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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6개월 간 스페인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기 위해 1월 7일 인천을 출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했다. 여행 도중, 십 수 년 간 배운 어눌한 영어실력으로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의사소통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지만, 스페인 마드리드에 도착한 뒤, 영어 듣는 일은 불가능했고, 스페인어 특유의 발음들만 들릴 뿐이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 ‘información’이라고 적힌 안내 데스크에 “Where is a bus station?”이라고 질문했지만, “노 아블라스 잉글레스(no hablar inglés, 영어 못한다)”라며 영어 하는 직원을 불러 줄 테니 기다리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계 어디서나 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영어가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공항의 안내데스크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이때부터 기자는 각종 표정과 몸짓을 활용한 ‘생존 대화’를 시작했다. 유럽연합 의회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의원수를 가지고 있으며, 2014년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가진 스페인에서 만국공통어인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이것이 스페인에서 6개월 체류하게 될 기자가 느낀 첫 의문이었다.
주위 스페인 사람들에게 물어본 결과, 스페인 사람들은 1940년대 프랑코 독재 시절부터 자국어 보호를 위해서 외국어를 멀리했다는 게 첫 번째 이유였다. 그 당시부터 외국어로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에 자국어로 더빙했다고 한다. 약 20년 후, 이런 자국어 보호 정책은 폐지됐지만, 스페인 사람들은 모든 외국 영화를 볼 때 이미 익숙해진 더빙을 선호했다. 기자가 한 달간 스페인에서 각종 미디어를 접했지만 영어를 보고 들을 기회는 드물었다. 스페인의 코르도바 시에 있는 로욜라 안달루시아 대학에 다니는 라파엘(22) 씨는 “영화관에서조차 더빙 영화가 많고, 자막이 적혀 영어를 들을 수 있는 영화는 드물다”고 말했다. 대부분 국가에서 어린이 영화에만 더빙하고 나머지 영화는 대부분 원어를 살리고 자막을 이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스페인어에 대한 자국민들의 자부심도 스페인에서 외국어 사용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세계에서 대략 5억 명에 달해 중국어 사용 인구 다음으로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한 나라의 인구가 10억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스페인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스페인, 콜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 에콰도르, 과테말라, 쿠바, 볼리비아, 온두라스,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등 남아메리카 대부분의 나라다. 로욜라 안달루시아 대학에서 교환학생들에게 기초 스페인어 과정을 가르치는 한 교수는 “스페인어는 영어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배우기도 매우 쉬운 언어”라며 “스페인어는 과거 강력한 힘을 가졌던 스페인 무적함대 역사의 산물이자 스페인의 자랑스러운 유산” 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장 취업을 앞 둔 스페인 대학생들은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 영어권 국가로 유학을 가거나 영어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 스페인의 지방 중소도시인 코르도바에도 영어 학원이 많다. 로욜라 안달루시아 대학 신문방송학과 학생 크리스티나(20) 씨는 다음 학기에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해 밤마다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영어를 자연스럽게 배워온 다른 유럽 학생들을 보면 부럽다”고 말했다. 같은 대학 경제학과 학생 리카르도(22) 씨는 “취업에 영어 능력이 중요하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요새 대학생들은 IELTS라는 영어능력평가시험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한결같이 “영어는 취업을 위해 필요한 언어일 뿐이고 스페인어를 못하는 스페인인은 되기는 싫다”고 덧붙였다.
'영어=세계화'라고 믿는 사람들은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페인을 국제화 시대에 뒤쳐진 나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자국어에 대한 이들의 자부심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들이 당당하게 말하는 ‘노 아블라스 앵글레스’가 이제는 멋있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