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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1984>는 나에게는 ‘극단적인 세계의 상상’을 글로 옮겨 놓은 책이었다. 주인공이 사는 곳은 언어와 역사가 통제되고, 당에 귀속되어 기술매체를 이용한 획일화된 집단 히스테리가 난무하는 전체주의 사회다. 나는 <1984>에서 묘사한 전체주의사회를 겪지 않은 세대이기 때문에, 책에 묘사된 그런 사회의 모습에 자연스레 거부감이 들었고, 평소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두려움을 느꼈다.
1984의 저자 조지 오웰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연관시키면 이 책에서 묘사된 사회를 조금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서 한동안 경찰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의 직무가 자신에게 맞지 않아, 그만두게 되고 문학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작가는 온갖 사회적 비리를 보며 정치에 환멸을 갖게 된다. 전체주의를 반대했던 그는 그가 보고 느낀 정치적 환멸감과 공포감을 극대화해 <1984>를 탄생시켰다.
조지 오웰의 전체주의에 대한 환멸감과 공포감은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늘날의 CCTV를 연상케 하는 ‘텔레스크린’은 전체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빅 브라더의 힘이다. 책 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물들이 텔레스크린을 의식한다. 주인공 윈스턴은 자신이 겪은 일이나 생각하는 일을 공책에 옮길 때 텔레스크린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쓰곤 한다. 그가 지향하는 사회가 빅 브라더와 정반대였기에 몰래 그의 생각을 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생각을 겨우 공책에 쓰는 행동조차도 그의 시대에는 무모한 행동이었다.
책 안에서 가장 나를 경악케 했던 것은 "전쟁은 평화, 자유는 굴종, 무식은 힘"이라는 당의 슬로건이었다. 이 모순된 표어는 당원들 모두에게 진리로 여겨진다. 만약 이것을 어긴다면? 그 상태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것을 책 안에서 "증발 된다"고 표현하고 있다. 나는 보자마자 우리나라 독재정권시절이 떠올랐다. 사람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신체제에 반대하면 잡아가서 고문을 하고 결국 죽임을 당해야 했던 사회. 생각해보면 <1984>에 등장하는 사회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사회’라고 생각했지만 불과 50년 전 한국 사회가 겪었던 사회였다는 것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이 책 안에서는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라는 이론이 나온다. 정부의 기록들은 당이 완전무결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뜯어 고쳐진다. 과거를 당원들이 조절하면서 사람들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머릿속에서만 맴돌 뿐이다. 그리고 당으로 인해 수정된 ‘과거의 일’을 기억하고 받아들인다. 이것은 하나의 이론으로 작용되고 이것을 ‘이중 사고’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과거의 기록을 날조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날조된 허위 사실을 믿는 심리 작용이다. 이런 기록들은 당원들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진실과 허위를 식별하지 못하게 되고 그저 충실한 당원으로 만들어진다. 그들의 사고는 ‘2+2=5’라는 모순에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이 사회에 나타나는 ‘신어’ 제작. 신어의 목적은 인간의 사고 범위를 한정, 축소하고 진실과 허위를 가려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마비시키는 데 있다. 언어는 오직 당을 위해, 그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인간이 사고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언어’라는 영역을 당의 힘으로 통제하고 그들이 원하는 데로 바꾸어 버렸으니, ‘무식은 힘’이라는 슬로건은 그저 슬로건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가 된다.
이러한 당의 다양한 전체주의적인 정책이 행해지고 있는 곳에서 주인공 윈스턴만이 다른 당원들과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작가가 심어놓은 하나의 희망으로 해석된다. 항상 마음속으로 ‘빅 브라더 타도’를 외치고 있으며, 당에게 정신을 지배 받지 않은 온전한 정신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평범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있던 그에게 ‘줄리아’라는 젊은 여성이 접근한다. 그리고 곧 둘은 서로 깊게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동지가 된다. 윈스턴은 평소 마음이 통할 것이라고 직감적으로 믿었던 ‘오브라이언’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 과거 당의 반대세력이었던 골드 스타인을 지지하는 세력인 ‘형제단’에 가입하고 싶다고 말한다. ‘형제단’에 가담한 그는 오브라이언이 준 ‘그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생각을 더욱 확고히 굳혀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줄리아와 자신이 사랑을 나누던 은신처에서 체포된다. 그는 오브라이언의 위장에 넘어간 것이다. ‘애정 성’으로 끌려간 둘은 잔혹한 고문과 세뇌를 받게 된다. 윈스턴은 이 시대의 유일하게 제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이었으나, 잔혹한 고문과 세뇌로 인해 결국 정신을 지배당하고, 끝내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며 고백한다.
당은 잔인했다. 윈스턴이 자신과 같은 ‘형제단’의 일원이라고 믿었고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던 오브라이언이 윈스턴의 고문을 담당한다. 고문으로 윈스턴은 당에게 정신을 지배당한다. 결국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쥐’고문을 받게 되면서 빅브라더를 사랑했다며 고백하는 윈스턴의 마지막 말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개인의 무력함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전체주의의 본질을 보여주는 비극적 결말이다.
전체주의와 개인 감시, 이념의 폭력과 관료주의, 관에 의한 역사 왜곡과 조작, 심리적 충격과 자존심의 손상, 사랑, 종교의 자유와 인간성의 말살 등이 나타나는 <1984>의 사회적 환경. 조지 오웰이 이런 사회를 그린 것은 그가 살아간 시대에 <1984>와 같은 사회가 나타날 수 있었을 법한 것들이 그에게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한 사람의 반유토피아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미래는 참으로 암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