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의 조화가 맞지 않아 극심한 흉년이 지속된다고 여겨지던 조선시대. 음양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왕(김상경)은 자신의 딸인 옹주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여성이 억압받던 조선시대가 배경이므로 여성이 짝을 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겨졌음) 부마 간택을 실시하게 된다. 부마 간택이 이루어지기까지 일어나는 이야기를 유쾌하게 풀어낸 것이 바로 영화 <궁합>이다. 사나운 팔자로 소문나 과거 혼담을 거절당한 이력이 있는 송화옹주(심은경), 부마 후보들과 송화옹주의 궁합풀이를 하여 최상의 합을 이끌어내는 자를 골라 낼 조선 최고의 역술가 서도윤(이승기). 자신의 권력을 위해 부마 후보에 오른 첫 번째 부마 후보 야심가 윤시경(연우진)과, 모든 여자들이 우러러보는 경국지색의 절세 미남 두 번째 부마후보 강휘(강민혁), 효심 지극한 매너남으로 알려진 세 번째 부마 후보 남치호(최우식)와 또 한명의 부마 후보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영화 <궁합>에서 비춰지는 세상은 사람이 만났을 때 인사말을 주고받는 대신 생년월일을 주고받아야 할 것만 같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모든 일에 궁합을 중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단지 궁합 때문에 궁중에서 음해가 일어날 정도로 절대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궁합이 정말 절대적인가 생각이 들 때쯤 의문이 하나 생긴다. 영화 속에서 적대 관계로 나오는 서도윤과 윤시경의 궁합, 서로 도움을 주는 서도윤과 이개시의 궁합은 전혀 어떤지 나오지 않는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지만 누구나 예측가능한 결말이기에...) 마찬가지로 송화옹주와 서도윤의 궁합에 대한 어떠한 묘사도 나오지 않는다. "가족, 연인, 친구 등 세상 모든 인연에는 궁합이 있다!"라고 말했던 예고편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영화 내의 ‘궁합’은 대부분이 남녀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 극의 초반에 잠깐 왕과 옹주, 옹주와 세자 사이의 궁합이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상 사건의 주요 갈등 요소인 이들의 궁합이 대부분의 이야기를 차지해야 할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비중이 너무 적었다. 따라서 과연 궁합이 영화 속 대사처럼 “인생의 전반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는 힘들었다.
영화 <관상> 제작진의 두 번째 시리즈라 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관람했을 것이다(영화 관람 후에 안 사실이지만 <관상>과 <궁합>은 감독이 달랐다). 물론 나 역시도 그랬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탓인지 실망은 더 컸다. 너구리상 호랑이상 등 각 관상에 따른 인물의 특징을 자세히 설명해주던 <관상>과는 다른 전개 방식이 특히 아쉬웠다. <궁합>에서는 서도윤이 그저 한 사람의 사주를 빠르게 읊으면서 "당신 사주가 이러이러하니 성격이 이러이러 하겠군요" 하는 짧은 설명이 끝이다. 또한 이렇게 간결하기만한 설명이 전혀 와닿지도 않았던 이유는 서도윤이 설명하는 등장인물의 성격이 지나치게 극단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모습과 궁합과의 차이가 커야 그들이 중요시하는 궁합이 비로소 갈등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겉으로 봐도 문제가 있는 사람은 옹주와의 궁합도, 사주도 엉망이었다. 말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엉망인 사람이다. 딱히 그 사주나 궁합이 인물 간의 관계를 결정짓지 않았으며 그냥 인간으로서의 됨됨이가 안 된 사람이라고밖에 보여지지 않았다.
등장인물들 간의 비중도 아쉽긴 마찬가지였다. 특히 서도윤의 동생 서가윤(이민호)의 등장이 그랬다. 그냥 처음부터 눈이 먼 청년으로 등장한다. 왜 눈이 멀게 되었는지 등 개개인의 배경은 나오지 않는다. 서도윤은 과연 어린 시절 윤시경의 가족에게 어떤 도움을 받은 것인지 조차 나오지 않는다. 단지 서도윤이 “물론 어릴 때 많은 도움을 받은 건 고맙게 생각하네”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모든 과거사를 설명했다고 넘겨버렸다. 서가윤이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거의 없다. 윤시경이 서도윤에게 동생의 치료를 도와주겠다며 자신의 사주를 조작하라고 부탁하지만 서도윤은 매몰차게 거절한다. 영화의 전개에서는 없어도 무방한 캐릭터라는 말이다. 윤시경을 제외한 다른 부마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5분에서 10분 정도 나오고 그 이후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저렇게 짧게 등장시킬 거면 부마 후보가 셋이나 된다고(실제 영화 속의 부마 후보는 넷이다) 홍보를 했나 의문점이 들기까지 했다.
송화옹주는 영화가 거의 끝나갈 즈음 왕에게 말한다. “인생에서 사랑을 빼면 무엇이 남는단 말입니까.” 나름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송화옹주의 마음을 보여주는 대사인 듯했다. 영화에서 여러 번 "궁합과 사주를 통해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언급해왔던 것과 상반되는 지조있는 말이다. 그러나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 궁합이 거의 갈등 요소로 작용하지 않았던 영화의 실제 줄거리와는 연결되지 않는 말이었다. 서로 좋은 궁합이 나온 인물과 상극인 결말이 나거나, 상극의 궁합인 인물과 최상의 합인 결말이 나는 등의 정작 ‘궁합’이 중요시되는 내용은 전무하다.
송화옹주와 서도윤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영화는 끝나버린다. 쿠키영상이라도 있기를 바랬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후 궁합을 확인하니 상극이었고, 궁합 따위가 뭐가 중요하냐, 사람 마음 가는대로 살아가는 것이 최고다'라는 교훈을 주는 장면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런 결말이어야 인생에서는 사주와 궁합보다 더 중요한 것이 존재하고,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주제가 드러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이 외에도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와 일부 배우의 연기력, 의미없는 장면 등 아쉬운 점이 정말 많았다. 역학 시리즈 <관상>의 후속작 이라기에, 이승기가 입대 전 찍은 작품이 드디어 개봉한다기에 고민 없이 <궁합>을 관람했다. 역학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인 <명당>의 관람은 고민을 좀 해보고 후기를 찾아본 후에 결정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