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가는 저녁에, 내 귀를 때리는 거친 사이렌 소리가 우리 동네를 휘감고 있었다. 나는 너무 어렸고 엄마는 내 눈을 가려주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언니가 수능시험을 치르고 온 후 자신의 성적에 만족하지 못하는 엄마와 크게 다툼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그 언니가 자신의 집인 13층에서 투신한 것이었다. 나는 그땐 너무 어려서 그냥 무섭고 당황스러운 감정만 들었다. 하지만 나도 수능시험을 다 치르고 난 후, 이제야 생각해보니 수능 결과는 이렇게 슬프고 참담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학업과 성적, 그리고 부모님의 따가운 눈초리가 많은 한국 학생들의 인생에 침투돼 있다.
며칠 전, tvN에서 방영하는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그 날 회차에서는 혜경궁 홍 씨의 회고록인 <한중록>을 다루고 있었다. 혜경궁 홍 씨는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비운의 남자인 사도세자의 부인되는 사람이다.
<한중록>은 인조에 의해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과 임오화변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는 책이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설민석 역사 강사는 당시 아버지 인조의 사도세자에 대한 큰 욕심과 학업에 대한 강요에 대해 비통하게 말했다. 사도세자의 끔찍한 죽음의 충격으로 인해 나는 <한중록>을 빌려서 읽게 됐다.
사도세자는 무인 기질이 더 강했고, 자연히 학문과는 멀어지게 됐다. 하지만 백성을 위해 열심히 일하던 영조는 세자에게 엄격한 지침과 많은 학업을 가르치길 원했으며, 대리청정까지 시키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했다. 이는 사도세자에게 독이 되어 곁에 있는 수많은 나인을 죽이는 참변을 낳으면서 인조의 미움을 크게 샀으며, 결국 뒤주에 갇혀 죽는 결말을 맞이한다.
이 <한중록>과 겹쳐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앞서 언급한 동네 언니 또한 부모님이 강요한 높은 성적과 자신의 꿈이 합치되지 않아 처참한 결과를 자아냈다. 이 언니가 아니더라도 어디선가는 자신들의 꿈이 짓밟힌 채 학업에 목을 매는 수많은 어린 친구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비극들이 시대를 오가며 항상 있었다는 것이 더욱 무서웠고 이 상황을 초래한 사회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나의 꿈을 응원한다는 부모님의 지지 덕분에 학업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해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학업에서 더욱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다. 이런 부모님 아래에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자식 성적표가 부모 인생 성적표가 되길 바라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 부모의 욕심을 채워 만드는 자녀들은 진정한 인간이 아닌 부모의 인형, 장난감이 돼가는 것이다. 모두가 능동적으로 하고 싶은 공부를 자신 있게 밀고 나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