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TV 프로그램에서 중년배우 백일섭은 40년의 결혼 생활을 졸업하고 아내와 떨어져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혼자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또 지난 11월 4일 별세한 배우 故 신성일도 아내 엄앵란과 졸혼 생활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게다가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중년 부부들을 위한 졸혼을 장려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거나 졸혼을 드라마 소재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졸혼은 결혼을 졸업한다는 개념인데 현재는 황혼이혼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나이들고 무언가 불편한 관계인 부부들에게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졸혼은 내 주변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나의 큰아버지는 오래전부터 큰어머니와 부부싸움을 하거나 이혼 운운하는 모습을 친척들 앞에서 자주 보여주곤 했지만, 자식들을 생각해 차마 이혼하지 못하고 20여 년을 함께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큰어머니의 모습을 좀처럼 보기가 힘들어졌고, 이에 나는 혹시 두 분이 이혼한 건 아닌지 궁금해졌다. 나중에 부모님께 조심스레 여쭤보니 두 분은 이혼한 게 아니라 졸혼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게 현재 두 분은 졸혼 생활 2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이렇게 주변에서 졸혼을 꿈꾸는 부부 혹은 졸혼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 수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모바일 결혼정보서비스 ‘천만모여’에 따르면, 미혼남녀 57%가 졸혼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만큼 졸혼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이 긍정적인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다.
그러나 졸혼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서로 도와가며 가끔씩 왕래하는 졸혼 부부는 극히 드물고, 서로에 무관심하고 왕래조차 하지 않는 게 졸혼 부부의 현실이다. 졸혼 이후 다른 이성과 교제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졸혼은 아직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결혼 현상이기 때문에 졸혼 상태에서 다른 이성과의 만남을 불륜으로 볼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졸혼을 이혼과 똑같다고 여겨 마치 자신이 돌아온 싱글인 것마냥 행동하는 경우도 있다.
만일 이러한 현상이 계속된다면 졸혼은, 이혼은 하고 싶지만 이혼이라는 꼬리표가 자신에게 붙는 게 싫은 사람들이 실천하는 자기합리화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졸혼도 결국 이혼과 다를 바 없이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 등의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키거나 자식들에게 여전히 큰 상처를 줄 수 있다. 그게 그거란 얘기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는 졸혼에 대한 명확한 법적 정의를 제시해야 한다. 법을 통해 이혼과 졸혼의 정확한 구분이 가능해질 것이고, 졸혼을 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은 어디인지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안정적으로 졸혼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기에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 졸혼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는 만큼, 하루 빨리 졸혼 생활이 법적으로 정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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