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대 경영학과 김민광 씨, 40여 회 공연에 음원 발매..."내 노래 나오면 따라부르게 하고 싶어" / 김강산 기자
“내 이름처럼 매일 밝은 내일~”
매일매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이 노랫말은 김민광 씨의 자작곡인 <매일매일>의 가사 중 한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노래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낮에는 학생으로 부산 경성대에서 경영학을 배우고, 저녁에는 한사람의 래퍼로 무대를 달구는 김민광(25) 씨.
김 씨가 처음 래퍼의 꿈을 키운 것은 고교 시절부터였다. 일반적으로 작곡가가 곡을 만들고 작사가가 가사를 써주는대로 노래 부르는 가수와 달리, 다양한 주제에 대해 래퍼 본인의 생각을 담은 가사를 쓰고 자신의 목소리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혼자서 인터넷을 보며 랩에 대해 공부하던 김 씨는 이후 대학에 진학해 힙합 동아리에 들어가면서 노래를 만들고, 무대에 서면서 진지하게 ‘래퍼’라는 꿈을 가지게 됐다. 김 씨는 “저에게 20대 초반은 랩에 대한 열정으로 처음 해보는 공부와 경험들을 쌓는 시간이 대부분이었어요”라고 말했다
더 이상 취미가 아닌 전문 래퍼가 되기를 꿈꾸면서 그는 먼저 랩네임을 만들었다. “랩네임은 저라는 가게의 ‘간판’이라고 생각했어요. 작은 가게를 할 때도 간판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신중하게 제 생각을 담은 이름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이름은 'HAE', 해라고 읽히는 이 짧은 단어에는 김 씨의 소중한 꿈이 들어있다. 그는 “해가 내포하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좋았어요. 무대에 서 있는 순간 만큼은 제가 유일하고 빛나는 사람이고 싶어요”라며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제가 노래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들이 저에게 해 같은 사람이라는 뜻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늘 긍정적이고 에너지가 넘칠 것 같은 김 씨에게도 걱정은 있었다. 미래에 대한 불투명성 때문이었다. TV에 나오는 래퍼들은 금 목걸이를 차고, 슈퍼카를 몰고 다니지만 그런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인기를 끌며 수많은 래퍼가 생겨났지만 그들 중 성공하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라는 것.
“미래에 대한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분명 성공하기 전까지의 길이 춥고 배고픈 건 사실이니까요. 한 때는 그 걱정 때문에 편두통이 심하게 생길 정도였어요. 하지만 조금 더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제 음악적 목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제 목소리를 전달하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행복하지가 않으면 절대 안되겠더라구요.”
김 씨는 부모님께도 이런 포부를 말씀드렸다. 아들이 음악을 취미로 하는 줄 알았다가 진지하게 가수를 꿈꾼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당황하셨다고. “어머니도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고 아들이 음악을 하는 걸 싫어하시지는 않지만, 래퍼보다는 다른 안정적인 일을 하기를 원하시죠. ‘이러다 말겠거니~’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해요. 저도 부모님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그런 어머니께 자신의 음악을 보여드릴 순간도 있었다. 한 공연에 어머니가 직접 무대를 관람하러 오신 것. 김 씨는 “크고 작은 무대를 합쳐 40번이 넘는 공연을 했지만 그 순간이 가장 떨렸어요. 하지만 제 음악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나니 자신감이 생기고, 조금 더 응원 받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크고 작은 진통들을 겪어가며 민광 씨는 래퍼로서의 꿈에 점점 더 다가가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자신의 이름을 건 음원을 발매했다. 2개의 믹스테잎(CD나 음원 유통 사이트가 아닌 온라인상에서 무료로 공개되는 노래나 앨범으로, 주로 힙합이나 R&B 뮤지션들이 이용하는 방식)과 수많은 곡들 중 엄선한 하나를 디지털 싱글로 내놓았다. 제목은 <매일매일>, 자신이 래퍼로써 고민해왔던 매일과, 앞으로 다가올 행복할 매일을 가사로 풀어놨다. 김 씨는 “제 싱글 같은 경우는 비트는 프로듀서분께 일정한 권리를 구매했고, 그 외 과정은 저와 제 주위 분들의 힘을 모아 만들었어요. 이후 유통사를 통해 계약을 하고, 음원사이트에 유통을 했죠. 이제 저도 돈내고 제 노래를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며 웃었다.
그는 음원 작업뿐만 아니라 실제 무대경험을 쌓기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고 있다. 학교 행사부터 시작해 동아리 공연 등을 거쳐 작년에는 홍대에서도 공연을 했다. 지금도 ‘ANKLE LOCK’ 이라는 이름의 크루와 함께 다음 무대를 기획 중이다.
많은 무대를 하며 자신의 노래를 알리다보니 이제는 고정적으로 찾아주는 관객들도 있다. 그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관객이 있었다고. 김 씨는 “보통 힙합 공연을 하면 관객들 연령대가 10대에서 20대가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전혀 저희를 모르시던 30대 남성이 길에서 포스터를 보고 공연을 보러 오신거에요. 공연 시작 전에는 어색하게 서 계시다가 공연이 다 끝나고 저희가 뒷정리를 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잘 봤다고 이야기 해주셨어요. 그 한마디가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몇 번을 서도 무대는 떨리는 곳이지만, 이런 분들 덕분에 무대에 대한 갈망이 더 커지는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래퍼로써의 길을 착실히 걸어 나가고 있는 김 씨. 래퍼로써 이루고 싶은 꿈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어디서든 제 노래가 나오면 사람들이 즐겁게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을 쓰는 래퍼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저는 되게 소심한 사람이었어요.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힘들었고, 제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서툴렀구요. 랩을 하면서 제가 제 생각과 기분들을 다시 정리하고 이야기하고 전달하게 되니까 스스로 자신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이렇게 변한 저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어요”라며 당찬 포부를 밝히는 김 씨의 눈은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