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香港)에 향기 대신 분노와 슬픔의 눈물이 흐른다. 구룡반도 인근에 향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어 주강삼각주를 통해 중국 전역으로 향을 실어 날라 향냄새가 진동했다는 향기로운 섬. 영국 사람들이 이 섬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여기가 어디냐”고 주민들에게 물었더니 향항(香港)의 광동어 발음 ‘횡꽁’ 혹은 ‘헝꽁’이 그들 귀에는 ‘홍콩(Hong Kong)’으로 들려 지금의 이름이 됐다는 곳. 지금 이 섬 어디에서도 코끝을 감미롭게 스치는 향기는 흔적도 없고 매캐한 최루가스 화염병, 핏빛 폭력만이 난무하고 있다.
홍콩 시위사태는 지난 주말로 22주 연속 이어졌다. 최대 인원, 최장 기간 등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고 있다. 수천 명의 시위대는 화염병을 던지며 신화통신 홍콩사무소 정문과 창문 등을 부수고 붉은 잉크를 뿌린 뒤 불을 질렀다. 홍콩 시위대가 신화통신을 공격 대상으로 삼은 이유가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 1일 19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에서 ‘헌법과 기본법에 따라 홍콩에 전면적 통제권을 행사하는 제도를 마련할 것’이라며 보다 적극적인 개입의사를 밝힌데 따른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화통신은 중국 국무원 소속으로 겉으로는 언론기관이지만 중국 정부의 정보기관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타이완에서 벌어진 20대 홍콩 남녀의 어처구니없는 치정살인극이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로 번지더니 이제는 마주 달리는 기관차 마냥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홍콩 시위를 촉발한 바탕에는 중국 중앙정부의 반인권적 정치탄압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반감과 의심이 깔려 있다. 현재 홍콩 시민들과 중국 정부 어느 한쪽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홍콩 정부가 한발 후퇴해 송환법 폐기를 밝혔는데도 시위대는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경찰 강경 진압 독립적 조사, 시위자 석방,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등 5대 요구사항의 완전 해결 없이는 시위를 멈출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공산당 영도를 위협하는 ‘직선제’를 수용할 것 같지도 않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체제이념으로 가진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조건이다.
중국 중앙정부와 홍콩 정부는 직선제 수용 대신 홍콩 시민들의 최대 불만인 주택문제 해결을 통해 정부로 향한 화살 과녁에서 벗어나 보려 하는 것 같다. 인민일보가 지난 달 ‘주택문제 해결, 홍콩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신화사가 ‘홍콩 사회갈등은 주거난 해소로 착수’ 논평을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낸 것으로 보면 공작 냄새가 난다. 인민일보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이고, 신화통신은 중국 유일의 국영 통신사다. 사실상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표방하는 나팔수다.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이 스스로 이런 논평을 독자적으로 냈다는 것은 중국 체제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얘기다.
신화사는 이 논평에서 ‘홍콩 빈민들은 비둘기 우리 같은 집에서 산다. 1㎡에 20만 홍콩달러(3058만 원, 1평에 1억 원)가 넘는 집값에 중산층 시민들도 아우성’이라고 지적했다.
홍콩의 주택난과 양극화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 차이나 모닝포스트 (SCMP) 등 서방측 언론에서 잊을만하면 보도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도 지난 7월 홍콩의 심각한 주거현실을 보도하면서 홍콩 시위의 이면에 빈부격차와 주택난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했다. 먼저 NYT에 실린 사진부터 보자.
사진은 홍콩의 쪽방 아파트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모습이다. 아파트 크기는 가로 10ft(305cm), 세로 6ft(183cm)다. 아파트 전체 면적 60ft²을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5.57㎡, 약 1.68평이다. 이게 이 집의 전부다. 바로 옆에 또 다른 방이나 거실 같은 게 있겠거니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 한 명도 살기 힘든 이곳에서 3명의 가족이 살고 있다.
엄마가 식사를 준비하는 곳이 조리대다. 왼쪽 흰색 나무박스가 수납공간이고 오른쪽에 컴퓨터와 전자레인지가 보인다. 바로 옆에 아이 책과 공책, 서류들을 놓은 수납장이 보이고 작은 냉장고를 붙여놓았다. 아래쪽에 복층 침대가 보이는데 아이는 곤한 아침잠에 빠져 있다.
화장실은 없다. 침대와 냉장고 사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오른쪽 아래 화살표 방향을 따라 밖으로 나가서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할 식탁도 이곳에는 없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옷을 말리거나 걸어둘 마땅한 공간이 없어서인지 2층 침대 난간에 철사 옷걸이가 잔뜩 걸려있다. 또 아이가 가지고 놀았던 작은 인형들과 가족들의 추억이 담긴 사진, 두루마리 휴지, 어지럽게 연결된 전선들이 보인다.
NYT는 홍콩 인구 7백만 명 중 21만 여명이 이런 집에서 산다고 적고 있다. 홍콩 사람들은 외국인 노동자들과 본토에서 건너온 이주민 등 빈민들이 사는 이런 아파트들을 ‘닭장(cage)’ 혹은 ‘관(棺 · coffin)’이라고 부른다. 신화사가 ‘비둘기 우리’라고 했던 벌집 아파트다.
NYT는 ‘닭장’ 또는 ‘관’이라고 부르는 이런 벌집 아파트가 얼마나 작은지를 친절하게 비교해 보여준다. ‘닭장’에 사는 홍콩인 1인당 주거면적이 48ft²(4.46㎡, 1.35평)인데 비해 뉴욕의 자동차 1대 주차면적은 153ft²(14.21㎡, 4.31평)이다. 뉴욕의 자동차가 홍콩 빈민들보다 3배 넓은 곳에서 단잠을 자는 셈이다.
홍콩 일반 주민들이라고 해서 빈민들의 주거 사정보다 월등하게 나은 것도 아니다. 홍콩 주민 1인당 평균 주거면적은 160ft²(14.86㎡, 4.50평)로 뉴욕 자동차 주차면적과 거의 비슷하다. 파리 아파트 1인당 면적은 388ft²(36.05㎡, 10.92평),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뉴욕조차도 1인당 414ft²(38.46㎡, 11.66평)의 면적에 산다.
홍콩의 집값은 말 그대로 살인적이다. 신화통신이 밝힌 대로 아파트 1평에 1억 원에 달하고 40평 정도의 고급주택은 80억 원 이상에 거래된다. 평균 주택 거래금액이 14억 원으로 세계 1위다.
취직해서 입고 먹는데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돈을 모으면 서울은 5.9년, 뉴욕은 6.1년 걸리는데 홍콩은 18.1년, 어떤 통계는 21년이 걸린다는 예측도 있다. 15평 아파트 월세도 300만 원이 넘고, 10평짜리도 250만 원이나 한다. NYT의 기사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홍콩 집값은 3배 이상 올랐다.
홍콩에서 4년제 대학을 나와 받는 초임은 대략 150만~2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시간당 최저 임금은 5700원에 불과하다. 홍콩 물가는 한국보다 40% 가량 높다. 홍콩의 중위 임금은 약 270만 원이다. 집값이 3배 뛸 동안 홍콩의 임금은 25%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임금은 낮은데 물가 상승률과 집값은 천정부지로 솟으니 인간다운 삶을 기대할 수가 없다. 이런데도 불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홍콩의 1인당 GDP는 4만8천 달러로 독일, 핀란드와 비슷하지만 삶의 질은 하늘과 땅 차이다. 최상위 계층만 초호화 생활을 누리고 나머지는 인간 이하의 삶을 산다.
소득불평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치가 지니계수다. 지니계수는 0에 가까울수록 평등하고,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 홍콩은 2016년 현재 지니계수가 0.529다. 홍콩 보다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콩코민주공화국 레소토 중앙아프티카공화국 정도다. OECD 발표에 따르면 한국은 0.355(2016)이고 한국보다 불평등이 심한 나라는 미국 0.391(2016), 멕시코 0.459(2014), 칠레 0.454(2015), 터키 0.404(2015) 다. 독일이 0.29로 가장 평등한 나라다. NYT는 “홍콩의 세계에서 가장 살기 불평등한 곳”이라고 단언한다.
홍콩이 이렇게 불평한 사회구조를 갖게 된 것은 뿌리가 깊다. 영국이 홍콩을 통치할 당시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를 낮추고 상속세 양도세 보유세를 없앴다. 세금이라면 질색을 하는 세계의 부자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었고, 홍콩은 금융 허브로 거듭났다.
세금을 줄였으니 홍콩 정부가 세수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불문가지다. 결국 당국은 공공토지를 팔아 세수에 충당했다. 제한된 공공용지를 사들일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재벌들밖에는 없었다. 홍콩 정부와 재벌 간에 땅과 돈을 주고받으며 끈끈한 정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정경유착은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홍콩의 재벌들과 중국 공산당은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렇게 공공용지를 야금야금 사 들여 뉴월드(新世界)를 비롯해 헨더슨(恒基兆), 순훙카이(新鴻基·SHKP), 청쿵(長江·CK) 등 4대 부동산 재벌이 보유한 토지는 1억 ft²(약 2백81만 평)가 넘는다. 여기에 아파트를 짓는다면 1백만 가구 이상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땅이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부동산 재벌들은 토지를 독점하고는 땅을 시장에 내놓지 않는다. 주택시장을 독점하고는 찔끔찔끔 주택을 분양해 비싸게 팔아 먹는다. 아파트를 지어놓고도 집값 상승을 기다리며 분양을 미루고 있는 빈집만도 1만 여 채에 달한다. 여기에다 중국의 큰 손들도 홍콩의 집을 쇼핑하듯 사서 집값을 올려놓았다. 심지어 집을 사놓고 세를 놓지도 않고 비워두는 경우도 허다하다.
지난해 시민운동가들은 홍콩 정부에 54홀 골프장을 없애고 아파트를 짓자고 제안했다. 아파틀 건설하면 3만7천여 명이 집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골프장 회원권을 가진 2천6백 명의 배부른 부자들을 대변하는 홍콩행정청은 이를 거부했다. 홍콩행정청의 상당수 간부들도 이 골프장의 회원들이다.
홍콩시민들의 송환법 반대 시위가 가라 앉기는커녕 갈수록 격렬해지자 중국 중앙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천안문 사태 때처럼 총칼로 밀어붙이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홍콩이라는 국제적인 금융도시의 위상도 있는데다 무력개입이 현실화될 경우 국제사회는 중국을 야만적인 국가로 치부할 게 뻔하다.
그래서 내놓는 게 주택난 해결을 통한 민심 가라앉히기인 것으로 보인다. 인민일보가 지난달 논평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집은 기본적인 인권이자 존엄’이라면서 ‘홍콩 주택문제 핵심은 토지에 있으며, 토지공급을 늘리는 것을 늦출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인민일보는 이어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부동산 재벌이 선의를 보일 때가 됐다. 자기만의 계산기를 두드리고, 땅을 사재기하고, 마지막 동전 한 푼까지 벌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부동산 재벌들을 비판했다. 사실상 중국 중앙정부가 인민일보를 통해 부동산 재벌들을 향한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중국공산당 일당체제에서 이렇게 드러내놓고 압력을 가하는 데야 홍콩 부동산 재벌들이 버텨낼 재간이 없다. 홍콩의 4대 부동산 재벌 중 하나인 뉴월드(新世界)가 먼저 손을 들고 나왔다. 자신들이 보유한 토지의 17.8%에 해당하는 3백만 ft²(약 8만 4천 평)을 정부와 사회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땅값만도 34억 위안(약 5천2백억 원)에 해당하는 부동산이다. 이 땅을 주택으로 개발하면 1만 여명이 집을 갖게 된다.
헨더슨 순훙카이 청쿵 등 부동산 재벌들도 중국 중앙정부의 압박에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같다. 홍콩 정부는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아파트를 지어놓고 집값이 오르기만 기다리며 분양을 미루는 빈집에 ‘빈집세’도 부과할 계획이다. 또 홍콩 내 최대 친중파 정당인 민건련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정부가 민간 토지를 수용할 수 있도록 한 ‘토지회수조례’도 강력하게 추진한다고 밝혔다. 홍콩 부동산 재벌의 목을 눌러 주택난 해소를 하면서 홍콩 시민들의 사회적 불만을 달래보겠다는 중국 중앙정부의 속셈이다.
홍콩 시민들이 중국 중앙정부의 속이 뻔히 보이는 민심 달래기에 여기에서 그냥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이미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경험은 홍콩 행정청장과 홍콩 입법원 의원의 간선제 등 후진적인 정치체제의 전면적인 개혁을 바라고 있다. 홍콩 입법원 의원은 직선(40명)과 간선(30명)으로 선출한다. 아무리 홍콩 시민들이 직선으로 비(非) 친중파 의원을 선출해도 간선으로 뽑히는 직능별 의원을 친중파로 채워버리기 때문에 입법회는 친중파 일색이다. 행정수반인 행정장관도 1200명의 선거인단이 간선으로 선출한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정경유착과 극심한 빈부격차, 주택난, 살인적인 경쟁이 만연한 교육제도, 꽉 막힌 사회적 계층상승 기회, 충분하지 못한 의료서비스, 본토로부터의 인구 유입과 사회갈등, 위협받는 어두운 홍콩의 자유와 미래 등에 절망하고 분노하고 있다.
홍콩 시민들은 오늘도 거리로 나선다. 시위대의 열혈분자들은 고등학생과 대학생 등 젊은이들이다. 그만큼 젊은이들이 홍콩의 미래를 암울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에 경의를 표하고 배운다는 홍콩에 정치적 자유가 꽃 피고 홍콩의 젊은이들에게 밝은 미래가 있었으면 좋겠다.
힘내라 홍콩! 짜요 홍콩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