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씨는 별다른 정치 경험도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대통령 선거판을 뒤흔드는 큰 힘을 보여주었다. 비록 대통령 후보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차기 대통령을 이야기할 때 누구보다 먼저 언급되는 사람으로 되었다. 그는 또 지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여당후보를 간단히 물리치고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지금 그는 단기필마의 정치인이지만, 그가 당을 만든다면 현재의 야당을 물리치고 제1당에 가까이 가는 예상 지지율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막강한 정치인으로 등장시키고 있는가? 지금처럼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정당에 대한 무관심을 보여주는 상황에서, 그같이 놀라운 영향력을 보여주는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모두가 궁금해 하는 일이다. 너도나도 한마디씩 그 이유를 말하기도 한다. 안철수 의원이 주장하는 ‘새 정치’에 대한 기대가 그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그 새 정치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신기하고도 미스테리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난 정치가 어떠했고, 지금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어떤지를 살펴보면 안철수 현상에 대한 미스테리를 설명하지 못할 것도 아닌 듯하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의 정치는 여당과 야당, 그리고 보수와 진보가 번갈아 집권하는 민주 정치의 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해방 이후 보수 세력이 집권한 이래, 제2 공화국의 짧은 야당 이후 문민정부까지 보수 여당이 정권을 잡았었다. 80년대 민주화 투쟁 이후 김대중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고 노무현 정권이 이어받으면서 확실한 진보의 기치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 다시 보수 정치가 되돌아왔고, 박근혜 대통령은 더욱 선명한 보수의 가치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어느 나라나 보수와 진보는 번갈아 집권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보수와 진보가 정책으로 대립하지 않고 이념으로 싸워서 감정이 충돌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 일제 강점기나 남북 분단 등의 역사적 상황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보수와 진보는 정책을 두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대를 극복해야 한다는 진영논리를 앞세워 극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쇠고기 파동, 천안함 사건, 강정마을 문제 등에서 보아왔고 최근에도 5.18 기념일에서 보듯이, 상대를 잘못되고 나쁜 집단으로 몰아붙여 크게 국론을 분열시키는 경우가 거듭되고 있다.
보수가 집권했을 때 진보 인사들은 정권을 빼앗아오기 위해 죽기로 싸우고, 정권을 빼앗아오자 보수 인사들은 진보의 흔적조차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극에서 극으로의 진폭 큰 정치 스펙트럼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미 그런 극단적인 이분법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상당수의 국민들, 특히 젊은 층의 많은 사람들은 극렬한 이념적 정치 지향보다 생산적이고 건전한 민생정치, 정책 정치를 바라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보수와 진보 그 중간 어디에 상당수 국민들이 와있는 것이다. 아제는 자기들끼리 서로 증오하고 말살하려하기보다는 국민을 위해 경쟁을 벌이는 정치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안철수 식 새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 안철수 의원이 말하는 새 정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정립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여당에서 벗어나고 야당에서도 떨어져 나와 안철수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구태의연한 보수와 진보의 등식으로는 재단할 수 없는 새로운 형식의 정치 지평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꼭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가 아니라도 우리 정치는 그런 쪽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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