그같은 노력의 하나다.
이날 모임에선 웹툰 원작으로 드라마로도 제작됐던 노동조합 드라마 <송곳>의 실제 모델인 한 대형 마트 노동조합 안수용 사무국장이 강사로 나섰다. 안 국장은 “드라마 <송곳>이나 영화 <카트>에 담긴 내용은 극화를 위한 각색을 거쳤다 하더라도 90% 이상은 진실”이라고 설명했다.
안 국장은 이날 노동조합의 힘에 대해 청년들에게 강의했다. 그는 “계산원의 인권을 위해 치열하게 싸운 끝에 계산대에 의자 설치하기, 세 시간 이상 연속 근무하지 않기, 필요하면 반드시 화장실 이용하기 등의 기본 인권을 지켜냈다”며 노동조합의 힘을 피력했다. 또한 “직원에게 회사는 일하기 좋은 직장, 오래 다니고 싶은 직장이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이제까지 이뤄낸 것이 많지만, 앞으로도 필요한 직원 복지와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 국장은 근무하고 있는 해당 마트의 복지에 대해 “하청 업체 직원이나 용역 직원들은 휴게 공간은 물론이고, 근무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 안 사무국장은 “그들이 쉬고 일하는 공간에는 의자도 없어 박스를 깔아 놓고 휴식을 취한다. 그들이 있는 곳 근처에는 정수기도 없어 물을 마시려면 식당까지 이동해야 하는 등 아주 상황이 나쁘다”고 덧붙였다.
강의 내내 “서민이 정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청년 문제를 해결할 당면 과제로 ‘최저임금 개선’을 꼽았다. 그는 “최저 임금은 생활 임금이자 노동자 평균 임금”이라며 “이번 정부에서만큼은 반드시 이 문제가 법제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사가 평가해 급여를 책정하도록 하고, 좋은 점수를 위해 노동조합 가입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성과급제, 현실성 없는 시기 적용이 문제인 임금피크제 등도 개선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안 사무국장은 “회사의 탄압에 의해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못하거나 탈퇴하는 노동자들이 많다”며 “누군가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면 회사 측에서 그를 불러 일대일 면담에 들어간다. 그 탄압에 이기지 못해 노동조합을 포기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근무하기 시작하면 노동조합에 가입하도록 하는 조항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시간 가량의 강의가 끝나자, 모임에 참여한 청년들은 눈빛을 반짝이며 그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하청 업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사 직원으로 대우받지 못하냐”, “그렇게 대우받지 못한 것에 대한 항의는 어디서 하냐”, “노동조합 가입을 쉬쉬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냐” 등 열정적인 질문이 쏟아졌다.
강의를 마친 안 국장은 “우리가 정치 문제를 정치인들에 맡기고 나몰라라 하면 안된다는 것을 청년들이 많이 깨달은 것 같아 너무 기특하고 뿌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적극적으로 문제 개선에 나서는 청년들이 많다면 충분히 우리의 미래가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회원들은 강의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토론의 시간도 가졌다. ‘최저 임금이 올라야 하는 이유’, ‘비정규직 철폐 및 최저 임금 인상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 등에 대해 서로간 격의 없이 의견을 교환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등 화기애애하고 열정적인 분위기가 계속됐다.
'청년백수다' 창단 멤버이자 기획단원인 김인애(28, 부산시 동구) 씨는 “청년들이 정치에 참여하고 나라를 이끌어나갈 수 있는 장이 열렸으면 좋겠다”며 “그런 세상이 올 때까지 이 활동을 계속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청년인 우리가 청년 시기를 벗어나게 되면 다음 청년 세대에게 물려줘, 계속해서 발전을 이루어 나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황선영 대표는 “이번 정부가 아직까지는 일을 잘 처리해주고 있어 기대감이 크지만, 청년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청년 문제에 대한 근본적 이해라는 한계에 부딪힐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며 “기존 정치인에 휘말리지 않고 직접 모든 것을 발언해 줄 수 있는 청년 정치인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 대표는 “청년다운 이야기를 확실히 전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 수 있도록 새 정부가 법과 제도의 개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겠느냐”며 이야기를 끝마쳤다.
세 시간 가량의 모임 활동이 끝나자, 그들은 활기차게 뒷풀이를 이어갔다. 그들의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청년백수다'에 활기를 불어넣는 힘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