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5월 대한민국 정국은 이른바 ‘광주 술판 사건’으로 뜨거웠다. 5.18 민주화 운동 기념일 전야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한 386세대 젊은 정치인들이 전야제가 끝난 뒤 광주 시내 단란주점에서 도우미를 끼고 흥건한 술 파티를 벌인 것이 폭로된 것이다. 당시 ‘386’은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녔던 30대 나이의 운동권 출신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문제의 술판 참석자는 김민석, 우상호, 송영길, 김성호, 장성민, 이종걸, 이상수, 박노해 등 십수 명.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저항의 아이콘으로, 운동권 지도자들로 쟁쟁한 이름을 날리던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지금도 여야 정계 및 사회단체, 학계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당시 여론은 성난 파도 같았다. 보수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그들의 위선적 행동에 대해 일제히 비판을 퍼부었다. 낮에는 검은 넥타이 매고 망월동 참배를 하러온 사람들이 어떻게 밤에는 아가씨 끼고 술을 마실 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도덕성이 그들 존재의 근거일진대 어떻게 그렇게 비도덕적인 행태를 보일 수 있느냐는 질책이 연일 쏟아졌다. 조중동 등 보수 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오마이뉴스, 한겨레 등 진보 언론조차도 이들을 꾸짖는 대열에 가담했다. 일부 신문은 “386? 걔들 원래 그런 사람들이야. 본성이 뒤늦게 드러났을 뿐”이라는 등 야유하는 논조의 칼럼을 싣기도 했다.
그때 필자는 경향신문 논설위원이었다. 당시 논설위원들이 돌아가며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뒤 필자 순번이 왔다. 술판 사건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물론 필자 역시 앞장에서는 거창하게 여성들의 인권을 제창하면서 뒤로는 술집 아가씨를 희롱했던 일부 386 정치인들의 위선을 감쌀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너무 일방적인 매도 분위기가 지속되면 그들이 온 몸을 바쳐 일궈냈던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마저 훼손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올커니! 너 잘 만났다”는 식으로 386 정치인들을 마치 승냥이마냥 물고 늘어지는 보수 논객들의 논조에 반감이 생겼다.
그래서 필자는 여론의 흐름에 정면으로 반하는 칼럼을 썼다. '386을 위한 변명'이란 제목이었다. 17년 전의 일이라 약간 기억이 희미하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논지였던 것 같다.
“그날 광주 술판을 벌인 386 정치인들 역시 이 땅의 오랜 남성 중심주의, 마초 문화의 희생자일 뿐이다. 5.18 민주화 운동 20주년을 계기로 오랜만에 회동했고, 저녁 식사를 함께 하면서 술 한 잔 걸쳤으며, 취하고 나니 도우미가 있는 술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만일 이 마초 문화에 물들지 않은 사람 있거든 나와서 그들에게 돌을 던져라.
(....) 나는 386이 아니다. 50년대 태어나 70년대 대학을 다녔고 현재 40대 나이니까 475 세대다. 또 대학 시절 유신 독재 반대 학생 운동을 먼발치서 구경만 했을 뿐으로, 386들과는 어떤 인연도 없다. 그럼에도 그들을 변호하고 나선 것은 지금 불길같은 386 매도 분위기의 뒤켠에서 군부 독재의 사생아 극우 보수 진영의 일부 인사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반향이 뜨거웠다. 술판 사건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논지의 기사와 칼럼이 거의 모든 언론에서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한겨레 신문은 며칠 뒤 이례적으로 필자의 칼럼을 원문 그대로 전재하며 여론의 물줄기를 바꾼 글이라고 소개했다. 동감을 표시하는 격려 편지도 쇄도했다. 그중 하나는 19세기 후반 유럽 인권 운동의 기폭제가 된 드레퓌스 사건 당시 억울한 누명을 쓴 유대인 프랑스 장교 드레퓌스를 변호한 에밀 졸라가 떠오른다는 과분한 칭찬도 있었다. 이 칼럼은 필자가 논설위원 재직 시 썼던 가장 보람있는 글 중 하나로 가슴에 품고 있다.
386세대가 다시 2017년 정국을 강타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지난 6일 대통령 비서실을 대상으로 한 국감에서 “386세대 주사파들이 장악한 청와대 비서실” 운운하며 80년대 전대협 의장 출신인 임종석 실장을 공격한 게 발화점이다. 이에 임 실장은 “큰 모욕감을 느낀다”면서 “의원님이 거론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을 걸고, 삶을 걸고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는 “5공화국, 6공화국 정치 군인들이 광주를 짓밟고 민주주의를 유린할 때 의원님께서는 어떻게 살았는지 살펴보지는 않았다”고 따끔한 일침을 놨다.
여론은 발끈했다. 문재인 정부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네티즌들은 전희경 의원의 이날 발언과 비상식적 질문 태도에 비난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지금 어느 시대인데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이냐는 것이다. 또 “(임 실장의) 머리 속을 들여다보고 싶다고 했는데 우리는 당신 머리 속이 어떻게 돼 있는지 그것이 궁금하다”라며 힐난했다. 또 전 의원의 전력과 관련, “남의 논문을 통째로 베껴 석사 학위를 받느라 바빴을 것”, “박근혜 청와대 사주로 전경련으로부터 불법 지원을 받아 보수 꼴통 시민단체 운영하느라 정신을 잃은 모양” 등의 험담도 줄을 이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거셌다. 여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전 의원과 자유한국당의 색깔론 공세에 거세게 반발했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주사파에 장악됐다고 생각하시면서 어떻게 편안하게 밥먹고 잠자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빨리 망명하시거나 투쟁하셔야지”라는 등의 야유로 여당 의원들을 거들었다. 전 의원이 이날 색깔론 발언을 한 뒤 다음날 운영위를 그만 둔 것과 관련해서도 “한 건 한답시고 ‘폭튀(폭탄 터뜨려 놓고 도망가기)’한 것이냐”라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필자는 지난해 국정교과서를 둘러싼 논란에서 여러 토론장에 나와 발언하는 전희경 씨를 보고 참 “같은 말을 해도 어떻게 저렇게 밉살스럽게 하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특유의 땍땍거리는 어조로 상대방 패널의 말을 함부로 잘라 가며 자기의 논리만 전개했다. 그 논리라는 것도 친일파 비호, 군사 정권 옹호 등이 주된 줄거리로, 보편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일방적인 것이었다. 말은 번드르르 했다. 한 번 말문을 열면 막힘없이 술술 이어졌다. 하지만 ‘교언영색(巧言令色)’이었다. 궤변과 어거지로 점철됐다. 최소한 필자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런데 당시 새누리당 지도부는 그를 ‘국정교과서의 영웅’으로 치부하고 지난해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금뱃지를 달게 했다. 물론 보수 진영에서 보기에는 말 잘하는 그가 진보 진영에 대한 공격의 전위대로서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필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냥 인간과 국민과 나라의 보편적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은퇴한 언론인일 뿐이다. 지금은 586으로 변한 386 하고도 여전히 아무런 인연이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임종석 실장을 비롯한 옛 386 세대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 덕분에 민주화를 이룩한 것에 대한 일종의 역사적 채무감 때문일 것이다. 전희경 의원의 말대로 지금 청와대에 여럿 포진한 386 운동권 세대가 여전히 사회주의에 대한 ‘심퍼시’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들 젊었을 때 뜨거웠던 가슴이 나이 들어 586이 된 지금 많이 정화되고 성숙되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소한 전희경 의원 등이 턱없이 우려하는 것처럼 ‘빨갱이 나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한다.
공자는 나이 60이면 이순(耳順)이라 했는데, 환갑을 훌쩍 넘긴 675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전희경 같은 사람이 땍땍거리며 잘난 척하는 모습을 보고 공연히 화가 나는 것은 아마 필자가 인간이 덜 되었기 때문일 것으로 자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