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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뉴욕까지 6,000km를 자전거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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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뉴욕까지 6,000km를 자전거로 달렸다
  • 취재기자 우웅기
  • 승인 2015.03.04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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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개척자' 25세 조완철 씨의 57일 무동력 미국횡단기
“Go West, young man, and grow up with the country(젊은이여, 서부로 가라. 그리고 국가와 함께 성장하라).” 이 말은 19세기 미국 언론인 호레이스 그릴리(Horace Greeley)가 서부 개척시대에 당시 미국 젊은이들에게 갈파했던 말이다. 이 말에 고무된 당시 미국 젊은이들은 유럽 조상들이 처음 자리 잡았던 미국 동부로부터 마차를 타고 꿈과 행운과 황금을 찾아 서부로 달렸다. 그곳에는 인디언, 협곡, 갱, 급류가 이들의 앞길을 가로 막았지만, 이들의 개척 정신을 불식시키지는 못했다. 그후 미국 횡단은 미지의 기회에 대한 개척의 상징과 동의어가 됐다. 21세기 한국의 한 젊은이가 미국 횡단에 나섰다. 200년 전 미국 젊은이들처럼 동부에서 서부로 달린 게 아니라, 그는 거꾸로 서부에서 동부로 달렸다. 방향은 중요하지 않았다. “꿈은 도전을 만든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라, 한국의 ‘신천지’ 개척자 조완철(25) 씨는 2014년 4월 1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입국하여 애리조나 사막, 그랜드캐니언, 나이아가라 폭포, 캐나다의 토론토를 거쳐 뉴욕 맨해튼까지, 오로지 자전거만으로 하루 8시간 100km씩, 57일간 6000km를 달려 미국 횡단에 성공했다.
▲ 조완철 씨의 로스앤젤레스부터 뉴욕까지의 미국 횡단 코스(사진 제공: 조완철 씨).
그의 미국 횡단 자전거 여행이 순탄할 리 없었다. 처음 접한 미국 문화와 기후 환경에 적응하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애리조나 사막에서 준비한 물이 떨어져 탈수로 죽음 문턱까지 가 봤고, 로키산맥의 추위와 눈보라에 심한 감기가 걸려 3일 동안 생사의 기로를 헤매기도 했다. 조 씨가 미국 횡단이란 무모한 도전을 계획한 것은 고교시절 읽은 한 권의 책에서 비롯됐다. 그는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우연스레 자전거로 8년간 세계 일주를 한 ‘찰리(본명: 이찬양)’ 씨의 여행기를 읽었다. 그는 찰리 씨처럼 미련 없이 훌훌 떠나고 싶다는 욕구가 너무 강렬했다. 그는 군 생활 중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여행 계획을 수립했다. 조 씨는 “나는 구체적인 진로를 걱정하기 전에 자전거 여행을 먼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래 조 씨의 성격은 활동적이거나 외형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 씨는 소심했고 평범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조 씨는 1991년 부산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부산에서 살고 있다. 그는 부산과 경남 김해 일대의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2010년에 인제대 데이터통계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단 한 번도 외국에 나가 본 적도 없었다. 토익점수는 400점조차 되지 않았다.
▲ 조 씨는 “꿈은 도전을 만든다”는 자신이 만든 영문 플랜카드를 들고 있다(사진 제공: 조완철 씨).
   
   
▲ 식사 초대를 받은 현지인 집에서 불고기를 만들고 있다. 불고기 하나면 현지인들이 사족을 못 쓰고 덤빈다고 했다(사진제공: 조완철 씨).
그런 조 씨의 내면에는 여전히 미국 횡단에 대한 도전의 꿈이 자리 잡고 있었고, 2012년 10월 군대 전역 후 여행 경비를 모으기 위해 1년간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미국 횡단 도전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 음식점, 공장, 건설현장을 전전하면서 닥치는 대로 여행 경비를 모았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 무언가 테마가 있는 여행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면서 우리나라 고유 음식인 한식을 알리자“는 여행 목적을 설정하게 됐다.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던 그만의 취미가 그를 그렇게 결정하도록 이끌었다. 여행 경비를 모으는 틈틈이 한식 공부를 해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한식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식 요리 실전 능력을 키웠다. 한국 문화도 틈틈이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한국 전통 복주머니, 부채, 태극무늬 북커버도 준비했다. 여행용 자전거 구입에 필요한 200만 원을 비롯해서, 캠핑용품, 여행용품, 카메라 장비, 비행기 티켓, 숙식비, 비상금 등으로 약 700만 원의 경비가 필요했다. 부지런히 알바를 했지만, 700만원에 미치지 못했다. 어딘가 자신을 후원할 기업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직접 서울로 올라가 100여 곳의 기업에 여행 계획서를 제출했다. 자전거 미국 횡단이란 도전을 하는 젊은이를 도와 달라는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러다 마지막 기업이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방문했던 캐주얼 자전거 의류 업체 ‘토엘’에서 조 씨의 열정을 인정하고 후원을 약속했다. 토엘은 현재까지도 자전거 여행가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조 씨를 후원하고 있다. 조 씨는 서울 용산에 위치한 유명 자전거샵에서 고급 여행용 자전거 ‘그레이트 져니’를 샀다. 그리고 그 자전거 샵에서 주관하는 50시간짜리 자전거 정비 특강에 참여하여 정비 기술을 익혔다. 그는 애초부터 미국 도심이 아니라 국도와 시골길을 달릴 계획을 세웠다. 실제 상황과 유사한 지역에서 훈련하기 위해 그는 미국 출국 전 예행연습을 위해 4대강 자전거길을 따라 부산-대전-인천 650km를 5일 만에 주파했다. 이 기회를 이용해서, 그는 예상치 못한 상황 에 대처하는 방법과 타이어 펑크를 극복하는 방법을 익혔다.
▲ 그랜드캐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사진제공: 조완철 씨).
드디어 2014년 4월 16일 D-day가 왔다. 이날 미국의 로스엔젤레스에 도착한 조 씨는 그토록 방문하고 싶었던 그랜드캐년을 향해 힘찬 페달을 밟았다. 좁은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대자연의 장엄함을 사진과 영상이 아닌, 직접 자신이 오감으로 느끼길 희망하면서 그랜드캐년에 도착했을 때는 여행 출발 10일 후였다. 그는 거기서 우연히 또다른 자전거 세계일주 여행자 곽지산(31) 씨를 만났다. 곽 씨는 조 씨의 자전거 뒤에 꽂힌 태극기를 보고 한국인인줄 알았다며 먼저 그에게 인사를 해왔다. 곽 씨는 원래 대기업 직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상에 지치고 못 해본 것이 너무 많다고 느낀 순간 일을 그만두고 현재 자전거로 세계를 돌고 있다고 한다. 조 씨는 곽 씨로부터 강한 동포애와 동료애를 느꼈다. 곽 씨는 조 씨에게 “대학시절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많은 것을 경험하라”는 진심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랜드캐년에서부터 곽지산 씨와 동행해서 다음 날에 도착한 곳은 애리조나 주 세도나였다. 이곳에서도 우연히 또 다른 한국 사람을 만났다. 인생을 설계해주는 ‘라이프 코치’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중년의 한국 현지 교포 하지원 씨를 만난 것이었다. 하 씨는 세도나 방문 기간 동안 조 씨와 곽 씨에게 식사도 대접하고 잠잘 곳도 제공해 주었다. 그리고 그 지역 이웃 사람들을 소개시켜주고 저녁 파티에도 초대했다. 조 씨는 “자전거 여행을 포기하고 여기서 지낼까 하는 고민을 할 만큼이나 아름다운 세도나에서 잊지 못할 여정을 보냈다”고 말했다. 여행 20일 차에 조 씨는 다시 홀로 뉴멕시코 주로 향했다. 이곳은 사막 지대라 선인장들이 굉장히 많았다. 선인장 가시들이 도로바닥에까지 날아와 깔려 있는 탓에 계속적으로 자전거 펑크가 났다. 타이어를 분리하고 튜브를 때우고 10분도 못가서 또 펑크가 났다. 당시 달리던 타이어에 더 이상 때울 곳이 없을 정도로 펑크가 자주 나서 예비 튜브로 교체까지 하게됐다. 예비 타이어 마저도 펑크로 버려야 할 지경이 된다면 정말 큰일이었다. 그러나 조 씨는 한국에서 배운 정비 기술로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했다.
▲ 뉴멕시코 주 사막 지대에서 간판을 그늘삼아 조 씨가 쉬고 있다(사진 제공: 조완철 씨).
여행 35일 차에 콜로라도 주로 넘어가던 도중 문제가 발생했다. 5월의 로키산맥은 다른 지형과는 달리 고도가 높아 아직도 얼음왕국이었다. 조금만 기온이 내려가도 눈보라가 쳤다. 예상치 못한 한파에 조 씨는 심한 감기에 걸렸다. 그는 쓰러질 듯 겨우 가눌 정도의 몸으로 아무 농가로 들어가 목숨을 살려 달라고 했다. 국경을 초월해서 시골 인심은 후했다. 그 농부는 3일이나 침대에서 신음하는 그를 극진히 간호해 주었다. 조 씨는 “매서운 눈보라가 치던 추운 그 날, 타국에서 온 나를 보살펴 준 그 농부의 따스한 마음을 잊을 수 없다. 다시 미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제일 먼저 찾아가 그 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몸을 회복한 한 조 씨는 여행 40일 차에 캔자스 주를 지나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시내에 접어들기 직전에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가까운 어디선가에서 총소리가 마구 들리는 것이었다. 군대에서 총소리를 들은 이후 연속적으로 이런 총성을 들은 적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순간적으로 총성을 피해 원래 일정에 없던 길로 가다, 그는 그만 길을 잃었다. 그때 조 씨는 아주 운이 좋게도 무역업에 종사하는 재미교포 김민욱(56) 씨를 길에서 만나 그의 승합차에 자전거를 싣고 그 자리를 무사히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시카고에 살고 있던 김민욱 씨는 조 씨를 시카고의 그의 집으로 초대했다. 조 씨는 4일간 시카고 김 씨 집에서 생활했다. 김 씨는 조 씨에게 미국 문화에 대해 많이 설명해 주었다. 그는 조 씨 여행의 안전을 빌며 300달러의 용돈까지 건넸다. 조 씨는 “김 씨 아저씨는 처음 만났지만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낸 친근한 삼촌 같이 스스럼없이 만났던 분이었다”고 말했다.
▲ 6000km를 함께 해준 그의 자전거(사진 제공: 조완철 씨).
여행 45일 차에 접어들자, 조 씨는 갑자기 캐나다 토론토로 유학 간 친구 생각이 났다. 어차피 캐나다 국경 인근인 시카고를 지난 그는 기존에 계획했던 진로에서 캐나다 토론토로 기수를 북으로 변경했다. 조 씨는 캐나다에서 친구와 뜨겁게 재회했다. 친구는 조 씨만을 위한 환영파티도 열어주었고, 둘은 그동안에 하지 못했던 수많은 말들로 밤을 지새웠다. 조 씨는 원래 코스에서 벗어난 탓에 700km를 더 달려 다시 미국 땅으로 돌아와야 했다. 조 씨는 “타국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감사한 일은 없다.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를 느꼈다”고 말했다. 친구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을 고한 뒤, 조 씨는 다시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해 나아갔다. 드디어 여행 50일 차에 나이아가라 폭포에 다다랐다. 나이애가라 폭포를 처음 본 순간의 감동을 조 씨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는 “굉장히 크기였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이 아니었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는 곳이었다”고 말했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뒤로 하고, 조 씨는 미국 횡단의 종착지인 뉴욕으로 향했다. 뉴욕에 도착 한 조 씨는 다친 곳 하나 없이 오히려 잘 먹은 탓에 몸무게가 출발 당시보다 7kg나 증가했다. 여행 57일차였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여행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을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57일 간 자전거 여행에 있어 외로움에 눈물을 훔치는 시간들도 있었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격려로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라고.
▲ 지난 2월 7일 부경대학교에서 조 씨는 ‘청춘여행법’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사진제공: 조완철 씨).
원래 여행의 테마이기도 했던 그의 한식 알리기 프로젝트는 여행 중 어찌 됐을까? 그는 여행 틈틈이 만난 미국인들에게 한국 음식을 만들어 대접해줄 기회를 만들었다. 대개 미국인들의 집에서 숙박하게 되거나 초대받게 되면 한식을 만들어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조 씨는 김치 복음밥, 비빔밥, 떡볶이, 고추장 불고기, 돼지 불고기 등을 만들어 대접했다. 미국에 많은 채식주의자들은 특히 비빔밥을 좋아했다. 그 중 한 사람은 "색깔도 이쁘고 고추장도 맛있다"며 "비빔밥은 아름다움 음식"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소불고기를 좋아했다. 우리 식으로 간장, 마늘이 듬뿍 들어 갔지만, 초대 받은 집의 가족들은 물론 이웃집 사람들도 불러 줄서서 불고기를 받아 먹었다. 여행 중에 참기름과 고추장 등 기본 양념은 가지고 다녔지만, 그외의 음식 재료는 미국 마트에서 구했다. 미국인들도 충분히 한식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은 조 씨는 여행 중 한식 알리기 프로젝트도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다. 한국으로 귀국한 조 씨는 현재 3학년 휴학 중이지만 다양한 대외활동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여행사 ‘모두투어’의 서포터즈로 활동했고 해외캠프를 주선하는 회사의 인솔자로도 활동했다. 현재는 여기저기서 초청받는 유명강사가 됐다. 강연 횟수가 10회가 넘었다. 모교인 화명고등학교, 인제대, 그리고 지난 2월 7일에는 부경대에서 ‘청춘 여행법’이라는 주제로 강연하기도 했다. 수줍고 여리던 소년은 어느 새 단단하고 활달한 여행전문가가 되어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조 씨는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강조한다. 그는 “여행도 이와 마찬가지다. 혼자 여행하며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 때만 우리는 성장한다”고 말했다. 조 씨는 지금 새로운 여행지를 찾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터키를 일주할 예정이다. 그는 터키 여행기를 책으로 출간할 계획까지 가지고 있다. 조 씨의 미국 횡단 여행기는 그의 네이버 블로그 ‘희망을 찍는 카메라’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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