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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나는 짧은 내 인생 중 가장 간절히 원했던 소망인 전역에 성공했다. 그 해방감을 느끼던 것도 잠시, 나는 사회에 적응하기도 전에 꿈에 그리던 유럽행 비행기에 올랐다. 내 유럽 여행의 목표는 간단했다. 루트에 있는 모든 박물관, 미술관을 보고 오는 것. 비록 예술을 직접 하는 것에는 재능이 없었으나,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나에게 유럽에서 보낸 시간은 축복과도 같았다. 여행 기간 중 들렀던 수 십여 개의 장소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역시 ‘루브르 박물관’이다. 수십만 종의 예술품을 담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은 “전쟁이 나면 루브르부터 지켜라”는 말처럼 파리 시민들의 자부심이 이해가 갈 정도로 놀라웠다.
이처럼 그 때 당시에는 그저 경이롭게만 느껴졌던 루브르 박물관이었지만 다니엘 부어스틴이 지은 <이미지와 환상>을 읽으면서 다시 그곳을 떠올려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물론 루브르는 저자가 그렇게도 부르짖던 ‘진짜’들이 모인 곳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책의 표현대로 "맥락이 제거된 예술품들"의 집합소이기도 하다. 만약 부어스틴이 루브르를 방문했다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 의심의 여지가 없는 유명한 작품들의 원본들이 가득 차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이미지가 아닌 실체로 가득 차 있다며 좋아했을까? 아니면 그 예술품들이 있어야 할 장소를 벗어나 마치 전쟁승리의 훈장처럼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맥락’이 제거되었으니 이 또한 이미지라고 비판했을까?
이처럼 나는 <이미지와 환상>이란 책을 읽고 책장을 덮은 지금도 현실과 이미지를 구별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다. 애초에 그 둘이 명확히 구분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그렇기에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져 답을 구하고 싶다. 한 때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나리자>는 작품의 훼손을 막기 위해 모조품을 걸어놓았다는 루머가 화제가 됐던 적이 있었다. 만약 그것이 모작일지라도 우리가 그것을 구분할 방법은 없다.
저자는 단지 예술품의 이미지에 빠진 현대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이미지 속임수인 미디어 이벤트, 연예인들의 이미지 장사속, 관광상품이 되어버린 여행, 물건의 기능이 아니라 이미지를 파는 광고 등이 이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의 병적인 이미지 집착 현상을 저자는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실채를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겉모습, 그림자인 이미지를 보고 있는 것일까? 성형수술이 나날이 발달하고 벤츠가 독일보다 우리나라에 많다는 농담은 이제 우리나라가 허세공화국이 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