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지하철 1호선 범일역 12번 출구에서 나와 길을 따라 10여 분 쯤 걸으면, 갖가지 음식냄새와 함께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이곳은 중앙시장이라고 불리는 부산진구 범천동에 위치한 오래된 재래시장이다. 이곳이 다른 재래시장과 다른 점은 이곳에 매우 특별한 장소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이곳에는 다른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옥상마을’이 있다는 점이다.
옥상마을? 언 듯 말 의미가 잘 와 닿지 않는 옥상마을은 건물 옥상에 마을이 있다는 말이다. 말 그대로 상가 건물 옥상에 일반 주택들이 나란히 있고 그 주택들 사이에 골목길이 있어서 여느 마을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한 이곳을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옥상마을이라고 불렀다. 현재는 대부분의 건물이 철거되면서 옥상마을도 함께 사라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집 몇 채가 남아있어 옥상마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옛날에는 중앙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많은 건물에 옥상마을들이 남아있었지만, 지금은 단 한 채의 시장 건물에만 옥상마을이 남아 있다. 그 시장 건물은 거멓게 색 바랜 건물의 외벽과 결혼상담소와 같은 간판들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한눈으로도 이 건물의 나이가 수십년은 되어 보였다. 시장건물의 한쪽 귀퉁이에서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꽤나 가파른 계단에는 옥상마을의 거주민으로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었다.
옥상마을에 도달하기 전, 시장 건물 계단에서 보이는 시장 퐁경은 어두웠다. 시장 복도는 햇빛이 들지 않는지 낮에도 밝은 전구가 켜져 있었다. 시장 안 풍경은 마치 6, 70년대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공동수도 요금을 적어놓은 칠판뿐만 아니라, 중앙인쇄공사, 무궁화상회, 도서·완구 전문점 등 간판부터 오래되어 보이는 가게들이 시장 구석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판자로 덧댄 상태로 굳게 닫힌 문들은 오랫동안 영업을 하지 않은 듯했다.
시장 계단을 통과해서 옥상에 오르자 이곳이 하늘 아래 마을이라고 말해주기라도 하듯, 시장안과는 달리 햇빛이 화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옥상에 오르면, 거짓말처럼 익숙한 마을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곳에는 옥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집이 있고 골목이 있었다. 마을터가 좁아 모든 집들이 붙어있어 집과 집 사이의 경계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집 앞의 텃밭과 군데군데 놓인 화분까지 일반 주택과 별다를 게 없는 좁은 주택가 골목길이 옥상에 펼쳐져 있었다. 철거된 흔적이 몇 군데 보였지만, 몇 채 안 남은 집 안에서 조그맣게 들려오는 대화소리가 이 옥상 마을에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골목 곳곳을 구경하던 중, 한 노인이 이곳에도 있는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집 앞으로 나왔다. 20년 넘게 이곳에 거주했다는 할머니는 골목길 끝에서 옥상마을이 끊긴 흔적을 보여주며 “전에는 마을 안에 공터도 있었고,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닐 정도로 넓었다”며 나머지 옥상마을이 있던 곳을 가리켰다. 그 손끝이 향한 곳에는 높은 고층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본래의 옥상마을은 중앙시장 건물들 옥상 1,400여 평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57채 100여 가구의 집들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1960년대 후반, 이곳에 시장이 세워지고, 가난에 시달리던 상인들은 장사를 마치고 밤이 되면 인근 여인숙을 전전해야 했다. 이런 생활에 지친 상인들이 시장 상가 건물 위에 하나둘 집을 지어 살기 시작했다. 여러 건물들 위에 옥상과 옥상을 연결하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집들이 다닥다닥 간격을 두지 않은 채 지어졌다. 그 결과, 100여 가구가 옥상 위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곳 주민들의 요청으로 옥상마을은 1980년대 초 무허가 건물 양성화 특별조치법에 따라 정식 주거지로 인정받았고, 부산진구 범천1동 5통6반으로 편성됐다. 행정구역상으로도 정식 마을이 된 것이다.
이런 옥상마을이 2007년 40년의 세월을 안고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중앙시장 재건축 사업이 그 원인이다. 건물 주인들이 건물을 팔면서 이 지역 일대가 재개발됐다. 재개발 된 곳에는 옥상마을과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높은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서 있었다.
성재민(35, 부산시 연제구) 씨는 가끔 이 근처를 지날 때면 이곳 옥상마을에 들른다. 성 씨는 어렸을 때 이 동네에서 컸기 때문에 추억을 더듬기 위해서 이곳을 찾는 것이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하늘공터라 불렀고, 다른 마을 친구들도 옥상마을에 사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며 “정감 가는 곳이었는데, 대부분이 사라지고 흔적을 찾을 수 없어 아쉽다”고 덧붙였다.
세상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옥상마을도 재개발 물결 앞에 조만간 그 생명을 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