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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스포츠센터에도 뿌리깊은 '떡값'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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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스포츠센터에도 뿌리깊은 '떡값' 문화?
  • 취재기자 신예진
  • 승인 2019.05.14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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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 스포츠센터 '김영란법' 저촉... 사설 스포츠센터 '강사 챙기기' 여전

수강료도 내는데 강사님 밥값도 제가 챙겨야 하나요?”

직장인 이모(32) 씨는 최근 난감한 일을 겪었다. 평소 다니고 있던 스포츠센터의 회원 중 한 명이 스승의 날을 맞아 강사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며 다른 회원들에게 1만 원씩 낼 것을 종용한 것. 이 씨는 해당 센터에서 신입이자 막내 격이라 회장 아주머니의 성화에 무조건 ‘반대를 외칠 수 없었다.

이 씨는 “내가 참석하지도 않을 회식 자리를 위해 돈을 내긴 싫다. 그런데 ‘돈을 내지 않겠다’고 알리면 앞으로 눈총을 받을 게 뻔하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회원들에게 돈을 각출해 강사에게 대접하는지... 아마 돈을 내게 될 것 같다”며 답답함을 표했다.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스포츠센터 등에서 강사 ‘모시기’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명 ‘떡값’으로 용돈성 현금·상품권이나 선물을 챙겨 주고, 식사를 대접하는 식이다. 문제는 김영란 법이 발효되고 사회적으로 ‘안 주고 안 받기’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서, 떡값 모으기에 불참하는 회원들과 앞장서서 돈을 모으는 회원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센터에서는 김영란 법 발효 이후 ‘떡값’을 걷는 관행을 보기 어려워졌다. 현재 각 지방 시설공단 소속 강사는 공무원으로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다. 지방정부가 직영 또는 위탁해서 운영하는 스포츠시설에 등록된 강사는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은 아니지만 ‘행동강령’을 통해 비슷한 제재를 받는다. 따라서 스승의날을 특별하게 챙겼다간 강사와 돈을 각출한 회원 모두 처벌받게 된다.

하지만 김영란법 적용을 받지 않은 사설 스포츠센터의 분위기는 다르다. 센터에서 ‘촌지 근절’을 강조하지만 회원들은 조용히 ‘우리 선생님’을 챙기고 있다. 부산의 한 사설 스포츠센터를 다니는 신모(27) 씨는 “옆반 아주머니들이 탈의실에서 스승의 날을 위한 돈을 걷는 장면을 목격했다”면서 “선생님께 식사 대접하고 조그만 선물을 드린다고 하더라. 괜히 ‘우리반도 챙겨야 하나’라는 걱정이 들더라”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스승의 날 떡값은 뜨거운 감자다. “센터에 익명으로 찔렀다”고 밝힌 한 네티즌은 “반에서 막내인데 저희 엄마보다 나이 많은 분이 (돈을) 내라고 하시면서 ‘강요는 아니야’ 하는데 강요로 들렸다”면서 “다른 반 할머니들이 모여서 ‘요즘 어린애들은 절대 돈 안 낸다’며 뒷담화하는 걸 들어서 좀 무섭긴 하다”고 토로했다.

강사들의 입장도 난처하다. 수영강사 2년차 이모(27) 씨는 “회원들이 수영 강사들까지 챙겨줄지 꿈에도 몰랐었다. 솔직히 수강생들이 다같이 돈을 모아서 선물을 주면 감사하다. 하지만 누가 이것을 문제 삼으면 신고가 되니 고맙지만 절대 받지 않고 있다. 차라리 아예 챙겨주지 않는 편이 마음이 편하다. 친한 회원들과 밥을 먹으러 가면 오히려 내가 내기도 한다”고 밝혔다.

떡값 관행과 관련한 논란이 꾸준하자, 각 스포츠센터 측은 ‘촌지 근절’을 알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공공시설인 부산 남구 국민체육센터 관계자는 “적발 시 직접적인 처벌을 받을 가능성이 있어, 강사와 회원들에게 촌지 근절 홍보를 하고 있다”면서 “만약 촌지를 주고받은 정황이 적발되면, 안내 게시판에 강사와 회원 실명을 게재하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부산 남구 경성대학교 스포츠센터 측은 센터 입구에 ‘촌지 근절 안내’표지를 세웠다. 안내문에는 “경성대학교 스포츠센터 전 직원은 촌지문화근절을 위하여 회원으로부터 촌지 및 사례비를 받지 않으니 회원 간 금품을 걷지 않도록 당부드립니다”라고 적혀있다. 만약 이를 위반할 시 직원은 해고, 회원은 회원등록 불가라는 강경책도 내놨다.

이같은 '떡값' 문화에 대해 사단법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지문 이사장은 “주고받지 않은 문화가 시민사회에서 자율적으로 확산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이사장은 "강사와 센터가 먼저 나서서 ‘우리는 받지 않겠다’고 회원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다"면서 "시민들도 나 하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자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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