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때 처음 손에 쥐어 본 기타가 인생을 바꾸다
팬들이 보내는 환호와 응원은 나를 살게 하는 에너지
“공연에서 받은 관객들의 환호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저는 무대에 섰을 때 비로소 희열을 느껴요. 저에게 기타란 제 삶의 이유입니다. 무대에서 기타를 치는 저의 모습에 환호하는 관객들이 있기에 오늘 하루도 살아가요. 강영훈과 기타는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밴드 ‘더 매거스’의 기타리스트 강영훈(23) 씨는 오늘도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동양적인 선율과 락 음악의 요소가 합쳐진 ‘오리엔탈 댄서블 락’ 장르를 연주하고 있는 4인조 인디밴드에서 막내 기타리스트로 열심히 활동 중이다.
더 매거스는 정규앨범 <Pathfinder>, 싱글앨범 <comin’ now>, <child’s water> 등으로 대중들에게 다양한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 2015년부터 활동한 부산의 인디밴드이며 그는 2016년도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23살의 어린 나이에 형들과 함께 밴드 활동을 하게 된 과정이 마냥 순탄하지는 않았다.
그가 처음 손에 기타를 쥐어본 건 초등학생 때다. 담임 선생님과 함께 등교하던 중에 우리 학교에 밴드부가 생길 거라며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는 어린 마음에 “왠지 밴드부라는 것이 멋있어 보였고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밴드부가 생기기 전부터 조금씩 기타를 배웠고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을 때 또래 친구들보다 실력이 앞서 나갔다.
그는 난생처음 기타를 배울 때부터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도 자연스럽게 독학으로 기타를 깨우쳤다. 그는 “너무 어릴 때부터 기타를 배워서 그런지 단순히 또래 친구들보다 뒤처지면 힘든 것도 모르고 분해서 온종일 연습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커가면서는 기타뿐 아니라 작곡에도 취미가 생겨서 독학으로 연구했다.
20살이 되자 그는 혼자 하는 음악이 아닌 같이 어우러져 연주하는 밴드의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부산의 인디밴드에 대해 열심히 찾아 나섰고 그러던 중 ‘더 매거스’를 알게 됐다. 자신 있게 기타리스트에 지원한 그는 초반엔 형들의 의심을 샀다. 어리고 밴드 경험이 전무한 그가 믿음직스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만나자마자 즉흥연주를 제안했다. 형들이 쌓은 반주에 자신이 즉흥적으로 기타 선율을 입힌 것이다. 또한 자신이 혼자서 만들어왔던 음악 파일을 모두 전송하며 굳은 의지를 보여줬다. 그러자 그는 자연스럽게 형들의 인정을 받게 됐고 지금은 막내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가 밴드로써 서 본 무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부산 락 페스티벌’이다. 부산 삼락생태공원에서 진행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락 페스티벌에서 2017년과 올해 두 번 모두 메인 스테이지에서 공연한 ‘더 매거스’는 후회 없는 공연을 마쳤다. 2017년에는 처음 참여한 거라 긴장도 많이 하고 잘해야 한다는 압박이 커서 조금 아쉬움이 남았지만, 올해는 편안하게 무대를 즐기고 왔다. 그는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도 제작해서 만들어가고 물대포도 쏘며 관중들과 즐겁게 소통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무대는 올해 9월에 열린 ‘잔다리 페스티벌’ 이다. 홍대 인근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인디 뮤직 페스티벌이다. 여기서는 해외 유명 에이전시가 무대를 보고 밴드들을 이어주는 마켓이 열렸다. 그는 “외국인 에이전시들 앞에서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고 외국어를 못 해도 뮤지션들과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신선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렇게 다양한 밴드 활동을 하면서 힘든 점도 있었다. 그가 처음에 밴드를 시작할 때는 마냥 설렜지만 여럿이 모여 연주의 합을 맞추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는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이 맡은 악기로 어떠한 마디를 만들어 오면 거기에 다 같이 살을 붙이고 구성을 짜면서 완성 시키는 과정이 생각보다 힘들다”며 “항상 모여서 작업해야 하고 자연스럽게 의견 충돌도 생기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함께여서 힘이 나는 부분도 많다. 공통된 음악 취향이 있기에 같이 노래를 듣고 들은 후에 감정을 나눌 수 있다. 또한 그는 즉흥연주를 하면서 좋은 아이디어가 생기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그는 “서로 다른 4명이 힘을 합쳐 하나의 음악을 한마음으로 연주하는 것이 뭉클하고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이렇듯이 4명이 함께 만들어 낸 음악 중 그가 가장 추억이 남는 곡은 정규앨범 수록곡인 <palamacha>다. 한글로 발음하면 ‘빨래마차’다. 이 빨래마차라는 단어가 노래 가사에서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반복된다. 그는 “원래는 없는 단어를 다 같이 그냥 얘기하다가 만들어 낸 것인데 실제 녹음장에서 주문처럼 이 단어를 반복하니까 웃음을 참느라 힘들었다”며 “다 같이 재밌는 분위기에서 녹음한 노래라서 추억이 남는다”고 전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산에서 제일 유명한 기타리스트가 되리라는 목표가 있었다. 어릴 때 가진 단순한 목표지만 그는 “어느 정도 이룬 것 같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그가 음악인으로서 가지는 최종 목표는 지금 몸담은 밴드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즐기며 꾸준히 음악을 하는 것이다. 해외로 나가서 어마어마하게 돈을 벌어 메이저 기타리스트가 되자는 목표보다는 삶을 즐기자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의 롤모델은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전 기타리스트인 ‘존 프루시안테’이다. 레게스러운 록 리듬, 펑키한 발라드 등의 모순적인 요소들이 묘하게 하나가 되는 연주와 무대에서 뿜어내는 익살스러운 제스처와 표정들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그는 “실제 공연을 할 때도 나도 모르게 존 프루시안테의 표정과 에너지를 따라 하려고 하는 것 같다”며 “이 정도로 내가 본받고 싶어 하는 기타리스트”라고 말했다.
이렇듯이 무대 위에서 진정으로 즐기는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는 자신이 무대 위에서 편안하게 즐겨야 팬들도 같이 환호하는 것이라며 그때 비로소 관객과 자신의 소통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그는 “한 공연을 끝내면 그때 관객들에게 받은 에너지로 일주일, 한 달을 살아간다”고 말했다. 그에게 관객들의 환호와 응원은 삶의 원동력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음악을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진실’이다. 그는 음악인으로서 음악 자체가 아닌 다른 것에 충실하고 허세 가득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 진실하고 섬세한 이야기들을 선율에 담는 음악인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