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12일, 대한민국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했다. 국내에서는 왜 대통령이 외교 분쟁을 자초하냐는 비판이 나왔고, 일본은 이를 강하게 항의했다. 우리 대통령이 우리 땅을 밟는데 국내 여론이 왈가왈부하는 세태를 본 한 스카이다이버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세계만방에 자기만의 방법으로 외치고 싶었다. 얼마 후 그는 미국에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현수막을 들고 창공에서 뛰어 내릴 계획을 세웠다.
그의 남다른 계획에 각계각층의 성원이 이어졌다. 외교통상부는 그에게 독도 관련 팜플렛을 지원했다. 또 독도참사랑운동본부는 한가득 독도 홍보 티셔츠를 내어줬고, 독도 지킴이 인터넷 그룹 반크(BANK)는 독도 관련 스티커, 우편엽서, 기념품 세트를 그에게 제공했다. 그는 직접 사비를 들여 현수막 제작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스카이다이빙 팀의 협조를 구했다. 그로부터 독도 이야기를 접한 미국 스카이다이빙 팀은 기꺼이 독도 홍보에 동참해 주었다. 그들은 수 일 간 함께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다이 스카이다이빙 센터에서 연습을 한 후 드디어 일을 벌였다. 9월 20일, 마침내 그와 미국 친구들은 수 천 피트 상공에서 강하하며 독도 사랑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미국 창공에서 전 세계인들이 보라고 펄럭인 그 현수막은 이렇게 씌어 있었다. “대한민국의 아침은 독도에서 시작된다.”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먼 타국 하늘에서 펼쳐지는 장광이 연출됐다. 그가 벌인 독도 사랑 창공 퍼포먼스는 그의 미국 친구 촬영팀이 생생이 담았고, 이는 18일 오전 10시에 본 시빅뉴스를 비롯해서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됐다.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이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애국심으로 혼자 미국으로 날아가 독도 퍼포먼스를 수천 피트 미국 창공에서 전 세계를 향해 펼친 주인공은 이대호(34) 씨다. 그는 세계 최강의 특전부대인 특전사 예하 707대테러특수임무대대 장교 출신이다. 제대 후 스카이다이빙 국가대표 선수, 국제 스카이다이빙 교관, 익스트림 클라이밍 교관, 스쿠버다이빙 교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터미네이터 같은 이 사나이의 정체는 한두 마디 말로 표현이 잘 되지 않는다. 철도 씹어 먹을 것 같은 외모에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 듯한 강인한 눈빛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욱 궁금하게 만든다.
34세. 많지 않은 나이에도 이 모든 수식어의 주인공이 된 이대호 씨는 올해 초 10여 년의 군 생활을 마무리하고 현재 경성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늦깎이 학생이다. 부산 해운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그는 100m를 11초대에 끊을 만큼 운동에 유달리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체대 진학을 적극 추천했다. 그러나 월남 참전 용사인 아버지를 보며 자라온 이 씨는 어릴 적부터 군인에 대한 꿈을 키워오고 있었다. 그는 “군대라는 조직을 동경해왔고 꼭 특수부대에 가고 싶었다”며 당시의 포부를 말했다.
이대호 씨는 본인의 꿈을 살려 특전용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목표를 정한 그때부터 육군3사관학교 생도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필기시험과 체력 검정을 대비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2000년 그의 노력은 마침내 합격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이 씨는 “사람들은 뭐든 생각은 많이 하는데 실천하지는 않는다. 나는 한 번 생각하면 꼭 실천해서 끝을 보려고 했다”고 말했다.
생도 생활 중에도 그는 체력왕, 육상왕, 철인 3종왕 등을 수상했으며, 소위로 임관하자마자 원래 꿈대로 특전사에 지원했다. 특전사 부임과 동시에 산하 최강 특수부대인 707부대로 배치받은 그는 부중대장으로 활동하면서 부하들에게는 엄격했지만 정 많은 간부였고,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냉철한 사나이였다. 그렇게 안으로 채찍질하고 밖으로 사명을 다하며 그는 멋진 군인으로 담금질되어 갔다. 그는 고강도 훈련으로 잘 알려진 707부대 생활이야말로 자신을 성장시킨 매우 값진 기간이었다고 회상했다. 707부대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난 체력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여기에서 체력보다도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는 “힘든 과정을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은 체력보다도 정신력에 달려있다고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고공강하 훈련을 특전사 부임 이후 본격적으로 받았다. 산소가 희박한 고도 2만 5,000피트(8,000m) 상공에서 뛰어 내리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수백 차례 훈련을 통해 고공강하를 즐기는 단계로 발전했다. 그는 군복무 중 1000회 이상 하늘에서 과감하게 몸을 던졌다. 그리고 그 실력을 인정받아 2005년, 2006년, 그리고 2008년 국군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통령과 전 국민이 TV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히 고공강하 시범을 선보이는 전사가 됐고, 그런 공로로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표창도 수차례 수상했다.
그렇게 시작된 고공강하와의 인연은 익스티림 스포츠 스카이다이빙으로 이어졌다. 그는 광활한 땅에 대한 두려움을 삼킨 지 이미 오래였고, 그에게 드넓은 하늘은 도전해서 극복할 작은 공간일 뿐이었다. 이 씨는 군 생활 중 휴가에 맞춰 짬짬이 해외를 오가며 스카이다이빙 전문가 훈련을 받았다. 그 결과, 2011년에 한국 낙하산 협회(KPA) 스카이다이빙 자격증뿐만 아니라 세계 낙하산 협회(USPA) 스카이다이빙 자격증과 교관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무적처럼 보이기만 하는 그에게도 아찔했던 순간들은 있었다. 2003년, 특전사로 활동할 당시 이라크 파병 소식을 듣고 그는 한 순간 망설임도 없이 이라크 파병을 지원했다. 그는 “군인에게 필요한 실전 경험을 쌓고 싶어 이라크에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전장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그가 바그다드 근처에 다다랐을 때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도 겪었다.
이대호 씨는 지쳐서 나약해질 때마다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 마음을 잡았다. 그는 승부욕이 원체 강해서 지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항상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며 눈앞에 닥친 현재에 집중했다. 그는 “이름 앞에 나를 상징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쯤은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것에 도전을 해보고 싶어 10여 년의 군 생활을 끝으로 작년 8월에 전역했다. 전역하자마자 그에게 들어온 오퍼가 고공낙하 대역이었다. 그의 소문난 고공강하 실력은 개봉 예정 영화 <용의자>와 종영된 MBC드라마 <7급 공무원>에서 스턴트맨 역할을 통해 여실히 인정받았다.
이 씨는 얼마 전 제15회 아시아니아 스카이다이빙 대회에 국가대표 자격으로 출전했다. 이번 대회는 4인이 한 팀이 되어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동작들을 하늘에서 선보이는 형식이었다. 이 씨가 포함된 한국 대표팀은 최선을 다했지만 6위에 그쳐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아쉬움이 큰 대회였지만 그는 이번을 계기로 가슴이 더 뜨거워졌다. 그는 “한국 스카이다이빙 수준은 아직 세계 수준과 격차가 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세계 1등을 위해 도전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구열도 남달랐던 이대호 씨는 학문에 대한 욕심도 쉽사리 버릴 수 없었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건국대학교 경영대학원을 다녔고 2008년에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역 후에도 그는 조직과 경영을 더 배우고 싶어 올해 경성대학교 경영학과에서 늦깎이 대학생이 되길 자처했다. 지금도 그는 어린 친구들과 함께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대호 씨는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전역 후에 꿈꿔왔던 많은 것들에 계속해서 도전할 계획이다. 이 씨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군대에서 강철 사나이였던 그는 사회에서도 '진짜 사나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하늘과 땅을 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