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를 지나다보면, 캐릭터가 그려진 작은 상자들이 길거리 한 쪽에 자리 잡은 모습이 자주 보인다. 꾸준히 사랑받는 ‘마리오’부터 최근 바나나송으로 인기를 끈 영화 캐릭터 ‘미니언’까지 다양하다. 많은 캐릭터 상자를 둘러싸고 학생부터 어른까지 좋아하는 캐릭터 고르기에 여념 없는 모습이 마치 할인시장을 방불케 한다. 사람들이 이처럼 열심히 고른 캐릭터의 정체는 바로 ‘나노블록’이다.
나노블록이란 10억분의 1 단위 값을 의미하는 나노와 레고블록의 블록을 붙인 말로, 실제 블록보다 작은 블록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면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나노블록은 다양한 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의 나노블록 판매량을 보면, 지난 9월 21일부터 한 달 동안 8월 보다 2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직장인 하성임(22, 부산 수영구 광안동) 씨는 생각이 복잡할 때 나노블록을 사서 조립하곤 한다. 나노블록을 조립할 때만큼은 잡생각을 지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조립하는 게 서툴러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곧 익숙해졌다. 하 씨는 “캐릭터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선 약 1시간을 집중해야한다”며 “그렇게 집중해 완성된 블록을 보면 성취감과 행복감이 느껴져 레고블록에 손이 자주 간다”고 말했다.
이처럼 나노블록은 복잡하고 바쁜 생활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취미로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아이 같은 감성과 취향을 지닌 ‘키덜트’ 문화가 늘어나면서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 수 있는 나노블록이 더 인기를 끌고 있는 추세다.
연예인들도 나노블록 매력에 빠졌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윤아와 태연은 집에 혼자 있을 때 즐기는 취미생활로 나노블록을 소개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또 최근 주말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가상부부로 나오는 배우 곽시양과 김소연 역시 나노블록을 조립하면서 사이좋게 사는 모습을 보여줬다.
나노블록 인기에 힘입어 나노블록을 조립할 수 있는 이색카페도 만들어졌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있는 한 레고블록 카페는 일반 카페와는 달리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카페 안에는 부지런히 레고를 조립하고 퍼즐을 맞추느라 집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레고블록 카페는 나노블록 뿐 아니라 다양한 레고블록과 퍼즐도 전시돼 있다. 이용시간은 1시간에 2,500원으로 음료를 별도로 주문해야한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레고블록을 골라 조립한 후 완성된 캐릭터가 마음에 들면 카페에서 직접 구매도 할 수 있다.
대학생 백지원(21, 부산 사상구) 씨는 이색 데이트 장소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레고블록 카페가 눈에 들어와 처음 방문했다. 백 씨는 “블록을 조립해보니 어려운 것도 있고 쉬운 것도 있어 맞추는 재미로 자신도 모르게 집중이 된다”고 말했다.
평소 나노블록을 즐기는 직장인 김문수(27, 부산 동래구) 씨는 소셜 커머스를 통해 레고블록 카페 이용권을 사 여자 친구와 찾았다. 김 씨는 나노블록을 길거리에서 사 집에 진열해놓는 취미를 갖고 있다. 김 씨는 “캐릭터들을 집에 진열해 놓으면 괜스레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레고블록 카페는 학생뿐 아니라 가족 단위에서 직장인 커플까지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이용한다. 카페를 운영하는 류수미(28) 씨는 “영화보고 커피마시는 일반적인 데이트가 아닌 이성친구와 할 수 있는 이색적인 데이트 장소를 찾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카페를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류 씨는“블록을 조립하는 동안 잡생각도 잊을 만큼 집중이 된다”며 “조립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잡념이 없어지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21일 <브릿지 경제> 인터뷰에서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빠른 결과물을 원하지만 취업난과 회사생활 등 지나친 경쟁사회는 스스로 뭔가를 이뤄내기 쉽지 않은 환경”이라며 “나노블록은 짧은 시간에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서 젊은 층의 성취 욕구를 채워주는 취미활동으로 각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