훤칠한 키에 듬직한 체격, 얼굴에 항상 미소를 짓고 있는 25세 부산 청년 조현민 씨. 얼핏 보면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는 늠름한 젊은이다. 하지만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이런저런 말을 걸어보면 보통 사람과는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어눌한 말투에다 약간 어색한 몸동작 때문이다.
조현민 씨는 국가로부터 3급 장애인증을 발급받은 지적 장애인이다. 어렸을 때 잃았던 질병의 후유증이다. 하지만 조 씨는 이 장애를 치열한 삶의 의지로 극복해내고 이젠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아니, 남들보다 더 크고 원대한 꿈을 가진 멋진 청년으로 변모했다.
현민 씨의 독특한 이야기는 초등학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장애인이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일반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장애 때문에 학교 친구들로부터 늘 놀림감이 되곤 했다. 극심한 따돌림과 괴롭힘으로 몸과 마음이 멍들어있던 초등학교 4학년 어느 날. 체육관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현민 씨를 보며 한 선생님이 다가와 "너 잘 타는구나. 쇼트트랙 해보지 않을래?"라고 말했다. 이 선생님의 격려와 권유의 말 한마디가 현민 씨의 삶을 180도 바꿔 놓았다.
그렇게 쇼트트랙에 입문하게 된 현민 씨. 그는 남들보다 더 피나는 노력이 없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회 시즌이 되면, 새벽 6시부터 밤 9시까지 링크장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빙판 위에서 발이 꽁꽁 언 것도 모른 채 스케이트를 벗지 않았다.
현민 씨는 학창 시절의 쇼트트랙 훈련을 떠올리며 "진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집인 부산의 해운대에서 링크장이 있던 북구 덕천까지 차로 1시간 20분. 그에겐 든든한 조력자인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렇게 먼길을 다니며 힘들었던 훈련을 버틸 수 있었다.
스케이트를 시작한 지 10년차인 2012년, 그는 피나는 노력 덕분에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3위라는 달콤한 첫 열매를 수확했다. 그는 부산시 대표 장애인 쇼트트랙 선수로서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서 메달을 휩쓸었다. 뿐만 아니라 배드민턴에도 두각을 보이던 그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배드민턴으로도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꾸준히 메달을 거두었다.
화려한 수상 내역을 뽐내는 현민 씨에게도 쓰라린 아픔은 있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급우들로부터 갖은 멸시와 따돌림을 받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현민 씨는 꾸준히 일반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대학에도 진학했다. 그는 경상대학교 스포츠과에서 비장애인들과 어깨를 견주었을 뿐더러, 그후에는 한국외대 스포츠과로 편입해서 열심히 공부했다. 현민 씨는 "아무래도 일반 학교를 다니다보니, 운동이 힘든 것보다 사람들이 나한테 했던 행동들이 더 힘들었다"며 "하지만 좋은 선생님과 친구들도 곁에 있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지금 현민 씨는 특수학교인 부산혜성학교에서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고 있다. 낮에는 사서 일을 하지만 저녁에는 여전히 쇼트트랙 훈련에 열중하는 현민 씨를 보며 현민 씨가 고등학생 때 만났던 정영희 선생님(51)은 "참 영혼이 순수한 친구에요. 지금도 만나면 (잘 자란 현민이에 대해) 제가 많이 고맙답니다"라고 말했다.
현민 씨는 앞으로 어부나 기계기술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는 푸른 바다 위에서 고기를 낚는 것과 자동차나 비행기 등을 조립하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언제나 포기하지 않고 꿈을 꾸는 현민 씨. 그에게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으니 그는 "이제는 사람들이 저를 괴롭히지 않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