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죽었다. 아니, 살아있으면서도 때로는 죽어있다. 이는 <무탄트 메시지>를 읽던 도중 내게 찾아온 깨달음이다.
몇 년 만이었던 강추위가 어느 정도 물러나고 어디선가 봄 향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책 읽기에 딱 좋은 날이네.” 나지막이 내뱉었다.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창가에서 몸을 일으켜 서재로 가니 빽빽하게 책이 꽂혀있었다. 무엇을 읽어야 하나. 봄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은 어떤 글들로 채우는 게 좋을까. 그러다 문득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마치 이른 봄바람이 집안에 불어왔던 것처럼.
<무탄트 메시지>. 어색한 제목에 투박한 책 표지였다. 광택이라곤 찾아 볼 수 없었고 금방 손질한 나무 위에 그대로 잉크를 올린 듯 글이 쓰여 있었다. 책이 곧 상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표지에는 한 원주민 남성의 얼굴이 담겨져 있었다. 옆모습이었으나 그 강인함이 마치 나를 정면으로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상했다. 손에 잡은 이 책을 얼른 내 것으로 소화해내고 싶었다.
저자는 ‘말로 모건’으로 미국 출신의 백인 의사다. 그녀는 우연히 호주로 직장을 옮기게 되고, 그 곳에서 원주민 출신의 청년들을 돌보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저자는 원주민 집회에 초대 받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예순두 명의 원주민들과 함께 걸어서 호주 대사막을 횡단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무탄트 메시지>는 1994년에 쓰여졌으며, 저자가 원주민들과 지냈던 매순간과 그 때의 깨달음을 잘 담아놓은 작품이다.
호주에는 아직도 마지막으로 남은 순수혈통의 원주민이 있다. 이들은 최후의 원주민이다. 정부에 정식으로 등록이 되어있지 않기에 호주 백인 사회 사람들 중 일부는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로 존재한다. 다만 원주민들은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자신이 살아왔던 영토를 빼앗겨, 삭막한 사막과 오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참사람 부족’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참사람 부족은 현대 사회의 인류에게 ‘무탄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무탄트는 돌연변이라는 뜻이고, 어떤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서 원래의 모습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면, 참사람 부족에게 우리는 어떤 변화가 일어난 사람일까? 무엇을 잃었고, 무엇이 더해졌기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돌연변이로 살아가는 것일까. 때 묻지 않은 거룩함과 고유의 순수함을 지닌 참사람 부족의 시선은 참으로 경이로웠다.
참사람 부족의 하루는 의식을 치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들은 이 곳에서의 삶이 잠시이며,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영원한 것을 좇아 살아간다. 이를테면 믿음과 사랑, 베품과 나눔, 창조주를 향한 경배가 그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광신도와 같은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은 온 인류가 실천했어야 할 온전한 삶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들은 아주 조금 울고, 아주 많이 웃는다. 우리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또한 참사람 부족은 물 한 모금 찾기 어려운 사막에서도 부족의 대를 꾸준히 이어왔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다. 하지만 그들한테 이것은 기적이 아니다. 참사람 부족에겐 하나의 확신이 있다. 바로 사람의 영혼은 육체를 빌려서 이 세상에 와 잠시 머무르게 되었고, 사람은 진정으로 대자연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은 대자연에게 먹을 것을 요청할 수 있다. 그럴 때에 언제나 대자연은 참사람 부족에게 식물이나 동물과 마실 물로 인도해 주었다. 지구에 생명이 존재한 이래 꾸준히 영위되었던 이들의 생활 방식은 도무지 우리의 사고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목소리로 대화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이 깨끗하여 거짓이 없기 때문에 참으로 투명한 그 마음과 마음으로 대화한다. 현대인의 말을 빌리자면 텔레파시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들은 30km가 떨어진 부족의 사람과도 아주 구체적이고 확실하게 대화한다. 한 사내가 캥거루를 사냥했는데,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무거운 꼬리는 잘라내도 되냐고 질문한다. 수십km 떨어진 곳에 있던 부족의 대장은 괜찮다고 답한다. 몇 시간 뒤 정말로 온 몸을 땀으로 적신 사내와 거대한 캥거루가 꼬리가 잘린 채 부족의 눈앞에 나타난다. 이들에겐 이 것이 일상이었다. 참사람 부족이 수백 세대가 넘도록 유지해온 것은 대자연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삶이었다.
도무지 책이 술술 넘어가지가 않았다. 한 절, 한 절씩 곱씹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나, 이 사회라는 틀 안에서 내가 크게 간과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했다. 죽음조차도 영혼의 관점으로 풀어내는 참사람 부족을 보며 나는 내가 사는 세상에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삶을 닮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간절했다.
참사람 부족에게는 우리 현대인은 무탄트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당장 우리 눈앞의 욕심을 채우는 삶을 살아간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에 불안해하고 내가 가진 것에 집착한다. 그들이 보여주는 역사처럼 우리가 잠시 머무는 세상이라면 우리의 가치관은 조금 달라져야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떨어지지 않는다. 원시적 부족이 본 현대인은 별종 무탄트였다. 현대인인 나는 무엇을 더 사랑하고 무엇을 덜 사랑해야하나 고민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