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잡이로 유명한 부산 기장의 비릿한 바다 내음을 맡으며 기장 대변항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의 무양마을이 보인다. 그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토암 공원 팻말이다. 공원 안에는 시골의 장승처럼 공원을 지키고 있는 몇천 개의 토우(土偶)가 있다. 토우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본떠 만든 토기나 토기 인형으로 장난감이기도 했고 주술적 의미를 갖기도 했다. 신라시대부터 성행했다. 그 토우가, 기장의 바다 옆에서,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라 사람 형상의 수천 개 토우가 입을 벌리고 있는 이곳은 부산 기장군 기장읍 대변항에 위치한 토암 도자기 공원이다.
토암 도자기 공원은 고(故) 토암 서타원 선생의 도자기 요업지로써 생전에 선생의 소망을 이어 받아 사설 복합문화 쉼터로 만들어진 곳이다. 이 쉼터엔 도자기 작업 터가 있고, 도자기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으며, 차와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도자기와 경치를 보며 차와 식사를 즐긴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에 사는 이지연(34) 씨는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도자기도 구경하고 밥까지 먹으니 힐링이 된다”고 말했다.
지금은 서타원 선생의 아들이 이곳을 관리하고 있다. 아들은 선생의 생애를 하나하나 들려 주었다. 토암(土岩)이라는 호를 사용한 서타원 선생은 1946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 소질이 뛰어났지만 사회 초년시절은 미술과는 거리가 먼 양산시 공무원으로 보냈다. 하지만 그와 맞지 않던 공무원생활을 오래지 않아 그만두고, 그는 신라 토기를 재현하고자 1972년 경남 언양으로 내려가 흙을 처음 만졌다. 그 후로 계속해서 신라 토기 재현 연구를 해오다가 부산 송정으로 가서 전통타일 공장에서 타일 만드는 일을 했다. 타일공장 이후, 1974년 그는 기장 교리에 그의 이름을 딴 타원요를 설립하고 분청사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전성기는 이 시기로 토암 공원 전시실에 있는 도자기가 그때 당시 만들어진 것들이란다.
하지만 1997년, 그는 위암 선고를 받게 되고 1999년에 교리에서 현재 토암 도자기 공원이 있는 무양마을로 터를 옮겨 위암 투병생활을 했다. 쇠약해진 몸으로 그가 힘이 아주 많이 드는 도자기 작업을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는 도자기와 항아리보다 작은 크기의 토우를 만들기로 했다. 이것이 그가 토우를 제작한 첫 번째 이유였다. 그 후 2002년 6월까지 2,300여 개의 토우를 만들고, 그는 2005년 3월 도자기와 함께 생애를 마감했다.
서타원 선생이 토우를 만든 또다른 이유는 2002년 월드컵과도 관계가 있다. 온 국민이 월드컵과 아시안 게임에 열중할 때, 그는 토우에 열중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2002년 세계 합창 올림픽 성공을 염원하는 2002개의 합창하는 토우를 만들었다. 그로 인해 국내외 언론에 큰 조명을 받아 토암 도자기 공원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토우 중 몇몇 토우는 ‘Reds’라고 적힌 붉은악마 옷을 입고 있다. 선생의 아들 서양현(31) 씨는 “아버지가 축구를 무척 좋아해서 ‘2002년 월드컵까지 2002개 토우를 만들겠다’하고 선수들의 승리를 기원하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이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원하는 마음에 합창하는 토우를 만드셨다”고 말했다.
토암 서타원 선생의 대표 작품은 그래서 토우다. 서타원 선생의 토우는 모두 사람의 형상이다. 사람의 형상이지만 모양은 제각기 다르다. 토암 공원의 토우 동산을 올라가면 수천 개의 토우가 동산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나비 넥타이를 맨 토우, 셔츠를 입고 있는 토우, 안경잡이 토우 등 모두 같은 모양새를 한 토우는 단 한 개도 없으며, 저마다 개성이 있다. 하지만 그의 토우엔 하나같이 귀가 없고, 머리가 다 뚫려 있고, 한결같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헛된 소리 딱한 소리 듣지 말고 텅 빈 마음으로 참된 노래를 하자는 뜻이다. 암 투병을 하던 그가 토우를 통해 자신의 상태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토암 동산 아래에는 선생의 옛 작업 터와 현재는 공방으로 쓰이고 있는 공간이 있다. 작업 터에는 그가 만든 작품들과 그의 사진이 있다. 그것을 보면 도자기를 향한 그의 열정이 느껴진다. 또한, 작업 터 밖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전통 장작 가마가 선생의 도자기 인생을 고스란히 담은 채 남아있다. 토암 공원을 찾은 김용숙(44,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 씨는 “도자기를 사랑한 한 사람의 생애도 알고 여러 작품도 보니까 좋다”고 말했다.
서향원 씨는 도자기를 전공하지 않아 공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도자기 관련 장학사업이나 체험행사, 재능기부 등을 하며 도자기 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서향원 씨는 “여러 가지 장르로 도자기를 이어나가고 있다”며 “언제든지 쉼터에 편안히 놀러 와라”고 말했다.
위암과 식도암 투병 중에도 서타원 선생은 눈을 감을 때까지 도자기를 손에 놓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숨결이 묻어 있는 토암 도자기 공원은 매년 10월 마지막 밤엔 서타원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야외 공연장에서 지역 주민들을 모아 음악회를 열어주고 따뜻한 소고기 국밥 한 그릇을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지인들과 따뜻한 국밥 한 그릇을 나누자”라고 생전에 자주 말했던 따스한 선생의 인정을 느끼며 시월의 마지막 밤에는 토암 도자기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는 것도 괜찮은 생각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