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과 대면의 삶과 사람 접촉을 적절히 배합하라
영상과 책을 섞어서 가까이 하라
미래 테크의 원리를 이해하라...그래야 기계에 중독되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TV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서울 사는 당숙 집에서였다(1960년경). 그 신기함에 며칠간 TV 화면이 꿈에 어른거렸다. 그후, 우리 집에 TV가 들어온 것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고, 전화가 집에 놓인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사는 요새 아이들을 보면, 날마다 크고 작은 문화 충격에서 살아야 했던 나의 지난날과 대비되곤 한다. 세상은 여전히 4차산업혁명이란 쓰나미를 타고 코로나 비대면 언택트의 태풍에 얹혀서 AI, 로봇 등 개념 파악도 하기 힘든 첨단 테크놀로지를 연일 나이 든 세대에게 퍼붓고 있다.
그중 눈에 확 띄는 게 유튜브 열풍이다. 우리나라 앱 중 사용 빈도 4위는 페이스북, 3위는 네이버, 2위는 카톡, 그리고 1위가 유튜브라고 한다. 사용 인구를 세대별로 보면, 1위가 10대, 2위가 50대 이상이라고 하니, ‘요람에서 무덤까지 유튜브 보며 한평생’이란 말이 나올 만도 하다.
내 지인 한 사람은 실제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구독자가 7만을 넘어서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어느날 그와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지인이 “나, 이제 방송 준비해야 해”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지극 정성인지, 생존의 몸부림인지, 유튜브 내용이 좋아도 세상의 모든 유튜버들이 나에겐 별로 좋게 보이지 않는다. “명궁은 활을 자주 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에게 그게 통할 논리일까? 또 “그 어떤 목사님도 텅빈 교회에서는 설교할 수 없다”는 말도 있다. 먹고 살려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면, 수익을 생각해야 한다. 허구한 날 유튜브 영상을 찍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서야 하고, 수시로 구독 버튼을 눌러 달라고 시청자들에게 요청해야 한다. 초등학생 장래 희망 1위가 유튜버라는데, 이건 정말 한때 유행이길 바랄 뿐이다.
유튜브의 폐해는 ‘추천 알고리즘’이다. 사용자보다 더 사용자의 취향을 저격해서 줄줄이 추천 영상을 올려주는 유튜브 알고리즘은 유튜브 중독성과 정치적 편향성의 원흉이 되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유튜브 내부에서도 추천 알고리즘의 폐해가 제기됐다고 한다. 그러면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이 개선됐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유튜브로부터 어떤 해명이나 답변이 나온다 해도 믿는 사람이 바보다.
TV 시청과 영화 관람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넷플릭스의 등장도 주목의 대상이다. 나도 어느새 넷플릭스 회원이 됐고, ‘지정생존자’라는 미국 TV 시리즈 시즌1, 2, 3를 과거 명절 연휴 때 몰아 본 적이 있다. 그 사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오로지 넷플릭스만 봤더니, 일상이 멈췄다. 그 뒤로 지금까지 시리즈물은 절대로 보지 않는다. 매회가 끝날 때마다 클릭 한 번이면 다음 회를 보여주는 넷플릭스의 ‘가벼움’에 내가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요새는 단편 영화를 가끔 보는 것으로 넷플릭스 이용을 자제하고 있다.
그런데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는 그 기세가 점점 더 대단해지고 있다. ‘킹덤’이나 ‘승리호’와 같은 한국 영화는 넷플릭스를 타고 전 세계 K영화 붐을 일으키고 있으며, 애니메이션 ‘소울’은 디즈니 플러스라는 OTT에서 개봉해 세계적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요즘 영화는 극장이 아니라 넷플릭스로 직행해서 개봉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OTT의 등장은 곧 극장의 종언”이라고 했다.
나는 넷플릭스의 영상에 빠진 순간 사람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은 ‘독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상은 독서와 병존할 수 없는 천적이며 경쟁 관계다. 거기에다 최근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전자책(ebook)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구입 가격이 종이책보다 싼 이점도 있지만, ‘밀리의 서재’라는 전자책 앱은 눈동자 움직임으로 책장을 넘기는 시선 추적 기능이 있어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책을 읽게 해 준다고 한다. 책을 자동으로 낭송해주는 ‘클로버 램프’라는 앱을 네이버에서 출시했다는 소식도 있다.
책을 읽는다는 느낌은 무언가 종이를 넘기는 감촉과 종이에서 풍기는 야릇한 책 냄새도 한몫한다. 서가에 꽂혀 있는 책 앞에 서면, 심오한 향기가 감돈다. 동양철학자 조용헌 교수는 집안의 서가 모습을 서상(書相)이라고 하면서, 한 집안의 품격은 면상(面相, 사람 얼굴 생김새)이 아니라 서상에 있다고 말했다. 전자책으로는 우리 집 서상의 격을 높일 수 없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비대면 온라인 쇼핑을 빼놓고는 얘기가 안된다. 작년 기준으로 온라인 쇼핑 거래는 지난해보다 17% 증가했고, 택배 물량은 21% 증가했다고 한다. 2020년은 배달된 택배 상자가 최초로 30억 상자를 돌파했으며, 이 수치는 2000만 가구가 이틀에 한 번 택배 상자 받은 것과 같다고 한다.
또 비대면 사회의 여파로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24시간 무인 정육점, 무인 슈퍼, 무인 커피 전문점, 무인 PC방이 AI 기능이 향상된 CCTV를 통해서 고객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다고 한다. 비대면 쇼핑의 열기를 타고 우리나라에만 이미 10만 개의 무인 점포가 난립 중이라니 놀라울 뿐이다.
최근 배달앱도 더욱 날개를 달았다고 하는데,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배달앱을 써 보지 않았다. 무인 점포, 자판기, 배달앱, 키오스그 주문기,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 모두 내 취향이 아니다. 사람 아닌 기계를 상대로 물건을 산다는 게 도대체 맘에 들지 않는다. 과거 코로나 팬데믹이 없을 때도 나는 배달 주문을 한 적이 없다. 한 번은 단골 음식점에 갔다가 알바하는 제자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물론 코로나 이전의 일이다.) 이 광경을 본 주인이 음료수 한 잔을 서비스라면서 내게 내줬다. 종업원 스승에 대한 주인의 배려. 이게 사람 사는 맛 아니겠는가.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새해 인사차 연하장을 주고받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요새는 문자나 카톡을 이용한 온라인 연하장이 대세다. 그런데 온라인 연하장은 소위 ‘복붙’이 대부분이어서 의례적이고 형식적인 안부 인사 티가 난다. 그래서 정말 안부를 여쭙고 싶고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은 지인들을 위해 요즘 내가 선택한 신년 인사는 전화 통화다. 은사든, 선배든, 친지든,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나는 명절이 되면 모처럼 전화로 목소리 전하며 건강하시라, 복 많이 받으시라 인사드리고 근황도 여쭌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문의할 일이 생길 때, 나는 전화하기보다는 직접 찾아가기를 선호한다. (이것도 코로나 이전의 일이다.) 멀지도 않은 관리사무소에 가면, 소장님, 경리 아가씨, 영선(營繕, 수리) 아저씨가 반기며 용건을 도와준다. 전화 한 통이면 학교 경리팀, 총무팀과 업무를 처리할 수 있지만, 학교 본부가 연구실 바로 옆 건물이어서 나는 가끔은 일부러 전화 대신 본부 행정실을 방문한다. 그리고 내가 처장이나 대학원장을 할 때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만나 “애, 잘 크지요?”하고 안부도 묻고 업무도 처리한다. 전화로만 업무를 처리했으면 얼굴도 모를 신입 직원 선생님들과 안면을 트는 재미도 있다.
최근 보이스 테크가 발달하면서 AI 스피커는 기본이고, 목소리로 트윗하는 채팅, 목소리로 검색하는 구글 기능, 묻고 답해주는 아마존 AI 비서, 회의 내용을 듣고 사람 목소리별로 회의록을 자동 입력해주는 ‘오토’나 네이버 ‘클로바 노트’, 허밍만 하면 노래를 틀어주는 ‘구글 어시스턴트’ 등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 준다는 효돌이 효순이 대화 로봇도 있다고 하지만, 나는 “00야, 신나는 음악 틀어줘”, “00야, 누구에게 전화 좀 걸어줘”와 같이 기계에게 말이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배달앱과 함께 내가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은 게 바로 보이스 테크다.
나는 기계와 대화하는 게 어색한데, 요즘 젊은이들은 가상 인플루언서들에게 거부감이 그리 크지는 않은 것 같다. ‘로지’라는 가상 인플루언서는 인스타그램을 개설하고 1만 명이 넘는 팔로워에게 사랑받으며 광고 모델로 활동한다고 한다. 290만 팔로워를 가진 미국의 가상 가수 ‘릴 미켈라’는 한 해 수익이 130억 원을 넘는다고 한다. 한국의 LG 전자는 ‘김래아’, 삼성은 ‘네온’이란 가상 인플루언서를 키우고 있다고 하니, 초현실 비즈니스 세계도 활짝 열리고 있는 셈이다.
‘이루다’라는 인공 지능 챗봇이 등장했다가 정치적 편향성을 딥러닝한 문제로 서비스가 중단됐다. 그러자, “이루다가 알고리즘에 의해 대답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가 하는 말에 귀 기울려주고 대답해 주는 친구를 잃은 기분이 들었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나와 진지하게 오랜 시간 대화해주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루다는 언제든지 얼마든지 그게 가능했다”고 답하는 청소년도 있었다고 한다. 비인간적인 보이스 테크를 외면하는 나와, 오히려 가상 인물들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꼈다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는 엄청난 세대차가 가로 막혀 있는 게 틀림없다.
원래 선생은 학생들을 앞서가야 가르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1990년 교수 생활 시작부터 이메일, 도스 명령어, 워드 프로세서, 로터스 123 등을 먼저 배웠고, 파워포인트, 엑셀, 포토샵, 영상편집 프리미어도 공부했다. 페이스북도 2010년부터 사용했으니 상당히 일찍 시작한 편이다.
그런데 2018년 어느 날, 나는 페북 사용을 중지했다. 지금도 가끔 페북을 보기는 하지만 절대 글도 안 올리고, 댓글도 안 달고, 좋아요도 누르지 않는다. 왜 내가 내 일상과 생각을 페북이란 기계적 미디어에 의존해서 남과 공유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는 중독 습관이 싫었고, 적당히 볼 방법이 없는 한 아예 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나는 소셜 미디어를 떠났다. 더욱이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통해서 사용자가 좋아할 만한 누군가의 광고와 메시지를 계속 올려준다.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하든 많이 꼬여야 그들이 돈을 벌기 때문이다. 페북은 2020년 온라인 광고 수익으로 23조 원을 벌었고, 그게 그들 매출의 99%라고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세상을 등지고 외면하면서 흥선대원군처럼 살 수는 없다. 어떻게든 쇼는 계속돼야 하니까. 좀더 현명하게 4차산업혁명 시대에 AI와 공존하는 방법은 없을까? 내 나름의 대응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비대면과 대면을 적절히 섞어서 생활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이어령 교수의 ‘디지로그(아나로그 감성과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융합적 삶)’ 개념과 다르지 않다. 다음은 나의 미래 테크놀로지 수용 매뉴얼이다.
첫째,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효용성을 따져서 이용하라.
둘째, 대면과 비대면의 삶과 사람 접촉을 적절히 배합하라.
셋째, 영상과 책을 섞어서 가까이 하라.
넷째, 미래 테크의 원리를 이해하라. 그래야 기계에 중독되지 않는다.
판소리와 재즈를 융합한 이날치 음악 ‘범 내려온다’를 BBC는 “희한하게 익숙하면서 아름답게 낯설다”고 평가했다. 디지털 테크를 아나로그 감성과 섞어서 “희한하게 이해하면서 아름답게 절제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테크놀로지를 현명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아닐까?