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부산 지하철 1호선 연산역에는 출근하는 직장인들과 등교하는 학생들로 붐빈다. 그들이 지하철 객차에 오르기 전에 꼭 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가판대에서 신문을 사거나, 아니면 입구에서 나눠주는 무료 신문을 챙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하철 객차에 오르면, 사람들은 대개 그 신문을 꺼내 읽었다. 요즘 지하철 객차 안에서는 신문 보는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객차 안 여기저기에 다 읽고 버려진 신문을 수거하던 가난한 노인들도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은 모두 ‘경건하게’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
유럽 모든 대도시 지하철을 강타했던 지하철 무료 신문 <메트로>가 2002년 5월 국내에 들어오면서 무료 신문 시대가 열렸다. 돈을 내고 사서 보던 기존의 일간지와 다른 <메트로>의 ‘공짜’ 마케팅과 지하철에서 읽기 편한 타블로이드 크기에 사람들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에서도 지하철에 타면 누구나 <메트로>를 읽었다. 이게 큰 호응을 얻자, 이듬해인 2003년 한국판 지하철 무료신문 <더데일리>와 <AM7>이 창간됐고, 2004년 <스포츠한국>과 <굿모닝서울>, <데일리줌>이 잇따라 창간됐다. 2006년에는 CBS가 <데일리노컷뉴스>를 창간했고, 2007년과 2008년에는 퇴근 시간을 겨냥한 지하철 석간 무료신문 <더시티>와 <이브닝>도 창간됐다. 수도권에서 큰 인기를 얻은 무료신문들은 지하철이 있는 지방의 대도시로 배포지역을 확대했다. 부산에는 <메트로>와 <포커스>, 대구와 대전은 <포커스>가 배포됐다. 이렇게 무료신문은 2002년 이후 급속도로 성장해 지하철 이용자 10명 중 8명이 출근시간에 무료신문을 읽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로 전성기를 누렸다.
그 무료신문의 전성기가 10년도 채 가지 못하고 사라졌다. 2009년부터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지하철에서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는 직장인 주현우(45,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씨는 지하철에 Wi-Fi존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신문을 챙겨봤지만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본다. 그는 “스마트폰에 뉴스 애플리케이션 하나쯤은 다들 들고 있지 않나?”고 반문했다. 대학생 정경태(부산시 남구 대연동) 씨도 요새 스마트폰으로 신문을 본다. 그는 “비좁을 때 지하철에서 신문을 넘기면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비 매너다”라고 말했다.
한 때 무료신문을 발행하는 신문사는 10곳에 달했다. 그러나 지난 7월 <데일리 노컷뉴스>가 파산신청을 한 뒤 전국에서 남아있는 무료신문은 <메트로> 뿐이다. 부산에서 <메트로> 신문을 배포하는 한 배포원은 “예전 같이 바쁘지도 않고 발행 부수도 많이 줄었다”며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하철에서 신문이 사라지면서 할 일이 없어진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 출근길 승객들에게 비좁은 객실 안을 돌아다니며 신문 폐지를 수집하던 할아버지들은 눈엣가시였다. 지난 7년간 지하철역을 돌아다니며 폐지 수거를 해왔다는 주모(78, 부산시 연제구) 씨는 “오전에만 폐신문을 모아 2만 원을 번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종일해도 몇 푼 쥐지 못한다”고 말했다.
신문 가판대도 사향길에 접어들었다. 부산 지하철 1호선 중앙역에서 신문가판대를 운영하고 있는 박모(64, 부산시 영도구) 씨는 “하루 종일 있어봐야 사는 사람도 없고, 이제 문을 닫을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아침마다 지하철 객차 안에 널린 신문을 수거하느라 고생하던 지하철 역무원들의 일거리도 덩달아 줄었다. 과거에는 지하철 역 출구 앞에 승객들이 다 본 신문을 버릴 수 있는 신문수거함도 있었다. 부산 연산역의 역무원은 “최근에는 신문이 많이 나오지 않아 신문수거함을 줄이고 있으며, 일부는 일반 쓰레기통으로 쓰이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부산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이준호 교수는 휴대용 스마트 미디어의 발달, 무선 인터넷 환경의 확충으로 지하철에서 신문이 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